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장슬기 어머니 제공
[스포츠한국 인천=윤승재 기자] 현재 여자축구 대표팀은 ‘황금세대’라 불린다. 유럽 무대를 누비는 지소연과 조소현 등 베테랑 선수들이 건재하고, 11년 전 FIFA U-17 월드컵 우승의 주역들이 전성기에 다다른 시점이라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가운데 국가대표 풀백 장슬기의 활약을 빼고 황금시대를 논할 수 없다. U-17 월드컵 우승을 확정짓는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였던 장슬기는 이후 성장을 거듭해, 이제는 국가대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여자축구의 볼모지에 가까웠던 한국에서, 장슬기는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장슬기의 어머니 박계숙 씨를 만나 장슬기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부모로서의 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장슬기 집에 걸려있는 사진. 장슬기 어머니는 이 사진을 보며 긍정 에너지와 힘을 얻는다고 이야기했다. 사진=장슬기 어머니 제공
▶ “내 인생 책임질 거야?” 엄마의 마음을 움직인 초딩 장슬기의 당돌한 한마디

슬기야, 네가 처음 축구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던 날이 기억나는구나. 초등학교 감독님이 너를 스카웃하고 싶다고 매일 같이 연락이 했을 때, 나는 네가 고생할 것 같은 마음에 연신 거절을 했었지. 하지만 그 때 네가 했던 말이 결정적이었어. “나중에 커서 엄마가 내 인생을 책임질 거냐”는 말에, 초등학교 5학년이었지만 당차고 결연했던 네 모습을 보면서 엄만 축구를 시켜도 되겠다고 결심했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하는 등굣길이었지만, 너는 우리가 깨우지 않아도, 데려다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대견했단다. 네가 하고 싶은대로 믿고 지켜보면서도 제 풀에 지칠 거라 생각했었는데, 즐검게 잘 뛰어다니는 네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다 생각했어. 그라운드를 뛰어다닐 때 환하게 웃는 네 모습이 엄마한테도 큰 힘이 됐단다.

물론, 아쉬운 것도 있지. 평범하게 학교 생활하면서 가족들이랑 놀러도 다니고 편하게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일상을 보냈으면 했었어.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숙소 생활을 하고, 심지어 일본과 스페인까지 가면서 열정을 불태운 네 모습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보낸 시간이 많이 없어서 아쉽기도 했어. 하지만 또 각종 축구대회에 나서는 너와 오빠 덕분에 전국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어서 그것도 나름대로 좋았단다(웃음).

주위에서는 축구 남매를 키우는 게 힘들지 않냐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너희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많이 해준 게 없어서 오히려 쑥쓰러웠어. 그만큼 너희 남매가 알아서 잘하고 씩씩하게 잘 커줘서 엄마는 정말 고마워. 엄마가 할 수 있었던 건 응원의 한 마디와 부상당하지 말라는 기도 뿐이었지만, 너희 남매는 정말 씩씩하게 잘 자라줬어. 다시 한 번 정말 고맙단다.

어린시절 장슬기와 어머니. 사진=장슬기 어머니 제공
▶ 자책골과 마지막 키커, 가슴 졸이며 응원했던 U-17 월드컵

그러고보니 슬기가 U-17 월드컵 우승한 게 벌써 11년 전이네. 세월이 정말 빠르게 가는구나. 마냥 어리고 귀엽기만 했던 슬기가 지금은 어엿한 중고참 선수가 됐다니 놀라워.

그때만 생각하면 엄마는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눈물이 나. 나이지리아 8강전에서 자책골을 넣었을 때 엄마도 가슴이 철렁했고, 네 심정을 알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어. 하지만 엄마도 힘을 냈지. ‘아직 시간 있어, 끝까지 해, 포기하지 마’ 이 단어를 몇 번이고 외쳤는지 몰라. 슬기도 친구들도 엄마의 바람을 들었을까, 다행히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까지 올라간 모습에 엄마도 정말 기뻤었어.

결승전 때도 잊을 수 없지. 네가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섰을 때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서 안 볼까도 했었어. 하지만 다시 눈 부릅뜨고 지켜봤지. 내가 피하면 너도 힘들 거란 생각 때문에. 역시 우리 딸이었어. 골이 확정되자마자 엄마도 기뻐하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네. 그동안 해준 것도 없는데 저렇게 큰 무대에서 큰 일을 해내니까 정말 기쁘고 행복했단다.

그렇게 금의환향한 딸 덕분에 엄마는 청와대도 가고 제주도 여행도 갔었지. 내가 언제 청와대를 가서 대통령님과 사진도 찍고 그러겠니. 찻잔 선물 받은 건 우리집 보물로 간직하고 있는 거 너도 알지(웃음)? 딸 덕분에 해보지도 못한 것들을 많이 해. 그래서 우리 딸한테는 정말 고맙다는 생각 뿐이야.

FIFA U-17 월드컵 우승 당시 장슬기(가장 왼쪽 위). ⓒFIFA
▶ 일본으로 스페인으로, 도전 멈추지 않는 딸이 대견한 엄마

그랬던 딸이 일본(고베 아이낙)과 스페인(마드리드 CFF 페메니노)으로 갔을 땐 딸의 성장하는 모습에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어.

한국에서도 숙소 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긴 했지만, 외국은 또 다르니까 말이야. 언어도 문화도 다른 데에서 딸 혼자 지내야 한다는 게 걱정이 조금 됐었어.

스페인에서는 코로나19가 발생하는 바람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숙소에 혼자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몰라. 쉽지 않았던 도전이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돼버려서 힘들어하던 네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힘들었단다.

하지만 사실 대견스럽다는 마음이 더 커. 안정만 추구하던 엄마와는 달리 계속 도전하려는 네 모습을 보면서 딸이지만 정말 멋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

부모가 돼서 용기를 북돋아줘야 하는데, 부딪혀봐야 성장할 수 있고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질 수 있다고 용기를 줘야 하는데 엄마가 그래주지 못해서 미안해. 일본에서도 스페인에서도 씩씩하게 성장한 딸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정말 고마워.

ⓒAFPBBNews = News1
▶ “이런 딸이 내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하는 우리 딸. 어쩌다보니 밖에서만 생활하면서 어렸을 때 할 수 있었던 소소한 일상을 같이 못 보내서 엄마가 항상 미안해. 하지만 딸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열정 넘치는 모습으로 잘해줘서 정말 고맙고, 밝고 쾌활하게 커줘서 기뻐. 이런 딸이 내게 와줘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야. 딸만 생각하면 정말 행복해.

슬기야, 엄마는 네가 지금처럼만 이렇게, 건강하게 뛰어줬으면 좋겠어. 알아서 잘 관리하는 우리 딸이니까 걱정은 없지만 말이야. 앞으로도 계속 꾸준히 축구에 대한 열정을 잊지 말고, 많은 어린 아이들이 우리 딸을 보고 여자축구 선수의 꿈을 키우는 그런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지금처럼 밝은 모습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어. 사랑한다 우리 딸.

정리=윤승재 기자

스포츠코리아 제공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