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그 남자의 책 198쪽'서 도서관 사서 은수 역

오랫동안 '국민요정' 이미지로 뇌리에 간직된 그녀와 영화나 드라마 속 역할의 간극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다. 여성그룹 S.E.S로 90년대 후반 수많은 오빠들을 설레게 했던 유진(27)이 한 남자의 곁에서 묵묵히 상처를 치유해주는 수호천사가 되어 돌아왔다.

영화 '그 남자의 책 198쪽'(감독 김정권, 제작 DSP엔터테인먼트)에서 도서관 사서 은수 역을 맡아 로맨스의 계절 가을에 꼭 어울리는 사랑을 그려냈다.

극 중 쌀 씻는 모습에 착안해 국민요정도 밥을 직접 지어 먹느냐고 묻자 "당연하죠. 마트 가서 장도 직접 보고 밥도 해 먹어요. 요리 좋아해요"라고 답한다.

국민요정 이미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평소 신앙 서적을 즐겨 읽으며 자신을 다스린다는 유진은 한 발씩 앞으로 내딛는 연기를 향한 발걸음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다음은 유진과 나눈 일문일답.

- 연기활동에서는 S.E.S 시절 국민요정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역할들을 연기해왔다. 일부러 털털하고 소박한 인물을 고르나.

▶ 의도한 바는 아니다. 배우는 선택을 받는 입장이니까. 감독님들이 나에게 그런 이미지를 보는 것 같다. '진짜 진짜 좋아해'의 봉순이나 '아빠셋 엄마하나'의 나영이가 사투리를 쓰는 시골 출신 요리사나 애 딸린 엄마였던 걸 빼면 그냥 무던한 역할이었다. 사실 S.E.S 당시 이미지는 솔직히 만들어진 면이 강하다. 무대라는 게 워낙 사람을 화려하게 비추니까 신비감도 생긴다. 하지만 여봉순의 왈가닥 같고 와일드한 면이나 '그 남자의 책'에서의 발랄한 모습은 실제 내 모습에 가깝다. 자주 보여 지지 않았지만 내 모습이다.

- 소화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던 역할도 매우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연기수업을 따로 받은 적이 있나.

▶ 작품을 택할 때 나와 잘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작품을 찾는 것 같다. 만일 나 스스로 어색하다고 느낀 역할이었다면 연기를 못하는 걸로 비치지 않았을까. 보통 시나리오나 대본을 읽을 때 만화처럼 쉽게 빠져드는 작품을 고르는 편이다.

- '그 남자의 책 198쪽'을 택한 이유는

▶ 은수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나와 공감대가 많았다. 은수는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했을 이별을 겪었지만 밖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여자다. 은수가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도 잘 와닿았다. 남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스스로는 아픔을 가진 면이 나와 닮은 듯 했다. 대부분 여성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 이별과 관련해 은수만큼 아픔을 겪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 물론 이별로 인한 상처를 혼자서 삭힌 적이 있다. 아주 오래 그런 마음을 간직한 적이 있기에 은수의 심정이 어떤 지 저절로 공감이 갔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지만 불현듯 아픔이 밀려오는 그런 느낌을 잘 안다. 지금은 그런 심정에서 거의 벗어났다. 한동안 은수로 살면서 감정이입도 하고 공감도 했다. 이제는 혼자서 밤에 맥주 마시면서 울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 그 심정에서 100%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 포스터에 이동욱과 키스신이 달콤하게 묘사됐다. 정작 영화에선 키스신이 없던데 촬영 에피소드는.

▶ 우리 영화는 엔딩 무렵 사랑이 시작되려는 느낌이다. 극 중 키스신이 나오면 전체 분위기를 흐렸을 거다. 사실 포스터 촬영 당일까지도 키스장면이 있다는 걸 몰랐는데 현장에 딱 가니 콘티를 주더라. 동욱이와는 6년 전 드라마 '러빙유' 때 만나 친구처럼 지내온 사이라 러브라인은 좀 어색했어요. 사진작가분이 너무 사랑스러운 커플을 주문하시는데 진짜 어색하고 웃음이 났어요. 영화 속 상황이라면 오히려 감정이입이 되겠지만 계속 가까이 얼굴을 마주대고 눈뜨고 있느라 힘들었죠. 하지만 잘 모르는 남자 연기자랑 입이 맞닿았다면 더 쑥스러웠을 거에요.

- 도서관 사서 역할이라 학창 시절 못 느낀 다양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 실제로 도서관이라는 공간 속에서 사랑이 싹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 쪽지를 건넨다던가 짝사랑 상대를 보기 위해 도서관엘 갈 수도 있겠구나. 실제로 대학에 다닐 땐 도서관에 딱 두 번인가 가봤다. 거의 16살 때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으니까 학창 시절을 거의 못 즐겼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괌으로 이민 가서 중학교를 거기서 다녔는데 만약 한국에서 교복 입고 학교를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많이 해봤다. 날라리 학생이었을까 아니면 모범생이었을까. 교복을 못 입어본 것과 수학여행 못 가본 것이 참 아쉽다.

- 가수로는 최정상의 자리를 몇 년이나 지켰지만 연기에서는 아직 그러지 못했다. 아쉬움도 있을 텐데.

▶ 연기자로서 최정상의 위치를 그렇게 갈망해 본 적은 없다. 사실 불쑥불쑥 욕심날 때도 있지만 그 욕심을 다스리려고 한다. 욕심을 향해 달려가다 보면 사람의 마음이 불행해진다. 지금 이렇게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편이다. 당장 내일도 모르는데 욕심만 부리다가는 일하는 순간순간의 행복을 못 느낄 것 같다.

- 최근 연예계에 안 좋은 사건이 이어지면서 인터넷 악플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악플이라면 한 창 잘 나가던 시절 많이 시달려 봤을 텐데.

▶ 그다지 그런 글들에 신경 안 쓰는 편이다. 물론 막상 대할 때는 기분이 나쁘지만 마음에 두지 않는다. 다만 부모님이나 주위 친한 사람들이 그런 글을 대하고 마음 아파하실 때면 나도 괴롭다.

- 도전해 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 수수해 보이는 역을 많이 했더니 팬들이 "예쁜 역 좀 맡아 달라"는 요청을 많이 한다. 겨울에 개봉하는 '로맨틱 아일랜드'에서는 톱가수 역을 맡았으니 팬들의 소원은 풀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보다 강한 역할, 악역도 해보고 싶고 팜므파탈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스릴러도 욕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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