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야구와 인생은 서로 닮아 있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야구를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인생의 깨달음과 희망을 주고자 했다.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반드시 기회는 찾아오고, 스스로의 한계마저 뛰어넘으려는 노력 그 자체가 바로 성공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불꽃 투혼, 한계에 당당히 도전하는 의지, 팀을 위한 끝없는 헌신을 보여준 한화 선수단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그리고 이들을 대하는 김성근 감독의 태도는 또 어떠한가.

물론 여전히 김 감독을 믿고 지지하는 팬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팬들이 심각한 혼란을 느끼고 있다.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을 쏟아냈는데 오히려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기만 하다. 투혼이라는 포장 하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과주의가 과연 옳은 것인지 이제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다고 한 발 뒤로 물러선다면 그것은 김 감독의 관점에서 실패로 규정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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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감독이 야구를 통해 인생의 참된 교훈을 주고자 했다면 그는 이미 실패한 지도자다. 성적은 둘째 문제다. 너무나 많은 이들에게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믿음보다는 ‘희생은 결국 자기 손해’라는 인식을 뚜렷하게 심어줬기 때문이다.

한화는 최근에만 하더라도 김민우, 권혁, 송창식의 부상 사실이 알려졌고, 이미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그 어느 구단보다도 많은 선수들이 전력에서 이탈했다. 혹사 논란과 관련해서는 부연 설명이 따로 필요하지 않을 만큼 야구계에 큰 폭풍우가 매일같이 몰아쳤다.

혹사에 대한 기준이 김 감독의 언급대로 보는 관점의 차이일 수는 있다. 실제 지난해 수많은 이들이 김 감독의 펑고와 특타 등 지옥 훈련에 열광했으며, 이같은 과정이 오랜 암흑기 속에서 패배 의식에 젖어있던 선수들의 눈빛을 뒤바꿀 최후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부임 후 첫 시즌부터 혹사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했던 한화로서는 고된 훈련 및 전력을 쥐어짜는 운용 방식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탈꼴찌에 성공한 이후에도 김성근 감독은 여전히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마라톤 코스를 100m 달리기 하듯 계속해서 모든 힘을 쏟아내 앞만 보고 내달렸으며, 결국 그동안 우려했던 수많은 부작용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현재의 사태에 이르게 됐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혹사에 대한 논쟁은 관점의 차이일 수 있다. 지난해 패배 의식을 걷어냈다면 올해는 확실한 승리 DNA를 심어주기 위한 의도에서 또 한 번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했다고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이 평소 강조했듯 훈련이 선수를 더욱 강하게 단련한다면 부상자가 이처럼 속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드는 모습이 나왔어야만 했다. 언제나 결과로 승부를 보려했지만 내일이 없는 야구, 쑥대밭이 된 마운드가 현재 김 감독이 보여준 결과물이다.

여기서 또 한 번 김 감독의 입장을 이해해볼 수는 있다. 모든 부상자가 혹사로 인해 나온 것은 아니며, 다른 구단 역시 전력을 쥐어짜고 한화와 마찬가지로 부상을 당하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혹사와 관련이 없는 여러 사건에서도 김 감독은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유독 관심을 집중시켰고, 그 여파가 일파만파 확산되는 경우가 잦았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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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을 실패한 지도자라고 단언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한화에 단지 부상자가 속출했기 때문이 아니라 혹사 논란에 대처하는 그의 아쉬운 태도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 7월 한화그룹 임원 조찬 특강에서 마이크를 잡고 ‘야구의 조직리더십’을 주제로 열강을 펼쳤다. 당시 그는 “리더가 되기 위해선 준비과정과 결과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며 “준비가 허술해지면 결국 결과가 말을 해준다. 리더가 준비하지 않으면서 부하들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리더가 바람을 피하면 그 바람은 아랫사람과 조직을 향한다”는 소신을 400여명의 임원들 앞에서 밝혔다.

하지만 최근 김 감독이 취재진들 앞에서 약 50분 가까이 펼친 소위 ‘일장연설’은 대부분 자기합리화를 위한 변명에 불과했다.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는 제목의 에세이를 펴낸 감독의 입에서 선수에 대한 유감이나 안타까움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본인에게 향해있는 비난의 손가락을 모두 피한 채 선수의 잘못된 폼 문제를 거론하거나 타 팀의 혹사 문제를 끌어들였고, 대한민국 전체에 만연한 혹사 문제로 본질을 흐리기까지 했다.

적어도 선수들은 그를 믿고 따랐다. 모두가 고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투혼을 불살랐고, 부상 소식이 전해지기 불과 며칠 전까지도 “괜찮다”는 말과 미소로 주변의 걱정을 애써 덜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벼랑 끝에 몰린 김성근 감독이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결국 또 한 번의 정면 돌파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이는 약자들도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약자들을 어떻게든 찍어 눌러서라도 결과만 만들어내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정당성을 강자들에게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김 감독이 야구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였다면, 설령 그런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가 만들었다면 그는 분명 실패한 지도자임에 틀림없다.

김 감독은 다큐영화 '파울볼' 시사회 당시 “인생이나 야구나 실패하더라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지 실패의 끝은 아니다”는 말을 남겼다. 김 감독을 실패한 지도자라고 감히 언급했지만 그가 평생 실패한 지도자로 기억되지는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인생이 시행 착오의 연속이듯 야구 역시 시행 착오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 시행 착오를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를 시작으로 지금부터라도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최고의 리더십을 보여주길 희망한다.

아울러 김 감독이 지금껏 입 밖에 내지 않았던 한 마디를 대신 전한다. 부상을 당한 한화 선수들의 쾌유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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