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준익 감독 '전작으로부터 가장 멀리 가는 것, 제1 원칙'
"'자산어보' 통해 목민심서와 자산어보의 가치성 드러내려해"
2021-05-06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이준익 감독 연출작이라면 믿고 본다"는 개인적 원칙을 세운건 영화 '왕의 남자'(2005)때부터였다. 분명 지겹도록 안방 극장 사극에서 보아왔던 연산군과 장녹수가 등장하는 이야기였는데 영화의 초점은 연산군이 아닌 광대 장생과 공길이었고 사극 최초 1000만 관객 돌파라는 사건을 일으켰고, 여자보다 예쁜 남자 이준기를 하루 아침에 톱스타 반열에 올렸던 바로 그 '왕의 남자' 말이다.
새 작품을 내놓고 있는 같은 연배의 감독이 10여년 이상 선배인 정지영 감독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노장 감독들의 활약이 현저히 줄어든 시대지만 그는 쉼 없이 문제작들을 내놓으며 관객을 울고 웃게 한다.
성폭행 피해를 입은 소녀와 절망 끝에서도 딸을 치유해 나가려는 소원이네 부모의 이야기를 그린 '소원'(2013)부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 '사도'(2014), 어둠의 시대였던 일제 강점기 평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가 시대가 부여한 소명과 꿈 속에서 갈등하고 아파하면서도 처절하게 놓여진 삶을 살아냈던 이야기를 그린 '동주'(2016). 일제 강점기 일본 한복판에서 항일운동을 펼쳤던 조선청년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불꽃 같은 삶을 그린 '박열'(2017), 쇼미더머니 6년 개근 도전을 할 정도로 랩에 열심인 무명 래퍼 학수의 좌충우돌 성장담을 그린 '변산'까지 장르도 시대 배경도 전혀 다른 이야기들에다가 한 작품 다음으로 어떤 작품이 올지 전혀 예측불허일 정도로 그가 그려내는 세계들은 극에서 극을 달리지만 기저에 흐르고 있는 따뜻한 휴머니즘과 촌철살인의 유머, 시대의 소명을 향한 끝없는 질문 등은 관객들에게 정서적인 카타르시스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관객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일종의 질문까지도 던지게 한다.
인터뷰 테이블에 앉은 이준익 감독은 영화 '자산어보'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만 10여분이 넘는 시간을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마스크를 낀 채 설명을 이어갔다. 이 첫 질문에 대한 답 안에 '자산어보'에 그가 담고 싶었던 모든 것이 엿보였달까.
"조선의 근대성에 초점을 두고 싶었어요. 조선의 근대성이 뭐냐, 과거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집단적이고 사건 비중이 컸죠. 그런데 집단주의적 관점이 아닌 개인주의적 관점으로 보면 또 다릅니다. 동학은 농민들의 개인의 근대성이 결집한 것인데 결국 무너져요. 왜 동학으로 지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서학이 있었어요. 그런데 서학은 왜 또 서학으로 이름 지었는가 보면 그 앞에 북학이 있어요. 박제가의 '북학의'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서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제일 먼저 관심을 가진 인물이 황사영입니다. 충북 제천 베론 성지에 가면 여진천 신부가 계시는데 그 분이 황사영으로 논문을 쓴 분이에요. 그 때 작가 한 명과 열심히 스토리를 만들려고 했지만 공부가 덜됐더군요. 그 때 그 영화는 엎어버리고 '사도' '변산'을 열심히 찍었어요다. 그런데 '변산'이 나가리 됐잖아요. 그 때 정약전이 확 왔죠. '변산'이 망하고 정약전이 보였고 '자산어보'가 보였어요. 왜 정약전이 보였느냐, 바로 서문에 창대가 있었기 때문이죠."
