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대전=박대웅 기자] “나는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52승37패. 2018 KBO리그 전반기 2위에 오른 팀은 다름 아닌 한화다. 꿈이 아닌 실화다.

지난 10년 연속 가을 야구에 초대받지 못했던 한화가 믿기 힘든 돌풍을 일으키면서 대전 야구 팬들은 요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한화 이야기가 늘 화제의 중심이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한화 홍창화(38) 응원단장도 전반기를 누구보다 행복하게 보낸 야구 팬 중 한 명이다.

한화 이글스 제공
사실 팀이 암흑기에 빠져 있는 동안 한화 팬들은 울분이라도 표출할 수 있었다. 스트레스가 쌓일 땐 경기를 안 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홍 단장은 실망감을 감추고 늘 웃어야 했다. 본인보다 곁에 있는 팬들을 다독여야 했고, 마지막까지 뜨거운 응원을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했다. 이같은 시간을 약 10년 가까이 보냈다.

한 때 한화 응원단장은 세상에서 가장 극한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다. 하지만 올시즌은 그렇지 않다. 홍 단장에게 가장 먼저 던진 “요즘 행복하세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관중들도 좋아하시고 선수단 분위기도 좋으니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저 역시 당연히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극한직업의 시작

한국체대 출신의 홍 단장은 대학시절 동아리 천마응원단 활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응원단장의 꿈을 키웠다. 신입생 시절 오리엔테이션에서 응원단 선배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

한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바로 1년 뒤의 일이었다. 한화 골수팬인 후배와 학교 앞 치킨집에서 함께 경기를 관전하다가 한화 야구에 푹 빠졌다.

“그 때가 1999년이었어요. 한화가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시즌이에요. 그리고 2006년에 때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서 한화 응원단장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008년 SK에 한 시즌 머물렀던 것을 제외하면 야구팀은 줄곧 한화만 맡았어요.”

응원단장 초창기에는 좋은 일들이 가득했다. 첫 해(2006년)부터 한화가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듬해에도 3위로 여전히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2008년부터 한화에 암흑기가 찾아왔지만 당시 홍 단장은 SK에 몸담고 있었으며 결국 우승까지 경험해봤다. 그러나 2009년 한화로 돌아온 이후부터 상황이 조금씩 꼬였다.

사진=박대웅 기자
“팬들께서 어느 순간 홍창화 응원단장 때문에 암흑기가 찾아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한국시리즈도 가봤고 플레이오프도 가봤다.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죠. 그런데 성적이 가면 갈수록…(웃음).”

홍 단장이 꼽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바로 2012년이었다. 한화 뿐 아니라 그가 담당했던 타 종목 구단들이 집단으로 최악의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6년 전이었어요. 당시 한화가 꼴찌를 했고 겨울에 맡은 남자배구 구단은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연루됐어요. 여자농구 KDB생명도 최하위였죠. 여자배구 현대건설만 제외하고 모두 꼴찌를 해서 주변 분들이 저에게 ‘트리플 크라운’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무렵 ‘극한직업’, ‘영원히 고통 받는 홍창화’와 같은 제목의 사진들이 인터넷에 떠돌았던 것 같아요.”

▶팬에게 불어넣는 에너지, 팬들에게 받는 에너지

맡은 팀이 동시에 최악의 성적을 냈고, 그 중에서도 애착이 컸던 한화의 부진이 너무나도 길어지면서 당연히 홍 단장도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동안 “힘들었다”는 말을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응원단상에서만큼은 본인도 프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가 보살팬들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성적이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점수가 많이 벌어지면 중간에 집으로 가시는 분들도 과거에는 솔직히 많았어요. 하지만 그런 분들에게 힘을 주고 선수단에게까지 힘을 불어넣는 것이 제 역할이잖아요. 팬들이 떠나려고 하면 마이크를 들고 집에 가지 말라고 이야기를 참 많이 했죠.”

성난 팬들을 붙잡는 노하우도 다양했다. 지금부터 전광판을 보지 말라고 권하는 것은 가장 자주 쓰인 그의 단골 멘트다. 이미 10점 차 이상으로 벌어져 있을 때에는 가상의 상황까지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지금은 한국시리즈 7차전 동점 상황의 9회 마지막 공격입니다. 여기서 1점만 더 내면 우승입니다”와 같은 일종의 최면을 걸 때도 있다.

성적이 좋은 올시즌도 전혀 예외일 순 없다. 넥센에게 8-22로 완패를 당한 지난 11일 홍 단장은 9회말 공격을 앞두고 맥주잔을 머리 위로 들었다. 비록 당일 경기는 역전이 어려워졌지만 ‘우리의 내일, 우리의 미래’를 외치며 관중들에게 건배 제안을 했다.

