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예물로 보내는 비단’이 아니다. ‘예측해서 판단’하는 예단이다. 2018 한국 축구의 인물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박항서 베트남 대표팀 감독, 김학범 U-23대표팀 감독, 그리고 공격수 황의조는 공통점이 있다. 딱 1년전인 2017년 12월 ‘2018년은 이 세 사람을 주목하라’라고 얘기했다면 ‘축알못’ 취급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2017년 우리는 함부로 ‘예단’했고 박항서, 김학범, 황의조는 보기 좋게 반전을 일궈냈다. 세 사람의 2018년 성공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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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끝’인줄 알았던 박항서의 성공

2017년 9월 베트남 대표팀에 박항서 감독이 선임됐을 때 축구계 관계자들은 의아함을 표했다. 솔직히 말하면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항서 감독의 커리어는 분명 내리막길, 그것도 매우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2015년 상주 상무 감독직을 내려오는 과정도 잡음이 있었고 이후 어느 팀도 박 감독을 찾지 않았다. 60세의 나이를 바라보는 박 감독이 현대 축구에 뒤쳐진 감독이라고 봤기 때문. 박 감독은 2017년 3부리그격인 창원시청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여기서도 후반기 성적 하락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박 감독 역시 훗날 이때를 떠올려 “베트남으로 간건 솔직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다른 감독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한국 프로리그에서 더 활동하기 힘들거라고 판단했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 축구계 역시 박 감독과 시각이 같았기에 박 감독은 사실상 커리어가 끝난 감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박 감독은 베트남 감독으로 간 이후 1월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8월 아시안게임 4위, 12월 스즈키컵 우승으로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냉정하게 한국 축구계가 의도적으로 수출해 성공했다기보다 모두가 끝인줄 알았던 박항서 감독의 극적인 개인적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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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논란’ 김학범-황의조, 올해의 감독-선수로 역전

김학범 감독은 김봉길 전 U-23대표팀 감독이 경질되자 급하게 투입된 소방수였다. 커리어 막판 성남FC와 광주FC에서 연달아 아쉬운 모습을 보인 김 감독의 선임에 의문을 가지는 이들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김 감독이 가장 논란이 된 순간은 7월 아시안게임 대표팀 최종명단 발표였다. 당시 김 감독은 백승호, 이강인 등 팬들이 좋아하는 해외 유망주를 발탁하지 않고 월드컵 명단에도 들지 못한 황의조를 발탁해 ‘인맥 축구’라는 말과 함께 대한축구협회의 ‘적폐’세력으로 몰렸다. 같은 칼럼(7월 17일자 [이재호의 할말하자]황의조 뽑고 이강인 안뽑는다고 '적폐'인가)을 통해 기자는 이런 시각의 문제성을 언급했지만 수많은 메일 폭탄과 비난 댓글만 받았을 뿐이었다.

황의조 역시 대표팀 합류하기도 전에 국민적 질타를 받았고 팬들은 김학범과 황의조가 성남 시절 인연으로 ‘제 식구 챙기기’를 했다는 근거없는 비난을 했다. 이에 편승해 몇몇 정치권 인사 역시 황의조를 비난하기 바빴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의 황의조 선택은 득점왕과 40년만에 원정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성과로 돌아왔다. 황의조를 뽑지 않았다면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정도.

단지 성남시절 사제의 연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인맥논란’으로 몰아간 성급한 예단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김학범 감독과 황의조가 보여줬다.

18일 2018 대한축구협회 시상식에서 김 감독은 올해의 지도자상을, 황의조는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며 함께 웃었다. 김 감독은 “남들이 안 된다고 했을 때 오기로 만들어낸 게 희열이 크고 멋지지 않나 싶다. 감회가 새롭다”며 제자 황의조를 안아줬다.

그 어느 해보다 2018년의 한국 축구계의 인물은 1년전이면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인물이라는 점과 성급한 예단의 위험성을 알렸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연합뉴스 제공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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