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한국시리즈 우승팀 두산 선수들이 박정원 구단주와 함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두산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해 트레이드를 활성화 하는 등 그룹의 실정에 맞는 적절한 구단 운영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

“KBO리그의 육성이 아쉽다. 투자없이 축소만 하다보면 다 죽는다.” 일본 소프트뱅크 1군 코치 고문인 김성근 전 감독이 지난 6일 열린 일구상 시상식에 참석해 투자 축소의 움직임이 보이는 KBO리그를 향해 일침을 가했다.

KBO리그를 밖에서 지켜보며 느낀 아쉬움도 전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올해까지 일본시리즈 3연패에 성공했는데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야구단에 투자를 끊임없이 하면서 ‘세계 최고의 야구단’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한다.

김 전 감독은 “우리나라 프런트가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소프트뱅크는 우승해도 만족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전력을 보강하려고 한다”면서 “소프트뱅크에서 ‘조직의 힘은 이런 것이구나’를 배우고 있다. 혼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프런트가 어떻게 보강하고 싸울 수 있게 만들어주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KBO리그가 도입하기로 결정한 샐러리캡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을 밝혔다. 결국 샐러리캡이 구단의 운영비 축소에 방점이 찍히지 않느냐는 것.

그는 “이 세계에서 이기고자 할 때, 투자없이는 안된다. 투자를 하면서 육성을 하는 것인데 그러면 판도가 달라진다”면서 “우리나라 2군은 해외에 가서 경기를 안한다. 일본 3군은 정식 경기가 아닌데도 일본 열도를 돌아다니고 한국까지 이동하며 막대한 돈을 쓴다.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서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축소만 하다보면 우리나라 스포츠가 다 죽는다”고 강조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야구인 입장에서의 시각이다. 경제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견해다.

한국 대기업은 세계적인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IT업체 소프트뱅크와는 비교가 안될 지경인데 투자 확대를 거론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된 발상이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최근 AI(인공지능) 업체에 투자하기 위해 무려 1,080억달러(약 127조원)에 달하는 비전펀드 설립을 확정했으니 그 천문학적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다. 연간 1억달러(약 1190억원)에 못미치는 야구단 투자는 너무나 가벼운 일이다.

일본프로야구 3연패에 성공한 소프트뱅크 호크스. 매년 공격적인 투자로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과도한 투자가 적절한 지는 따져볼 문제라는 것이 일본 현지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경제 사정을 보자. 최근 들어 삼성, 롯데, 두산 등 대기업의 비상경영 선포가 줄을 잇고 있다. 대기업의 비상경영선포는 내년에는 환율과 유동성 위기가 더 커질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내년 경영계획을 짜기에 앞서 허리띠를 조르며 ‘빙하기’를 맞이할 준비 작업에 돌입하고 있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희망퇴직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새 정부들어 ‘탈원전’ 직격탄을 맞은 두산중공업은 벌써 1조원 이상 손실을 봤고 직원 사표수리와 희망퇴직 신청이 계속되고 있다. 프로야구 9개 구단의 모기업은 모두 대기업이다. 독립기업인 키움 히어로즈 역시 불경기의 뜨거운 유탄을 맞지 않을 수 없다.

히어로즈는 2군선수 분식집 식사에 이어 최근 훈련 소집된 신인 11명에게 이부자리를 각자 지참하라는 지시를 내려 또다시 야구인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게 한국 프로야구 2019년 세밑의 현실이다.

모기업의 비상경영으로 올시즌후 9일까지 외부 FA(자유계약선수) 영입이 이례적으로 한건도 없는 등 프로야구단 전체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구단 경영이 주먹구구란 점이다.

최근 5년간 FA 영입에 500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롯데는 가장 시급한 포지션인 주전 포수자리를 메우지 못하고 A급 이지영(키움)이 3년간 18억원에 계약하는 걸 뻔히 지켜만 봤다. 선발투수 장시환과 한화 B급 포수 지성준을 맞바꾸는 ‘밑지는 트레이드’를 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메이저리그에서 스카우트만 담당, 프런트 역량이 검증도 안된 37세 성민규씨에게 ‘어마어마한 권한’의 단장을 맡기며 엄청난 변화와 혁신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다. 양의지(125억원, NC) 김현수(115억원, LG) 최 정(106억원, SK) 최형우(100억원, KIA)와 터무니없이 높게 계약한 게 불과 1~3년전인데 올해는 중형급 선수에게도 ‘눈뜬 봉사’다. ‘FA 거품’이 빠지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몇 년 사이에 왜 ‘온탕 냉탕’을 오가는지 팬들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이 와중에 LG 차명석단장은 FA 오지환에게 협상 개시 직전 터무니없는 ‘50억원’을 발설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나머지 9개 구단 모두 오지환에게 관심이 없는데, 자가발전의 몸값 뻥튀기를 한 셈이다. 오지환은 계약금 포함, 20억~30억원이 충분한데도 백지위임한 걸 오히려 고맙게 여겨 50억원 가까운 수준에서 계약이 타결될 전망이다.

단장의 선수 능력에 대한 판단 잘못으로 연봉 5천만원짜리 유망주를 40명 육성시킬 수 있는 20억원 가량 아까운 돈이 낭비되는 셈이다. 선수에게 끌려가는 구단 처사에 대해 팬들마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모기업의 재정이 좋을 때 돈을 몽땅 쏟아붓고, 형편이 어려울 땐 지갑을 닫는 건 기업에서 20~30년 경력을 쌓은 경영자가 아니라 입사 3~5년차의 대리급도 할 수 있다.

영국의 권위있는 경제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즈는 미.중 무역 분쟁에 따른 수출 부진과 반도체 불황이 겹쳐 ‘수출 한국’은 직격탄을 맞아 50년만의 경제 위기를 맞고 있으며 내년에도 회복이 불투명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그룹 차원의 자력갱생을 위한 중장기 플랜 수립과 효율적인 선수 육성이 시급히 요청된다. 양의지(NC, 125억원) 김현수(LG. 115억원) 민병헌(롯데,80억원)을 내보내고도 여전히 한국시리즈 우승 단골이 되고 있는 두산이 좋은 모델이다.

육성과 성적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1,2군에 노련한 감독과 코치 선임이 필수조건인데 패기만 넘치는 젊은 지도자들을 선호하는 최근의 흐름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본지 객원기자/前 스포츠조선 야구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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