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팬들에게 묻는다. 또 한 번 믿어주시겠습니까?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홈팬들 앞에서 보인 사상 최악의 마무리였다.

한화는 지난 13일 대전 삼성전에서 1-22로 패했다. 이날 패배로 한화는 홈팬들에게 시즌 50승을 선물하지 못한 채 4연패(49승2무76패)에 빠졌다.

올시즌도 이미 최하위가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삼성전은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경기다. 바로 홈팬들 앞에서 선보이는 올시즌 마지막 무대였기 때문. 평일 경기였음에도 대전구장에는 총 4,696명의 관중이 한화의 마지막 홈경기를 열렬히 응원했다.

그러나 한화는 최악의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삼성이 올시즌 자주 언급돼왔던 소위 ‘핸드볼 스코어’를 냈다면 한화는 ‘축구 스코어’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삼성의 21점 차 승리는 지난 1997년 5월4일 삼성(대구 LG전 27-5), 올시즌 5월31일 롯데(잠실 두산전 23-1)에 이어 프로야구 역대 최다 득점 차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한화로서도 1-22의 스코어는 지난 5월28일 대전 NC전 1-18 패배를 뛰어넘는 충격이다. 지난 7월24일 대전 NC전에서는 올시즌 최다인 23실점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한화 타선 역시 9점을 만회하며 공격에서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전날 삼성전은 한화의 야구 역사에 두고두고 치욕으로 남을 경기였다.

마지막 홈경기였다는 점 외에도 최하위가 확정된 바로 다음날 이같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한화는 팬들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겼다.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4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노리는 삼성에게 고춧가루를 뿌리는 자체만으로 홈 팬들에게는 큰 선물이 될 수 있었다.

물론 패할 수는 있다. 그러나 투혼만큼은 보여주길 바랐던 것이 한화 팬들의 공통된 마음이었다. 그동안 10점 차 이상의 패배를 수없이 목격하고도 팬들은 경기장을 찾고 또 찾으며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한화 선수단은 팬들의 이같은 희망고문을 무참히 짓밟았다.

에이스 이태양 역시 고개를 들 수 없는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 그는 한화의 올시즌 명실상부 에이스로 떠올랐고, 미래를 짊어질 선수로까지 낙점 받았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일원으로서 맹활약을 선보여 스스로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하지만 삼성전 2이닝 9피안타(2피홈런) 7실점의 최악투로 시즌 10패(7승)째를 기록했고, 평균자책점 역시 5점대(5.29)로 올라섰다. 또한 올시즌 피홈런(27개) 단독 1위의 불명예까지 동시에 떠안게 됐다. 이날 뿐 아니라 이태양은 10월 3경기에서 2패 평균자책점 12.71을 기록했다. 팀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라는 점에서 그의 부진은 한화 팬들을 더욱 씁쓸하게 했다.

한화 팬들은 속칭 ‘보살’로 통한다. 이들은 승리하는 야구보다 단 1점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에게 묵묵히 박수를 보낸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순위에서 이제 남은 것은 오르는 일 뿐이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시즌 막판 선수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고, 홈팬들이 마지막으로 지켜보는 무대에서 최악의 모습을 노출했다. 이제는 팬들도 10개 구단이 본격 출범하는 내년 시즌마저 최하위를 기록하지는 않을까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한화 팬들에게 묻는다. 그들이 목청껏 외치는 응원가처럼 단지 ‘이글스라 행복한지’를 말이다. 최근 6년 간 최하위만 5번. “다음 시즌 진짜 잘하겠다”는 선수단의 약속이 어긋나도 또 한 번 그들의 등을 토닥여줄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화 선수단에게 고한다. 소중한 ‘보살’팬들을 부디 ‘바보’로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다음 시즌 진짜 잘하겠다”는 약속, 팬들은 기억하고 있다. 수년 간 속아왔지만 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제는 투혼과 열정 뿐 아니라 당당한 성적도 팬들에게 선물하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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