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해 여름' 이병헌

그윽한 눈빛에 그렁그렁 슬픔이 맺힌다. 애써 웃음을 짓지만 눈동자에 처연한 서글픔이 배어나온다.

배우 이병헌은 눈빛으로 입체적인 슬픔을 만들어내는 배우다. ‘번지점프를 하다’ ‘달콤한 인생’ 등에서 이병헌은 과장되지 않고 담백하게, 그리고 입체적인 슬픔을 만들어 냈다.

이병헌의 신작 ‘그 해 여름’(감독 조근식ㆍ제작 KM컬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병헌은아련한 그리움과 절절한 아픔을 가슴 속으로 끌어 안았다. 농도 짙은 멜로를 들고 돌아온 배우 이병헌을 15일 서울의 한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만났다.

# 노년을 그려내다

이병헌은 ‘그 해 여름’에서 젊은 시절 농활에서 만난 도서관 사서 정인(수애)과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석영 역을 맡았다.

석영은 시대적 장애를 넘지 못하고 사랑을 놓치지만 평생 정인과 추억을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캐릭터다.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연기 경력 중 가장 넓은 연령대를 소화한다.

20대에서 60대까지 석영의 변화하는 모습을 혼자 소화해냈다.

이병헌은 “제작진은 현재와 과거의 석영을 원래 두 명이 나눠서 맡게 할 생각이었다. 내가 모두 해보겠다고 말하니 의아해했다. 관객이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을 일관되게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병헌은 이번 실제 노인과 같은 연기를 위해 특수 분장을 시도했다. 일반적인 메이크업으로 노년의 석영을 만들어냈다. 제작진은 특수 분장에 의존하는 대신 꼬박 한 달 가까이 메이크업을 이리저리 고쳐가면서 나이든 석영의 모습을 탄생시켰다.

이병헌은 처음으로 노인 연기에 도전한 것에 대해 “상상으로 시작해서 상상을 끝난 작업이었다. 어느 정도까지 연기해야 하는지 감을 잡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 센 영화를 위하여

충무로의 속어로 강한 분위기의 영화를 ‘센’ 영화라고 표현한다. 이병헌이 말하는 ‘센’ 영화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병헌은 ‘그 해 여름’의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때 첫 느낌이 강렬했다고 표현했다.

이병헌은 “어린 시절 본 ‘시네마천국’을 보면서 받은 정서적 충격이 떠올랐다. 관객에게는 블록버스터의 폭파 장면보다 감정의 한 구석을 파고드는 영화의 특정 장면이 강렬하게 남는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이 ‘시네마 천국’을 보면서 느꼈던 추억의 기쁨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싶어했다. 애잔한 영화의 한 장면과 함께 떠오르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관객 한명 한명에게 색다른 감흥을 남길 것이라고 믿었다.

‘그 해 여름’은 관객에게 ‘정서적 충격’을 줄 수 있는 공식에 충실했다. ‘그 해 여름’은 여러모로 애잔한 추억을 캐릭터와 이야기 구조에 잘 녹여낸 감성적인 영화다.

# 15년 축적된 캐릭터의 변주곡

석영의 캐릭터는 이병헌이 출연한 전작의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병헌은 “가슴 저미는 아픔이 겪지만 애써 태연하고 속으로 삭히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다. 내가 원래 그런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캐릭터지만 작품마다 반복 혹은 재생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병헌은 그만의 방식으로 ‘석영’을 탄생시켰다. 이병헌은 “처음에는 상당히 냉소적이고 어두운 인물로 묘사됐었다. 감독과 오랜 토론을 거쳐 경쾌하고 역동적인 인물로 새롭게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이어 “대학생 시절은 아직 가치관이 확고하게 형성되지 못한 때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리더라도 세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좌충우돌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젊은 시절 나이의 특성을 캐릭터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연기 경력 15년, 이병헌은 어느새 주어진 캐릭터의 삶에 머물지 않는다. 이병헌은 자신만의 색깔로 변주해내는 내공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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