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대표선수들이 도쿄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도미니카에 패한 뒤 침통해 하고 있다.
‘런던 해즈 폴른(London Has Fallen, 런던이 무너졌다)’은 5년 전에 만들어진 할리우드 액션 영화다. 영국 수상 장례식 참석을 위해 전세계 28개국 정상들이 모인 런던, 역사상 가장 철저한 보안태세가 유지되던 런던 도심 전체에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일어나 5개국 정상이 희생되고 미국 대통령이 납치되는 초유의 비상 상태가 벌어지는 게 그 줄거리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무관중 경기, 일부 철없는 선수들의 원정숙소에서 여성들과의 술파티에 이은 도쿄 올림픽의 ‘요코하마 참사’…. 가히 ’베이스볼 헤즈 폴른‘이라고 칭할 만하다. 영화에서는 백악관 비밀 경호원의 눈부신 활약으로 미국 대통령이 극적으로 구출되지만, 급작스럽게 닥친 프로야구의 일대 위기는 그 누구도 구할 엄두를 못낸 채 속절없이 무너지게 됐다.

겨우 6개국 참가에다 한국보다 한수 아래 전력인 4팀이 출전해 메달 사냥은 ‘물반 고기반’으로 여겨졌던 손쉬운 대진 방식. 한국 프로야구 최정예 팀은 어떻게 해서 ‘마이너리그 싱글A급’인 도미니카 공화국에도 완패를 당해 ‘치욕의 4위’로 떨어졌을까.

가장 가까운 원인으로는 대표선수 선발에 문제가 있었던 것. 양현종,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선발투수진이 약해진 만큼 ‘강한 중간 계투’가 꼭 필요했다. 한화 강재민(24)은 전반기에서 2승 무패, 3세이브, 8홀드(자책점 1.04)로 KBO리그 최고의 불펜을 자랑했는데 대표로 뽑히지 않아 전문가는 물론, 팬들도 의아해 했다.

도쿄 올림픽 야구 경기장인 요코하마 구장은 좌우 94m, 중앙 118m로 KBO리그 홈런 공장인 인천 문학구장(좌우 95m, 중앙 120m)보다 작다. 홈런 3개를 맞은 도미니카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보듯이 승부는 ‘한방’으로 결정나게 돼 있었다. 홈런타자의 대명사인 이대호(롯데.1루수, 일본야구 경험), 최 정(SSG.3루수)이 선발되지 않은 건 아쉬운 부분이다.

여기에, 방역 위반에다 원정숙소에서의 여성과의 음주로 대표선수 2명(키움 투수 한현희, NC 내야수 박민우)이 사퇴해 출국 전부터 대표팀 분위기는 술렁거렸다.

김경문 야구대표팀 감독이 8일 침울한 표정으로 귀국하고 있다.

대표팀 코칭스태프 구성도 문제였다. KBO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주역인 김경문 감독을 사령탑으로 선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었다. 13년 전 김경문 감독은 두산 사령탑으로 한국시리즈를 향해 리그 현장을 박진감있게 지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김 감독은 ‘야인’이다. 2018년 6월 NC 감독에서 중도 퇴진한 이후 3년간 야구장 바깥에서 야구를 지켜봤다. 대표 감독이 된 뒤 야구장을 가끔 가긴 했지만, 3년 전 선동열 전 감독이 국회 문체위 국정감사장에서 밝힌 것처럼 대부분 경기는 TV로 관전했다.

‘3할 타자도 사흘을 쉬면 타격감을 잃는다’는 야구 속언이 있듯이 지도자도 야구 현장을 떠나면 경기 감감을 되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투수 교체의 실패, 대타 기용 미스, 부진 선수 계속 기용(양의지, 오재일)은 경기 감각이 무디어진 탓이다.

팀 인스트럭터나 KBO 기술위원 등 생생한 리그 현장을 접하지 않은 이들의 코치 기용도 적절치 않았다.

지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는 야구 대표팀을 비난, 질타, 조롱하는 글이 넘쳐난다(앞으로 야구보지 말자고 부추기는 팬들도 많음). 여기에 김경문 감독이 미국과의 패자 준결승전 패배후 “금메달만 따야 한다는 마음으로 올림픽 온 건 아니다. 한경기 한경기 납득할만한 경기를 하려고 왔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 성남 팬심에 불을 질렀다.

김 감독은 동메달이 좌절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국민들의 많은 기대와 응원에 부응을 못해 죄송하다. 대표팀은 더 강해지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다음 목표는 푹 쉬고 싶다”고 말했다. 성적 부진에 대한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 응당 “모든 책임은 감독인 나에게 있다. 대표감독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어야 했다.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엄청난 좌절, 실망감을 느낀 국민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휴식을 취한 후 다음 국제대회를 준비하겠다는 뜻인가? 김시진 기술위원장 및 기술위원들도 동반 사퇴하는 게 마땅하다.

KBO도 마찬가지다. 이런 중차대한 난국에 사과 한마디없이 넘어가려고 한다. MBC는 올림픽 개회식 물의를 빚고 상대국을 비하한 책임을 지고 박성제 사장이 대국민사과를 했다. MBC에 비하면 KBO의 잘못은 수십배나 크다. 10일 후반기 레이스 시작을 앞두고 KBO 총재 및 10개 구단 사장과 감독들이 긴급히 모여 대국민사과를 간곡히 하는게 팬들에 대한 도의요 예의다.

당장은 무관중경기여서 반응을 알 수 없지만 집합금지가 풀릴 가능성이 있는 9월부터, 또 내년 시즌에 관중석의 몇%를 채울지는 아무도 모른다. 20년 전의 연 관중 200만명 시대로 돌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곧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데도 무사안일하고 태연한 자세를 보이는 KBO는 무능과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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