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내가 하겠다는 의식이 생겼다.”

9월 초 한화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고무적인 현상에 대해 남긴 말이다. 한화가 잇몸 야구를 통해 가을 티켓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고 있다.

한화는 지난 11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7-6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한화는 파죽의 4연승을 내달리며 58승66패3무를 기록했다. 와일드카드 마지노선인 5위(공동) KIA 및 LG와의 승차는 그대로 2.5경기를 유지했지만 4위 SK와의 승차를 3경기로 좁혔기 때문에 순위를 끌어내릴 수 있는 후보를 늘렸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한화가 시즌 막판 핵심 전력들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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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한화는 불펜의 핵심인 권혁과 송창식이 빠진 상황에서 기존보다 높은 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권혁이 팔꿈치 염증으로 지난달 21일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이후 한화는 9승7패(승률 0.563)로 같은 기간 두산(10승6패, 승률 0.625) 다음으로 높은 승률을 기록 중이며, 팔꿈치 뼛조각 염증이 발견된 송창식이 8월24일을 끝으로 자리를 비우고 있지만 역시 9승6패(승률 0.600)로 같은 기간 두산(9승5패, 승률 0.642)에 승률 2위에 올라 있다.

올시즌 권혁과 송창식이 팀 내에 미친 영향력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이나 컸다. 현재는 장민재가 99.2이닝을 소화해 팀 내 최다 이닝을 기록 중이지만 권혁과 송창식 역시 95.1이닝, 97.2이닝씩을 각각 책임지며 부상 전까지 불펜으로는 팀을 넘어 리그 전체에서도 압도적인 수치를 남겼다. 권혁(6승2패 3세이브 13홀드)은 팀 내 홀드 1위를 비롯해 정우람과 더불어 유이하게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인 툿수이고, 송창식(8승5패 8홀드) 역시 팀 내 최다승을 따내며 한화의 수많은 역전극을 이끌었다.

이처럼 마운드의 두 핵심이 빠진 상황에서도 한화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김성근 감독은 지난 4일 넥센전을 앞두고 “한화라는 프라이드를 내부에 가지라고 했다”고 운을 뗀 뒤 “최근 선발투수들이 뒤쪽에 배치되면서 개인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팀을 생각하는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당시 김 감독은 지난 시즌과 올시즌 막판의 모습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작년에는 부상자들이 생기면서 싸우기가 힘들었고, 올해는 그런 경험을 이미 했기 때문에 선수들 역시 송창식과 권혁이 빠진 상황에서 우리가 그 자리를 채우자고 결의를 하는 것 같다. 이태양과 윤규진, 외국인 선수들도 ‘내가 하겠다’와 같은 의식이 생겼다”는 답변을 남겼다.

김 감독은 이같은 언급 이후 스스로 “매 경기가 도박”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총력전을 예고했으며, 실제 보직 파괴 현상이 더욱 심화된 가운데 한동안 내리막을 걷는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주 선발진이 4경기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면서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고, 단순히 성적 뿐 아니라 선발 로테이션이 재구축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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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는 권혁과 송창식 뿐 아니라 타선의 핵이나 다름없는 로사리오가 목 부상으로 7경기 연속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된 상태다. 그러나 이 기간 역시 4승3패로 분전하고 있는 모습.

9월4일부터 9일까지 5경기에서는 팀 평균 3점을 뽑아내는데 그치면서 로사리오의 공백을 여실히 느껴야만 했다. 특히 7일 NC전에서는 단 1점도 올리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고, kt와의 2연전에서도 3점과 1점을 기록하는데 그치면서 힘겨운 사투를 펼쳤다. 선발진의 맹활약으로 2연전을 모두 잡아냈지만 자칫 마운드까지 흔들렸다면 가을 야구에 대한 꿈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도 있었던 최대 고비처였다.

그러나 한화는 10일 SK와의 경기에서 무려 16안타 14점을 폭발시키며 타선이 자신감을 찾았고, 11일 역시 4회초까지 1-5로 끌려가고 있던 상황에서 4회말 양성우의 적시타 및 김회성의 그랜드슬램을 통해 단숨에 승부를 뒤집는 저력을 과시했다. 연속 대타 카드가 적중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 양성우의 경우 로사리오 대신 1루수를 책임졌던 신성현과 교체돼 제 몫을 다해냈고, 김회성도 결국에는 1루수로 경기를 소화했기 때문에 두 선수가 로사리오의 빈 자리를 채워줬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었다.

로사리오는 SK와의 13경기에서 타율 4할4리 7홈런 26타점으로 3개 부문 모두 상대 9개 구단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로사리오의 공백이 가장 크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경기가 바로 SK전이었지만 오히려 한화 타선이 최근 부활을 알린 상대가 SK였다.

로사리오는 13일부터 2연전을 치르는 삼성전에서도 타율 3할5푼6리 5홈런 20타점을 기록하며 사실상 SK 다음으로 강한 면모를 나타냈다. 하지만 잇몸들의 활약이 이어진다면 그의 불투명한 복귀 시점에 대한 우려도 어느 정도는 덜어낼 수 있게 된다. ‘내가 하겠다’는 한화 선수들의 의식이 시즌 막판 기적을 연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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