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최종전 두 감독 두 표정
사령탑 경질방침 불구 "선수들 흔들려선 안돼"
"왜 1등 팀에 안가시고 나만 찾으시나? 오늘은 내가 야구장의 히어로네!"
히어로즈 이광환 감독은 2008 프로야구 최종전인 5일 인천 SK전에 앞서 덕아웃에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소리는 컸지만 경질을 눈앞에 둔 탓에 표정은 어두웠다. 히어로즈 이장석 사장은 지난주 감독을 교체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공교롭게도 차기 사령탑으로 거론되는 김시진 전 현대 감독이 이날 경기 감독관으로 히어로즈의 올해 마지막 경기를 지켜봤다.
히어로즈는 지난 2일 선수단에 5일 이후 모든 일정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8일부터 시작할 예정이던 마무리훈련은 물론이고 1위 SK와 2위 두산과의 연습경기도 취소됐다. 이 감독은 SK 감독실을 찾아 김성근 감독에게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졸라서 만든 연습경기를 제가 깨트려서"라며 겸연쩍어 했다.
김종수 코치 등 2군 코치진은 일제히 문학구장을 찾아 이 감독과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인천을 찾은 셈이다. 감독 경질설이 돌자 거취가 불투명해진 코치진도 좌불안석이다. 김성근 감독은 "내가 보기엔 없는 살림에 선수단을 잘 꾸렸는데 구단은 모르는 모양"이라며 혀를 찼다.
감독 경질설로 히어로즈 선수들과 코치는 크게 동요했다. 몇몇 야구인은 이 감독에게 "사장의 뜻을 확인하고 빨리 물러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 감독은 "선수들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마지막 경기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선수들에게 당부했다.
히어로즈 감독실에는 메인 스폰서였던 ㈜우리담배의 주력 제품인 의 연기가 가득했다. 이 감독은 "내 주위 사람들은 (내 부탁으로) 모두 우리담배를 피운다. 이만하면 연봉 값은 한 거지"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 감독은 "박노준 전 단장과 히어로즈를 욕하지 말아달라"면서 "잘못한 것도 많지만 8구단 체제를 지킨 공도 생각해야 한다"며 현장의 수장으로서 마지막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감독의 마음을 헤아렸을까. 히어로즈는 SK를 8-4로 대파하고 유종의 미를 거뒀다. 히어로즈 선발 장원삼은 시즌 12승(8패)과 함께 시즌 4번째 전구단 상대 승리투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