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구본능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의 가장 뛰어난 업적이 ‘차기 총재의 낙하산 인사’를 철저히 배제한 것이 아닐까. 구 총재와 10개 구단 사장들은 지난달 29일 열린 KBO 이사회(사장단 회의)에서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내년 1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제22대 총재로 추대했다.

정운찬 내정자는 조만간 구단주들의 서면 의결을 받아 13일의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끝난 뒤, 감독관청인 문화체육부의 승인하에 정식 취임하게 된다. ‘야구 사랑’이 남다른 정 내정자가 해결해야 할 프로야구계의 해묵은 숙제 및 발전책을 간추려본다.

1. KBO 이사회에서의 엄정한 조정과 중재 역할에 많은 야구인들은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제까지는 구단과 선수, 구단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총재는 대부분 구단편을 들거나 주요 구단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신임 총재는 ‘좌고우면(左顧右眄)할 필요가 없다. 사상 초유의 거물급 총재인데다 야구에 대한 애정이 특별하기 때문에, 메이저리그(ML) 커미셔너처럼 ‘야구 발전, 팬 위주’의 원칙을 금과옥조로 삼아 소신껏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룹내에서 야구와 전혀 무관한 업무를 해왔으나 야구단 사장으로 취임하면 사명감이 남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2년내 4강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하면 문책을 당하기 마련이다. 사장들은 ‘구단 이기주의’에 빠지기 마련이므로 총재는 늘 이를 경계해야 한다.

1. 새 총재는 이사회에 급여를 정식으로 요청해야 한다. 역대 총재들은 대부분 급여를 받아 왔으나 유영구(17~18대) 구본능(19~21대)총재가 연속으로 무보수, 명예직으로 근무해 급여 부분이 애매한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새 총재에게는 급여 및 성과급을 지급해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게 해야 한다. CEO가 되게 해야 한다. 새 총재가 각 지자체로부터 장기 임대와 임대료 인하를 이끌어내고, 중계권료 수익을 크게 낸다면 응당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절차상으로는 신임 사무총장이 이사회에 급여와 관련된 의결을 요청해야 됨).

1998년부터 2015년초까지 ML 커미셔너를 지낸 버드 셀릭은 획기적인 중계권료 수입 증대를 이끌어내는 등 눈부신 성과를 낸데 힘입어 최고 2000만 달러(약 240억원)의 연봉을 받기도 했다.

KBO 제22대 총재로 내정된 정운찬 전 국무총리.

1. 신임 총재는 ‘디테일’에도 능해야 한다. 매년 입단하는 신인 선수 중 절반 이상이 수술 경험이 있거나 곧 수술을 받아야 할 상태에 있다는 절박한 리포트가 있다.

고교 선수들이 부상에 시달리는 이유는 투구, 타격행위를 금해야 하는 쌀쌀한 날씨의 2월중에 매년 비공식적인 대회를 갖기 때문이다. 특히 투수들 부상이 심각하다.

최근 프로 경기에서 투저타고(投低打高) 현상이 심화돼 3할 타자가 크게 늘어나고 경기당 득점이 증가하고 있다. 당연히 평균 경기 시간이 늘고 있다. 이는 곧 프로야구의 상품성을 떨어뜨려 중장기적으로는 팬 감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KBO 총재가 아마추어 야구 육성에 지대한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중고 팀수를 늘리고 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상 방지에 최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엿가락 경기시간’을 좀더 살펴보면, 프로 출범후 처음으로 2009년 3시간 20분대(3시간 22분)에 진입했다. 이후 3년간 3시간 10분대를 되찾았으나 2013년부터 다시 3시간 20분대로 돌아갔다.

올해는 3시간 17분으로 나아졌으나, 경기중 비디오 판독시간을 내년부터 2분 이내로 제한하지 않으면 다시 연장될 수 있다. 3시간 20~30분은 프로야구 경기의 심각한 질적 저하를 나타낼수 있으므로 경기의 스피드업에 더욱 매진해야 할 상황이다.

1. 늘 경쟁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선수들은 인터넷 도박과 승부조작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심판 비리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일수 있다. 팬들이 경악할 ‘SNS 사고’도 한해 한두건씩 연례행사로 일어난다.

‘일과성’으로 여기지 말고, KBO내 TF(테스크 포스트)팀을 신설하는 등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할 시점이다.

1. 이제 각 구단과 야구인들은 ‘실무 총책임자’인 사무총장 선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부 인사가 총재가 된 만큼 사무총장은 KBO 행정에 밝은 내부 승진이 바람직하다.

이번주부터 정 내정자는 개인 야구인맥을 통해 사무총장 적임자를 물색할 것으로 보인다. 사무총장 후보들이 물밑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옥석을 가리는 정 내정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1. 이밖에 프로야구 선수협의회는 프로야구 산업화의 걸림돌인 불공정 규약과 낡은 관행 혁파를 요구하고 있다. 또 야구인들의 모임인 일구회는 성명서를 통해 새 총재는 인프라 문제 등 산업화에 매진하고 장기적 비전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출신인 정 내정자가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각 구단, 프로선수협, 언론, 팬들과의 빈틈없는 ‘동반성장’을 이뤄내길 소망한다. 야구 칼럼니스트/前 스포츠조선 야구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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