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오는 9월 14일은 전설적인 투수였던 최동원이 세상을 떠난 지 다섯해가 되는 날이다. 최동원하면 1984년 한국시리즈로 대표되는 4승으로 대표되는 투혼의 대명사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투혼은 혹사와 종이 한 장 차이다.

단기간에 엄청난 혹사로 역사적 업적을 이룬 최동원이 한국에 있다면 미국에는 ‘황금의 왼팔’으로 불린 샌디 코팩스가 있다.

시대는 달랐다. 그리고 던진 팔도 달랐고 국적도 달랐다. 하지만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해당 리그에 영원히 남을 일명 ‘황금의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불꽃을 태웠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는 황금에 눈이 멀어 그 황금이 재앙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함께 기억할 수밖에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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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과 샌디 코팩스의 ‘황금의 5년’

앞 뒤 얘기는 차치하고 최동원과 샌디 코팩스가 가장 전성기를 보냈던 황금의 5년에 대해서만 얘기해보자. 두 선수는 모두 황금의 5년을 맞기 전에도 이미 스타였지만 KBO리그와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5년을 통해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최동원의 황금의 5년은 프로 입단 첫 해인 1983년부터 1987년이다.

최동원 황금의 5년(1983~1987)

1983년 38경기 208.2이닝 9승 16패 평균자책점 2.89 탈삼진148 완투16 완봉1
1984년 51경기 284.2이닝 27승 13패 평균자책점 2.40 탈삼진223 완투14 완봉1
1985년 42경기 225이닝 20승 9패 평균자책점 1.92 탈삼진161 완투14 완봉4
1986년 39경기 267이닝 19승 14패 평균자책점 1.55 탈삼진208 완투17 완봉4
1987년 32경기 224이닝 14승 12패 평균자책점 2.81 탈삼진163 완투15 완봉4

중요 기록만 훑어보자. 역대 유일 2년 연속 200이닝-20승 (1984-1985), 역대 유일 2년 연속 200이닝-1점대 평균자책점 (1985-1986), 역대 최초 400~900탈삼진 돌파(1985~1987), 역대 한 시즌 최다 탈삼진 223(1984), 5년 연속 규정이닝 2배 이상 투구와 전 구단 상대 완투(1983-1987), MVP(1984) 등이 있다.

말이 필요없다. 선동열, 류현진도 이렇게 200이닝 이상 던지며 낮은 평균자책점과 승리, 탈삼진을 챙기지 못했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 뛴 1984년은 리그 MVP 수상과 동시에 세계 야구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 챔피언시리즈(한국시리즈) 4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만들어냈다. 가히 한국 야구가 기억해야할 ‘황금의 5년’답다.

샌디 코팩스 황금의 5년(1962~1966)

1962년 28경기 184.1이닝 14승 7패 평균자책점 2.54 탈삼진216 완투11 완봉2
1963년 40경기 311이닝 25승 5패 평균자책점 1.88 탈삼진306 완투20 완봉11
1964년 29경기 223이닝 19승 5패 평균자책점 1.74 탈삼진223 완투15 완봉7
1965년 43경기 335.2이닝 26승 8패 평균자책점 2.04 탈삼진382 완투27 완봉8
1966년 41경기 323이닝 27승 9패 평균자책점 1.73 탈삼진317 완투27 완봉5

5년간 코팩스는 사이영상, 다승왕, 탈삼진왕 3회(1963,1965,1966), MVP1회(1963), 5년연속 평균자책점, FIP 1위, 올스타선정(1962~1966)에 올랐다. 1963년에는 트리플크라운-사이영상-리그 MVP-월드시리즈 MVP-노히트노런 모두를 해냈다.

1965년에는 월드시리즈 3경기에서 24이닝 1실점(평균자책점 0.38), 2승1패로 1964년에 이어 또 다시 월드시리즈 MVP에 오르기도 했다. 1999년 200만명의 팬이 참가한 '올 센추리 팀' 투표에서 코팩스는 투수 전체 2위(1위 놀란 라이언), 좌완 1위에 올랐고 단 5년의 기록만으로 명예의 전당 역대 6번째 '첫 해 헌액자'이자 최연소 헌액자가 됐다.

SBS 스포츠 주간야구
▶처절한 혹사의 기록들

문제는 너무 많은 투구와 이닝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일단 최동원이 5년간 던진 1209.1이닝은 단순히 한 시즌 동안 약 242이닝을 던진 것으로 지난 2014시즌 187이닝을 던진 벤헤켄(넥센)이 리그 이닝 1위였음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이닝인지 새삼 실감이 난다. 당연히 5년간 이렇게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는 KBO리그 역사에 없었다.

또한 5년간 롯데 투수진이 4730이닝을 던졌는데 최동원은 결국 5년간 팀 전체 이닝의 25.6%를 책임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동원은 역대 완투 순위에서 2위(81회, 1위 윤학길 100회)이지만 선발승/완투승 비율이 무려 92.8에 달했다(SBS스포츠 주간야구 기록). 즉 선발로 나오면 열에 아홉 번은 완투를 했다는 얘기다.

코팩스 역시 혹사에 부상을 달고 살았다. 주무기였던 사이드암 커브는 팔꿈치에 큰 무리를 줬고 결국 관절염이라는 치명적 부상을 안긴다. 가운데 손가락의 끝이 마비되는 혈행장애도 있었던 코팩스는 그럼에도 계속 던져야했다. 오죽하면 매일밤 진통제에 5이닝이 끝나고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더 못 던질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왜 그들은 32세, 31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나

이처럼 화려하면서도 혹독했던 5년을 보낸 최동원과 코팩스는 결국 각각 32세와 31세의 나이를 끝으로 은퇴한다.

코팩스는 1966시즌 종료 후 “내게는 야구를 그만둔 후에도 살아가야할 시간이 있다. 그 시간들을 내 몸의 모든 부분을 쓰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슬픈 말을 남기고 트리플 크라운-사이영상을 싹쓸이한 후 은퇴했다.

최동원은 황금의 5년 이후 학창시절 지속됐던 혹사 후유증이 겹치며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고 만다. 당시 최동원을 상대했던 이순철 SBS해설위원은 “최동원 선배의 말년은 ‘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만나야하는가’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다. 과거의 그 선배는 타석에 들어서기 싫은 선수였는데 이제는 공을 치긴 하는데 ‘이건 아니다’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할 정도. 속구 구속이 130km가 넘지 않자 최동원은 32세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40세, 심지어 50세 선수도 나오는 현대 야구에서 32, 31세 시즌은 새롭게 FA 계약을 맺고 제2의 야구 시즌을 시작하는 시기다(추신수 32세 FA계약 시작). 그러나 이들은 지독한 혹사와 부상을 떠안고 팀을 위해 던져야했고 결국 그들도 인간이었기에 팔은 5년 이상을 견디지 못했다.

최동원의 코팩스의 이같은 황금의, 혹은 재앙의 5년은 현대야구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국과 미국 모두 이 두 사례를 통해 투수분업화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끼게 됐다.

또한 투수 혹사에 대한 개념을 인식했고 최대한 이런 혹사가 나오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야구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나와서는 안 될’ 그들의 5년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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