“사실 보리차가 담긴 맥주잔이었어요.(웃음) 그런데 팬들께서 그런 노력을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집에 가려다가 다시 자리에 앉는 분들도 있었고요. 사실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힘든 것보다는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훨씬 컸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선수도 아닌데 관심을 가져주신 것이니까요. 어쩌면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준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저도 팬들을 통해서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한화 이글스 제공
▶‘나는 행복합니다’ 응원가의 탄생 비화

“‘나는 행복합니다’ 응원가요? 글쎄요. 제가 선수로 뛰었을 때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한용덕 감독)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뿐 아니라 한화 경기가 열리는 곳에서 늘 울려 퍼지는 노래가 있다. ‘나는 행복합니다’로 시작해 ‘이글스라(한화라서) 행복합니다’로 끝나는 가사. 10개 구단 야구 팬들 상당수가 알고 있는 이 노래는 바로 2011년 홍창화 단장이 만든 응원가다.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 원곡을 활용해 ‘행복송’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뜻밖의 과정을 통해 한화 팀 응원가로 쓰이게 된 사실까지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다. 홍 단장이 그 궁금증을 풀어줬다.

“이 응원가를 한참 팀이 암흑기에 빠져있을 때 만들었어요. 그런데 암흑기에 빠져있다고 해서 응원까지 우울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평소 응원가 아이디어를 주변에서 많이 받는 편인데 ‘행복송’은 친구의 어머니가 사우나에서 우연히 들으신 뒤 제게 추천해주셨어요. 트로트 느낌이 있었지만 많이 들어본 멜로디였기 때문에 잘 접목하면 재미있는 응원가가 나올 것 같았어요.”

이 ‘행복송’은 팀이 극적인 장면을 만든 순간 뿐 아니라 크게 뒤져 있을 때에도 안타만 터지면 상황을 가리지 않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순간에도 팬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제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 단장의 의도와 달리 암흑기가 너무 길어지고 무기력한 승부가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해탈 내지는 상대 팬들의 조롱 용도로 변질되는 경우도 있었다. ‘행복’을 ‘항복’으로 또 한 번 개사하는 등 온갖 부정적 패러디가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행복송’이 구슬프게 들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화 선수단이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고 있으며, 패하더라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이면서 팬들에게 진짜 행복을 안기고 있기 때문이다.

홍 단장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팀 응원가도 바로 ‘행복송’이다. 정말로 행복한 상태에서 행복송이 연일 울려 퍼지고 있기 때문에 응원가를 제작한 보람을 최근에서야 제대로 느끼고 있다.

팀 응원가인 ‘행복송’ 외에 선수 개인 응원가 중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완성시킨 곡들이 많다. 홍 단장은 본인이 제작한 역대 톱5 선수 응원가로 정근우(원곡 The Raiders March-인디아나존스 OST), 최진행(원곡 Marry you-브루노 마스), 전근표(원곡 Love portion No.9-더 서쳐스), 신경현(원곡 Macho Man-빌리지 피플), 강경학(원곡 어이-크레용팝)의 곡을 꼽았다.

올시즌 응원가 저작인격권 분쟁으로 기존의 익숙했던 곡들이 대거 자취를 감추게 됐지만 홍 단장은 수많은 팬들이 최대한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응원가를 뽑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을 거듭해왔다. 단지 응원단상에서만 그의 열정이 표출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근우 선수는 예전 응원가가 너무 강렬해서 그 다음 음악이 큰 호응을 얻지 못했는데 올해는 더욱 심혈을 기울였어요. 김태균 선수도 10년 넘게 불러왔던 응원가가 다소 가볍다는 인식이 있어서 웅장하게 만들어봤고요. 팬들께서 더 많이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호잉 선수의 응원가는 당초 둘리 요청이 많이 들어왔는데 사실 저작인격권이 있는 곡이라 실패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어요. 모건처럼 호잉이 금방 팀을 떠나는 긴급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저작인격권이 없는 외국 민요로 제작했죠. 다행히 곡이 흥겹고 호잉 역시 좋은 활약을 해주면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호잉도 좋아해줘서 참 뿌듯해요.”

사진=박대웅 기자
▶홍 단장이 말하는 우리 한화 팬들

한화에 오랜 기간 몸담으면서 어느덧 팬들과도 정이 많이 든 홍 단장이다. 기억에 남는 관중이 있는지를 묻자 오랜 한화 팬이라면 누구나 반가워 할 유명인의 별명이 그의 입 밖에서 나왔다.

