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말은 없었지만 생각은 같았다. “잘못하면 LG가 꼴찌로 추락하지 않을까?” LG가 7연패에 빠진 8일 잠실구장. LG 김재박 감독 주위에 몰려든 취재진은 선뜻 말을 건네지 못했다. 김 감독은 애써 웃으며 평소처럼 음료수를 건넸다.

한 기자가 병뚜껑에 새겨진 ‘행운의 한 병 더’란 문구를 찾았다. 뚜껑을 판매처에 가져가면 한 병을 준다는 뜻. 김 감독은 “나도 한 개 갖고 있다”고 내밀었다. 또 다른 기자가 행운의 병뚜껑을 찾아 총 3개가 됐다. 10병 가운데 ‘행운의 한 병 더’가 3개나 나온 건 보기 드문 일이다.

야구에서 3이란 숫자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투수는 실점을 3점 이내로 막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3할 타자는 수준급 타자로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이종도 전 고려대 감독은 “상대 선발 투수가 다승 1위 김광현이라 오늘은 어렵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재진은 병뚜껑을 김 감독에게 전달하면서 “광현이에게서 3점 이상 뽑아내 연패를 꼭 끊어라”고 덕담했다.

LG 타선은 1-4로 뒤진 5회말 김광현에게서 3점을 뽑아 동점을 만들면서 김광현을 마운드에서 몰아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병뚜껑의 효험(?)은 취재진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동점타의 주인공 박용택이 도루에 실패하더니 LG는 끝내 4-6으로 무릎을 꿇었다. 김재박 감독은 경기가 끝나자 “할 말이 없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김 감독은 행운의 병뚜껑을 받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선수 시절 징크스가 있었는데 징크스를 신경 쓰다 보면 끝이 없다”면서 “감독이 되고부터는 일부러 징크스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선수와 코치는 물론이고 구단 관계자와 LG팬까지 조급했지만 사령탑인 자신만은 흔들려선 안 된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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