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 '데이지'

이쁜 전지현과 잘생긴 정우성, 그리고 연기 잘하는 이성재 등 톱스타급 배우가 출연하는 멜로 영화라면 관객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한다. 여기에 감독이 '무간도' 시리즈로 유명한 류웨이장(劉偉强)이라면 더 들뜬 시선으로 지켜볼 만하다.

촬영이 모두 끝난 후 오랜 기간 숙성의 시기를 거쳤던 '데이지'(제작 아이필름)가 네덜란드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 선보였다. 한국 영화로는 처음 네덜란드에서 올로케이션한 작품.

전지현이 무명의 화가로 설정된 까닭인지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된 데이지꽃은 그 순박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끝없이 피어있다.

류웨이장 감독은 때론 암스테르담 거리 전체가 드러날 만큼 멀게, 때론 화면 가득할 정도의 클로즈업으로 촬영을 번갈아 하는 영상미로 자꾸만 흔들리려 하는 이야기를 채우려 했다.

혜영(전지현)은 거리의 화가. 낯선 나라에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는 외로운 여자다. 데이지를 그리러 간 그가 외나무 다리를 건너다 개울물에 빠지고, 얼마 후 다리가 놓인다. 그리고 매일 오후 4시15분 데이지 꽃이 배달된다.

혜영은 데이지꽃을 보낸 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자신의 마음을 속절없이 내놓고 만다. 꽃을 보낸 이는 킬러 박의(정우성). 그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던 혜영 앞에 데이지 화분을 든 정우(이성재)가 나타난다. 혜영은 정우가 '바로 그'임을 의심치 않고 마음을 기꺼이 허락한다. 국제 경찰로 마약 조직을 쫓고 있던 정우 역시 혜영에게 사랑을 느낀다.

어느날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혜영은 목에 깊은 상처를 입고, 정우는 큰 부상을 당해 한국으로 보내진다.

그날 이후 혜영은 말을 잃는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박의는 여자를 가까이 하면 안되는 킬러라는 신분을 뒤로 하고 혜영에게 다가선다. 헌신적인 박의의 사랑이 화면 가득 펼쳐진 후 정우가 다시 등장한다. 이들 세 명의 엇갈린 사랑은 전혀 엉뚱한 사건으로 방향이 틀어진다.

세 남녀의 운명 같은 사랑. 멜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어떻게 버무리느냐가 관건이었을 터. 감독과 제작진은 내용보다는 영상으로 승부를 건 듯하다. 이쁜 전지현과 잘생긴 정우성, 그리고 덤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것으로도 충분히 극장을 찾을 만하다고 내세운다. 하긴 한국 영화 관객이 유독 가혹하게 요구하는 멜로 영화 수준을 맞추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 이 같은 선택 역시 시도해 볼만 했을 것이다.

영화는 세 남녀의 관점에서 교차 편집하며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려 했다. 같은 상황이 달리 표현됨으로써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닌, 삶은 곧 운명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한 영화는 다시 한번 전지현이라는 배우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비록 정우성과 이성재가 있다 하지만 '데이지'는 전지현의 영화라는 인식이 강하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이후 또 다시 긴 휴식기를 갖고 난 후 선택한 영화였기에 기대감이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데이지'는 아직도 'CF스타'라는 선입견을 깨기에는 부족해보인다. 불안한 발성을 보였던 전지현은 영화 중반 말을 잃는 것으로 설정되며 아예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한다. 그가 영화 속에서 우는 장면을 그를 모델로 한 회사에서 미리 봤던 것일까. 전지현이 울기만 하는 한 CF가 연상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애처러운 사랑 이야기를 담은 뮤직비디오 한 편을 두 시간 동안 감상한다 해도 분명 영화만의 미덕을 뽑아내 가슴 시린 멜로 영화로 기억할 관객이 있기를 기대한다.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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