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스포츠, 글로벌 시장 규모 '21조원' 급성장

지나친 국내 규제는 '허들'…포스트 코로나 대비해야

스포츠산업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문화 확산이 결정타를 날렸다. 생활체육 참여자 수가 급격히 줄면서 시설업은 물론이고 서비스와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상황이 괜찮은 프로스포츠 시장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인해 리그 운영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다. 줄어든 경기 수와 관중 없는 경기장 등 김빠진 프로 팀에 막대한 후원금을 낼 기업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포츠산업계의 새 수익원 찾기는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 됐다. 유럽의 명문 프로구단들이 앞다퉈 e스포츠 팀을 창단하고 수십억원을 들여 스타 게이머를 영입하거나 승부예측 게임을 위한 유료 데이터 사업 등에 적극적인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기대감이 가장 큰 곳은 e스포츠다. 스포츠산업 시장에서 가장 눈독을 들이는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다. 유저(이용자)가 곧 스타 플레이어가 되고, 팬덤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쇼비지니스란 점이 스포츠 상품의 메커니즘과 유사해 산업계 전반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셧다운' 된 프로야구. ⓒ스포츠코리아
◆"You want a bet?"…'판타지스포츠' 급성장

지난해 축구, 야구 등 전세계 프로스포츠 리그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대부분 무관중 경기로 진행됐다. 리그는 '부분 운영'과 '중단' 등을 반복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인 반면 상대적으로 급성장한 분야도 있다. 바로 '판타지스포츠'다. 자신만의 가상의 팀을 꾸려 비대면으로 승부를 예측하고 베팅하는 스포츠 장르 게임물의 일종이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커뮤니티다. 각자가 자신이 생성한 팀과 상대 팀 간의 경기를 감이 아닌 선발 선수와 팀 전술, 전적 등 데이터 분석을 통해 승부한다. 유저 간의 소통을 통해 전문 지식을 공유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경기 데이터 등을 분석해 결과를 예측하는 스포츠 애널리스트(Sport Analyst)라는 고액 연봉의 전문 직업군까지 등장했다.

글로벌 조사업체 얼라이드마켓리서치(Allied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전 세계 판타지 스포츠 시장은 186억달러(약 21조32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눈길을 끄는 건 가파른 성장세다. 양대 산맥인 팬듀엘과 드래프트킹스 등 주요 기업은 연 매출 수 조원 씩을 거둬들이며 연 평균 15% 이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영국 EPL도 판타지 리그를 도입해 유저들이 자신만의 팀을 꾸릴 수 있게 운영 중이다. 유저가 늘어나면서 정보제공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최근 EPL은 미국 오라클의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승부예측 서비스를 개시했다. 중계를 통해 상황 별 확률 등을 도표와 그래프로 시시각각 제공한다.

인도의 판타지스포츠 유저는 약 9000만명에 달한다. 이는 3년여 만에 60배 이상 증가한 결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주목할 만한 건 이를 통해 거둬들인 이익의 상당 부분이 스포츠 단체와 스포츠 팀 등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재투자된다는 점이다. 판타지 스포츠가 '1석2조'란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오라클 승부예측 데이터. ⓒ오라클
◆한국형 '승부예측' 게임…'과잉 규제' 위축 우려

국내에도 이와 유사한 스포츠 장르 게임물이 있다. 경기 승부예측 게임이다. 판타지스포츠와 다른 점은 실존하는 스포츠 경기의 승부를 점치는 게임이란 점이다. 지난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일부 개정되면서 규제에 막혀 있던 게 합법으로 바뀌었다. 지난 1년간 중소게임사는 물론 대형 게임사까지 경기 승부예측 게임 시장에 속속 진입했다.

정책적 변화의 움직임도 있다. 국회는 지난달 ‘스포츠산업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체육과 스포츠의 정의에 ‘두뇌 활동’을 포함하겠다는 게 골자다. 바둑과 체스 등과 더불어 e스포츠를 체육과 스포츠산업 범주에 포함시키겠다는 시도로 읽힌다.

글로벌 시장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 '오락가락' 규제는 아쉬운 점이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셧다운제도가 대표적이다. e스포츠와 게임, 사행성을 연결짓는 부정적 사고도 문제다. 최근 게임물관리위원회는 합법적으로 운영 중인 국내 스포츠 승부예측 분야 일부 게임물에 대해 '등급취소' 결정을 내렸다.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업계는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이 한 해 90조원을 육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 근절보다 합법적인 게임의 규제를 높이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처사라고 주장한다. 되려 우리의 우수한 IT(정보통신) 기술력과 양질의 스포츠 콘텐츠를 결합해 '한국형 판타지스포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할 마당에 지나친 규제가 경쟁 동력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주관적이고 모호한 사행성 기준도 문제다. 게임물이 환전 등 사행심을 유발함으로써 취미와 오락의 범위를 넘어 국민의 정서와 경제적 피해 등이 발생한다는 게 관리 주체인 게임물관리위원회 논리다. 그렇다면 정부가 독점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스포츠토토와 경마, 로또 등은 어떻게 봐야하느냐는 지적에 답이 필요해진다.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은 승부의 박진감에서 나온다. 가정에서 조차 통제가 쉽지 않다는 게임과 사행성이 정부의 통제만으로 가능할 리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스포츠경기에 베팅한다. 글로벌 시장 흐름에 역행하는 지나친 규제가 자칫 불법 스포츠 도박시장의 성역만 넓혀주는 꼴이 되지 않을지 꼼꼼히 살펴봐야 할 때다. 유정우 객원 칼럼리스트

유정우 칼럼리스트 소개 및 약력

경제지와 연예지, IT매체 등을 거치며 스포츠와 생활문화, IT 분야 등의 취재를 맡아왔습니다. SI(Sport Industry)칼럼을 통해 국내외 산업 현장의 이슈와 트렌드 등을 깊이있게 전달하겠습니다.

-현 세계미디어 편집인
-전 한국경제신문 문화스포츠부 차장
-전 한경텐아시아 발행인
-전 한국스포츠산업협회 이사
-전 대한스포츠경영관리사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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