“상당히 많죠. 지금은 경기장에 안 오시는 것 같은데 일명 ‘맛동산 아저씨’로 통하는 분이 계셨어요. 경기가 시작되고 어느 순간 단상 옆에서 과자를 한 박스씩 던져주고 가셨던 팬이었어요. 호루라기 소리보다 더욱 기막히게 휘파람을 잘 부셨던 ‘휘파람 아저씨’도 생각이 나네요. 이 분은 요즘도 가끔 경기장을 찾아요. 또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한 2006년 당시 중학교 1, 2학년 여학생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어느덧 시집을 가서 이제는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장에 와요. 참 느낌이 새롭습니다.”

한편 홍창화 응원단장은 한화 팬들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매력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의리다. 팀이 오랫동안 암흑기에 빠져 있을 때에도 꾸준히 경기장을 찾는 모습, 점수 차에 관계없이 마지막까지 응원을 펼치는 모습은 타 구단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한화 팬들은 의리 뿐 아니라 정도 참 많다고 생각해요. 제가 SK에 1년 동안 있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많은 분들께서 반겨주셨어요. 그리고 한화 팬들의 마지막 매력으로는 비슷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의리와 정을 바탕으로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응원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만 정말 그런 모습이 멋져 보여요.”

한화 이글스 제공
▶“목표는 3000경기, 결혼 공약도 이루고 싶어”

홍창화 응원단장은 한화 팬들 앞에서 그동안 많은 공약을 걸어왔다. 앞서 언급했듯 형편없는 경기력에 실망하는 팬들의 모습이 보이면 분위기를 어떻게든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헤어스타일이 수시로 변했던 이유도 공약을 지킨 일종의 결과물이었다.

“예를 들면 지고 있을 때 '역전을 시키면 아줌마 파마를 하고 오겠다'는 말을 제가 꺼내요. 팬들도 역전이 어렵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제가 그런 공약을 걸면 목소리를 크게 내거든요. 그런 과정을 겪다가 어느덧 염색은 기본이 됐고, 호일펌, 스님 삭발, 심지어 야구공 모양으로 머리를 밀었던 때도 있어요. 최근에는 많이 얌전해졌지만 무기력한 경기가 또 나온다면 언제든 헤어스타일 이야기를 다시 꺼낼 준비가 돼있어요.”

사실 헤어스타일과 관련된 공약은 결혼 공약과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다. 과거 홍 단장은 팀이 우승을 하지 못하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무리수를 투척한 경험이 있다.

안타깝게도 그 해 한화는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후 우승이 아닌 4강으로 기준치를 낮췄지만 계속해서 한화가 가을 야구를 경험하지 못해 팬들까지도 홍 단장을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제 입이 방정이었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결혼 타이밍을 두 번 정도 놓쳤어요. 결혼을 하려고 했다가 결국 미뤘는데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컸죠.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뒤 결혼을 하면 그만큼 더 많은 축하도 받고 아름다운 시나리오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올해 한화가 좋은 경기를 보여주면서 이제는 만나는 팬들마다 '결혼 축하한다'는 농담을 던져요. 한화가 가을 야구에 나가면 저도 비로소 결혼의 자격이 생기니까 당장 올해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서둘러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제법 있으니까요.(웃음).”

결혼도 중요한 문제지만 홍창화 응원단장이 이루고 싶은 궁극적 소원, 최종 목표는 따로 있다. 바로 한화 유니폼을 입고 응원단상에 올라 팬들과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행복한 순간을 최대한 오래 만끽하는 것이다.

“지난 4월에 한화 응원단장으로 1000경기에 출장했는데 그 기념으로 구단에서 시구 행사 같은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해줬어요. 마케팅팀, 홍보팀 뿐 아니라 한용덕 감독님께서도 직접 꽃다발을 주셔서 정말 깜짝 놀랐죠. 그 당시에도 했던 말이지만 앞으로 2000경기, 3000경기까지 응원단상에 오를 수 있도록 정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 소망이 이뤄진다면 한화가 우승하는 모습도 최소 두 번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홍창화 단장에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지 다시 한 번 물었다.

“너무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이 행복이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어요. 이제 전반기가 끝났는데 후반기에도 좋은 흐름이 꼭 이어져서 모든 한화 팬들이 염원하는 가을 야구, 또는 그 이상까지도 바라봤으면 합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선수단이 힘을 내서 우승을 할 수 있도록 저 역시 팬들과 최선을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박대웅의 글LOVE : 글러브(glove) 속에 빨려 들어가는 공처럼 몰입력 있는 기사, 글LOVE라는 표현처럼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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