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 ‘LG의 빅히트 상품’인 이형종(28)의 스토리는 웬만한 야구팬이라면 다 안다. 그는 서울고시절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으나 2009년 LG에 입단하자마자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고, 급기야 임의탈퇴로 야구판을 떠났다.

프로골퍼로 방향을 전환했으나 야구를 잊을 수 없어 2014년 다시 입단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타자로 전향한 그가 1군 선수로 2년째를 맞은 올해 초 한때 4할대의 불꽃타를 휘두르며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4월30일 현재, LG 단독 3위).

이형종

국민타자 삼성 이승엽(41) 역시 투수 출신이다. 경북고 2년 때인 1994년 청룡기고교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는 홈런을 치고, 승리투수까지 돼 우승을 이끌어냈다.

1994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는 투수로 대표 선발됐으나 팔꿈치 부상으로 타자로 일시 탈바꿈, 홈런 3개와 13득점의 놀라운 활약으로 우승컵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는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는데 결국 팔꿈치 수술로 인해 타자로 변신,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大타자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이승엽과 이형종은 투수에서 타자로 변신해 성공한 특별한 케이스지만, 부상과 수술로 인해 프로 입단 몇년만에 쓸쓸히 유니폼을 벗는 선수가 적지 않다. 아니 부지기수다.

프로팀의 투수코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매년 입단하는 투수의 70~80%는 이미 큰 부상을 입고 있거나 곧 수술을 해야 할 처지에 있다고. 엄청나게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최근 몇 년새 ‘타저투고’ 현상이 심해진 것은 괜찮은 투수들이 성장을 하지 못하는 탓이기도 하다.

이처럼 프로야구 앞날이 흔들릴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사실은 현장의 고교야구 감독들이 부상 예방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고교 감독들은 ‘파리 목숨’이다. 감독 취임후 2년내 성적이 나지 않으면 감독직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니, 선수들이 1,2년후 수술을 하든 말든 1,2월의 추운 날씨에도 훈련과 경기에 선수들을 내몰고 있다. 의학적으로는 영상 7도 이하에서 투구를 하면 반드시 팔꿈치 부상과 수술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도 낮 최고 영상 10도가 오르기 힘든 매년 2월에 전국적으로 고교야구 대회(비공식)가 열려 투수들이 혹사를 당하고 있다.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수술대에 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이를 방지할수 있는 대책을 수립하고 감시, 감독할수 있는 단체는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다.

특히 KBO로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을수 없다. 고교야구 투수들은 프로야구의 젖줄인 탓이다. 좋은 투수가 일찍 시들면 한국 프로야구의 앞날은 암담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KBO는 말만 앞세우는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있다.

KBO 양해영 사무총장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이자 프로-아마 업무공조 TF팀장이다. 그는 늘 인터뷰에서 부상선수의 심각성을 말하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구본능 KBO 총재

KBO 구본능 총재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프로야구 기자단 간담회에서 고교 선수들의 부상 실태를 밝혔지만, 아직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마치 산업통산자원부장관이 각종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못하고 있다고 불평을 터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규제 철폐는 산자부 장관이 앞장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기규정 6조에는 한계 투구수를 130개로 정하고 한계 투구를 한 선수는 사흘간 의무적으로 휴식케 하고 있다. 이를 바꿔 말하면 129개를 던진 투수는 다음날 또 던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규정을 먼저 고쳐야 함에도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기자 간담회 내용을 보면 구총재는 이 규정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

부상 선수 예방은,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적극적으로 해결책 마련에 나선다면 중장기적으로 개선이 가능하다. 우선적으로 중부지방보다 낮 기온이 5~10도 높은 경남과 전남 지역에 야구장을 10~20개 만들어 각 고교야구팀이 부상 걱정없이 따뜻한 훈련 분위기에서 스프링캠프를 차릴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제주도는 겨울철에도 비, 바람이 잦아 훈련장으로 적합하지 않음).

구 총재는 중학시절 야구 선수를 지냈고, 양 총장은 사회인 야구를 20년 넘게 경험했다. 누구 못지 않게 어린 선수들의 부상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두 인사가 고교 선수들의 부상을 남의 일처럼 여긴다면 엄청난 직무유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에 안주한다면 리더의 자격이 없다. KBO의 결단을 촉구한다. 야구 칼럼니스트/前 스포츠조선 야구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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