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제품들이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친근한 상호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자리에 누울 때까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제품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한국인의 생활 속 깊숙이 자리잡은 대표 제품군과 그 제조업체의 성장 이면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스포츠한국 조민욱 기자] 1960년대 우리나라의 가장 큰 고민은 식량난 해결이었다. 6·25전쟁 직후로 식량 부족이 극심해지자 정부는 ‘국민들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하겠다’는 목표 아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인 종합낙농개발사업을 추진했다. 해당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사업가 찾기에 나선 정부는 고(故) 김복용 매일유업 선대회장을 주목했다.

1946년 월남해 서울 방산시장에서 담배 좌판 등을 벌여 사업 기반을 닦은 김 회장은 1956년 공흥산업, 1964년 신극동제분을 설립하며 무역과 제분업으로 큰 돈을 모았다. 이미 ‘성공한 사업가’였던 김 회장은 1969년 정부로부터 종합낙농개발사업에 투자할 것을 권유받고, 신사업 분야 도전을 결심한다.

당시만 해도 젖소를 키울 능력과 기술이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우유를 만들지도, 소비하지도 못했다. 낙농업 자체가 리스크였다.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탓에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겠다’는 신념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던 정부투자기업인 한국낙농가공에 손을 뻗었다. 2년 뒤인 1971년에는 대주주 자격으로 한국낙농가공을 인수했다. 오늘날 유업계 대표주자로 성장한 매일유업의 창립 배경이다.

1970년대 초 매일유업이 대한항공 비행기를 통해 해외에서 국내로 젖소를 도입하는 모습. 매일유업 제공
◆ ‘낙농보국’... 유업계 역사를 새로 쓰다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매일유업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1970년대 전까지 국내 낙농업체들은 해외에서 임신한 젖소를 배에 실어 국내로 운반했다. 그러나 젖소를 운반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열악한 환경 탓에 운송 중에 젖소들이 죽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매일유업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배가 아닌 비행기로 젖소를 운송키로 하고, 이를 대한항공에 제안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기에 젖소를 실을 공간이 충분했다. 그로 인해 좋은 컨디션의 젖소를 하루 만에 국내에 들여올 수 있었다. 이렇게 3년간 비행기로 들여온 젖소 수가 5000여두에 달했다.

1970년대에는 냉장 기술이 미비했던 탓에 좋은 우유를 만들고도 신선하게 공급하지 못했다. 이에 매일유업은 약 1500개의 낙농가를 조성하고 유가공 공장인 광주공장을 설립해 멸균우유 생산설비를 구축하는 등 성장 기틀을 마련해 나갔다.

1980년에는 상호를 ‘매일유업주식회사’로 변경하고, 자체적인 연구 개발로 떠먹는 요구르트 ‘바이오거트’를 생산하는 등 고급화된 제품 개발에 집중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그동안 축적해 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유제품의 다양화뿐만 아니라 음료와 제과 등 신규 식품사업에 진출하면서 종합식품회사로서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 매일유업은 프리미엄 식품 개발에 주력했다. 2005년 우유 속 유당을 제거한 락토프리 우유인 ‘소화가 잘되는 우유’를 선보였으며, 2008년에는 ‘자연에게 좋은 것이 사람에게도 좋다’는 가치를 반영한 ‘상하목장 유기농우유’를 출시했다. 현재 국내 유기농 우유시장에서 상하목장 유기농 우유의 점유율은 약 80%에 달한다. 매일유업은 회사 설립 43년 만인 2012년에 1조723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했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매일유업은 '품질제일주의'와 '낙농보국'이라는 창업 정신을 바탕으로 우유·발효유·치즈·유아식·커피음료·주스 등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업체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 1조3917억원을 올리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고민도 있다. 저출산 추세에 따라 영·유아식 소비와 국민 1인당 연간 우유 소비량이 모두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일유업 뿐만 아니라 유업계 전체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신성장동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매일유업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매일유업은 저출산 및 고령사회 진입 등 인구구조 변화에 맞춰 영유아에 집중했던 기존 영양식사업을 생애주기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2018년 생애주기별 영양 설계 전문 브랜드 ‘매일 헬스 뉴트리션’을 론칭, 첫 번째 제품 라인으로 성인영양식 전문브랜드 ‘셀렉스’를 선보이며 성인영양식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출시 1년여만에 매출 3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성인영양식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또 국내 유제품 업체로는 처음으로 중동에 조제분유 수출을 시작해 현재 중동·중국·미국·일본·홍콩·호주와 신흥개발국가에 조제분유·요구르트·두유 및 기타 유가공품의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 분유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마케팅 활동 및 유통채널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 분유시장 규모는 지난해 267억달러로, 2023년에는 323억달러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유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중국 분유시장에 진출한 매일유업의 지난해 중국 분유수출 규모는 460억원에 달한다.

◆ 이윤보다 공익을 앞세우다…돈 안되는 특수분유 제조 고수

매일유업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착한 기업’으로 통한다. 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내에서는 신생아 5만명 중 1명꼴로 희귀질환인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을 안고 태어난다. 선천성 대사이상 환아들은 선천적으로 아미노산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거나 만들어지지 않아 모유는 물론 고기, 생선, 심지어 쌀밥에 포함된 단백질 조차 마음대로 섭취하지 못한다. 특수분유나 저단백 식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식이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분해하지 못하는 아미노산 및 대사산물이 축적돼 운동발달장애, 성장장애, 뇌세포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따라서 선천성 대사이상 환아에게는 아미노산을 제거하고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 성분을 보충할 수 있는 특수분유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아미노산 대사이상 질환용 특수 유아식을 개발, 생산하는 업체는 많지 않다. 국내에서는 매일유업이 유일하다. 매일유업은 선천성 대사이상 환아들을 위해 1999년부터 자체기술로 개발한 특수분유 8종 12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정부는 만 19세 미만 대사이상 환자들에게 무료로 특수분유를 공급하고 있는데, 매일유업이 없다면 전적으로 수입품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수분유는 일반 조제분유 제조와 비교해 시간 소요가 많고, 과정도 까다롭다. 특수분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전 공정을 중단하고 24시간 동안 기계 내부를 세정해야 한다. 소량 생산이기 때문에 포장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기업이 가장 우선시하는 목적은 이윤추구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사업을 포기하고 다른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매일유업은 특수분유 생산·판매로 이윤을 남기지 않고 있다. 오히려 만들어 팔수록 매년 수억원씩 손해를 보는 구조다. 기업이 적자를 감수하면서 장기간 사업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매일유업이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김복용 선대회장의 의지에서 비롯한다. 김 회장은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받아서는 안 된다”며 환아들을 위한 특수분유 개발을 지시했다. 당시 김 회장은 “기업은 이윤을 추구해야 하지만 동시에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공익적인 무엇이 있어야 한다”며 “비용이 얼마가 들던 특수분유 사업은 중단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윤 추구에 앞서 공익을 우선시하는 창업주의 신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수의 환아들을 위해 21년 동안 이윤을 남기지 않은 채 특수분유 생산을 이어오고 있는 매일유업은 ‘착한 기업’이라 불릴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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