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라운딩을 하고 있는 이승엽.
2030세대들이 ‘축구 레전드’ 차범근(69)을 기억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들의 성장기때 차범근은 축구 감독이나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1980년대, 프리미어리그를 훨씬 넘어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던 분데스리가에서 통산 98골(당시 외국인선수 역대 최다)을 터뜨리며 ‘갈색 폭격기’로 유럽 무대를 뒤흔든 차범근의 어마어마한 명성을 알리가 없다.

물론 그들은 ‘야구 레전드’ 이승엽(46)은 익히 안다. 자라면서 한일 프로야구에서 홈런왕의 위엄을 떨친 이승엽의 활약을 직접 혹은 TV 중계를 통해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러면, 10대들은 이승엽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최근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지인이 중학생인 아들에게 “이승엽을 아느냐?”고 물어 봤더니 “골프 선수 아니예요?”라는 답이 돌아왔단다.

골퍼? 아하, 이승엽이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골프 선수로 자주 등장하니 이를 보고 골퍼라고 오인하는 것이구나.

필자는 이 소리를 듣고 기가 막히기도 했지만, 이승엽의 이미지가 이렇게 잘못 비춰진 것에 대해 슬프기까지 했다. 이승엽은 올해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9.10~25)의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곧 그가 자격 미달임이 밝혀져 충격을 줬었다.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라 국가대표 감독 공채에 응모하려면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경우 1년 이상 지도자 경력을 갖춰야 한다. 이승엽은 2017년 은퇴후 줄곧 방송 해설위원, KBO 홍보대사를 지내고 예능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 현장 지도경험이 없으니 공모 응시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이승엽이 지도자를 포기하고 특히 골프 활동에 매진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 뭐라고 지적, 혹은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KBO 홍보대사’ 자격을 갖고 있으므로 프로야구 홍보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나 이승엽은 야구 아닌 골프 홍보대사 노릇에 더 심취해 10대들이 그를 야구 선수가 아닌 골프 선수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야구 관계자들은 심히 한탄스럽다(이승엽이 재능기부에 나서는 건 1년에 서너차례, 그것도 일일 강사로 봉사하는 게 전부).

이에 반해 축구 스타 이천수(41)는 요즘 엄청나게 축구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어 축구 팬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2020년까지 프로팀 인천 유나이티드 전력강화실장으로 활약했던 이천수는 지난해초부터 ‘축구 전도사’로 변신해 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축구 홍보대사인 이천수가 여자연예인 축구 프로그램을 통해 축구를 널리 알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축구 천재’로 불렸던 그가 축구 홍보에 나선 것은 1년전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을 맡으면서다 이천수는 1주일의 절반을 유튜브에 할애하고 나머지 절반은 방송 출연으로 보낸다.

유튜브 첫 콘텐트로 심판에 도전한 이천수가 어설픈 동작으로 실기 테스트를 보는 모습에 팬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천수가 심판 강의를 듣는 영상은 376만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 그는 방송 예능프로 ‘골때리는 그녀들(골때녀)’에서 감독으로 활동, 여자 축구 나아가 축구 전체를 홍보하는데 엄청 공을 들이고 있다.

여자 축구 못지않게 여자 야구도 최근 인기세를 타고 있다. 2020년 3월 창원시는 지방자치단체중 처음으로 여자 야구단을 창설해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전국에는 45개팀의 여자 야구단이 활동하고 있다. 야구 관람객중 여성이 45%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 정도 인기면 ‘골때녀’에 못지않는 ‘공때녀(공때리는여자)’나 ‘홈때녀(홈런때리는여자)’라는 예능 프로를 만들어 야구 활성화에 불을 지필수 있다. 이제 봄이 오면 야구시즌이 아닌가?

그런데, 이승엽같은 야구 레전드이며 야구 홍보대사가 ‘골때녀(골프때리는여자)’에 몰두하고 있으니 야구계에서는 한숨 소리가 절로 나오고 있다.

2년이 넘는 코로사 사태로 올해 관람석이 전면 개방돼도 과연 50%를 채울지 장담못할 정도로 프로야구 흥행은 일대 위기다. 이승엽뿐 아니라 10개 구단, 나아가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발벗고 나서 ‘야구 살리기’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24일 오전 11시 현재, 총액 30억원 이상의 ‘FA 대박’을 터뜨린 선수 16명의 기부 소식은 하나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언론보도 기준).

다만, 1년전 ‘4+3년 85억원’을 계약한 두산 허경민(32)이 최근 모교인 광주 송정동초교 등에 총 3000만원의 야구용품을 지원, 그나마 프로야구 선수들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다.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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