현대의 대중들에게 훨씬 익숙하고 잘 알려진 정약용과 그의 저서 ;목민심서'가 아닌 그의 형 정약전과 '자산어보'를 택한 데는 이준익 감독만의 큰 비전이 있었다. 이준익 감독은 "이런 드라마에도 지도를 그릴수 있겠구나 싶었다. 조선 근대에서 가장 유명한 활약을 한 정약용의 수원화성에는 수학적, 과학적 원리가 담겼다. 하지만 정약용을 영화에 그리자니 너무 오랜 시기를 그려야 한다. 정약전을 그리면 정약용도 담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영웅주의 영화를 못그리잖나. 위대한 인물 바로 옆에 그 못지 않은 사람은 늘 있게 마련이다. 상대적 가치의 차이를 보여줘야만 오류를 좁힐 수 있다. 정약전을 그리면 정약용도 함꼐 그릴 수 있겠다 싶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목민심서를 읽은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극 중 창대가 정약전에게 하직 인사를 할 때 '저는 자산어보의 길을 가지 않고 목민심서의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해요. 그게 무슨 뜻이냐, 창대가 '대학지도는, 깝깝하다 깝깝해'하며 풀지 못하는 문장이 있죠. 그게 삼강령 팔조목 대목인데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격물치지성의정심'이 합쳐져서 팔조목이에요. 그런데 목민심서는 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쓴 책이고 인문과학이라면 '격물치지성의정심'를 담은 책은 자산어보이고 자연과학에 해당되는 거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격물이에요. '물건에 격을 둬라' 즉 물건에 이름을 짓는 것인데 짱뚱어를 보고 자산이 철목어라 이름 짓잖아요. 짱뚱어를 한문으로 볼록할 철과 눈 목자를 넣어서 철목어라 짓죠. 이런 작명 자체가 물질에 가치를 부여하는 거죠. 그리고 그 '부여된 가치를 어떻게 쓰는가'를 설명한 것이 자산어보입니다. 약용은 목민심서의 초고를 쓰면서 약전에게 고합니다. 이때 약전은 약용에게 '나는 뜻모를 사람의 공부보다 자명하고 명징한 사물 공부를 하기로 했네'라고 하죠. 이 대목이 바로 자산어보의 의지입니다. 자산어보와 목민심서는 곧 약전과 약용의 가치관을 대변하는데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시대의 근대성을 찾아가려 했습니다. 그들 사이에 창대가 있었고 저는 이렇게 이 이야기의 지도를 그렸어요. 목민심서와 자산어보의 선명한 가치성을 드러내면서 조선의 근대성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었어요."
"설경구의 연기는 내가 끌어내준게 아니에요. 배우가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의 자세와 가공의 인물을 연기할 때는 다릅니다 가공 연기는 특정 연기나 장르가 있죠. 형사나 깡패, 간호사를 연기할 때는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붙어 있으면서 습관도 배워보고 인터뷰도 하잖아요. 현대극을 배경으로 실존 인물을 만들기란 정말 힘들어요. 미화나 폄하를 감당못하죠. 과거 실존인물은 가능해요. 정약전 캐릭터를 잡을 때 만나서 배울수 없잖아요. 내 안에 있는 정약전이 발현될 수 밖에 없죠. 꾸밀 수가 없어요. 캐릭터를 설정할 수 없으니 인간 내면과 본연이 드러나는 연기를 할 수밖에 없죠. 설경구의 정약전은 그 사람 자체의 발현이에요. 연기 잘 했다는 이야기도 틀린 말이에요. 유아인이 사도의 설정을 잡았겠어요? 사도가 처해져 있는 현실 그대로를 발현시킨 거죠. 창대도 마찬가지죠. 변요한이 자기 내면에 있는 어떤 면을 끌어냈는데 그게 창대가 된 거죠. 강하늘의 윤동주가 대표적이고 박정민의 송몽규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실존 인물을 많이 다뤘기에 정확히 체감해요. 박열, 가테코 후미코, 심지어 '라디오스타' 안성기 씨도 마찬가지에요. 안성기 씨 평소 모습을 대중들은 잘 못보시지만 정말 탁 풀어져서 자기 모습을 보여준 거에요."
이준익 감독의 설명 그대로를 빌자면 그가 한 작품을 끝내고 다음 작품을 택할 때 가지는 첫 번째 원칙은 "전작으로부터 가장 멀리 가야 한다"는 지점이다. 사극 '왕의남자'로 일찌감치 흥행의 맛을 본 그였지만 저예산 영화 '동주'를 택했고 또 20대 래퍼 청년의 혹독한 성장담의 '변산'으로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왔다. '키드캅'으로 연출자로 데뷔해 28년여가 흐르는 세월동안 그가 견지했던 연출 철학과 영화를 대하는 자세는 2021년의 관객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산어보'는 '변산'이 실패하고 나서 패자 부활전하자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안 해봤던 것들을 해보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이 실패로 자리매김되고 그 실패를 뼈아프게 반성하고 또 그걸 보약삼아 다음 영화 밑천으로 삼는게 내가 영화를 찍는 여정인 것 같아요. 농사꾼이 밭에 나가 밭을 갈듯 찍어왔는데 제 역량보다 큰 대우를 받았어요. 원래 목표지향형 인간이 아니에요. 제 스태프들이 밥벌이 해야 하기에 닥치는 대로 임기응변식으로 찍었어요. 그런데 해외에서 주는 큰 상보다 더 큰 대우를 받았어요. 제 영화를 계속해서 보러 와주시는 많은 관객들이 계시잖아요. 상업 영화 감독에게 이보다 큰 대접이 어디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