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서귀포=이재호 기자] 2016년 정조국(31경기 20골) 이후 K리그1(1부리그) 득점왕에 국내 선수 이름이 오른 적은 없었다. 2017 조나탄, 2018 말컹, 2019 타가트, 2020 주니오까지 모두 외국인 선수 일색이었다.

올해 K리그1 역시 다르지 않다. 전북 현대의 일류첸코가 9골로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일류첸코를 쫓는 2위는 다르다. 지난해 영플레이어상(신인왕)을 받은 송민규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주민규가 5골로 추격 중이다.

송민규야 올림픽 대표팀 멤버에 신인왕까지 받은 K리그 최고 신예로 유명하지만 주민규는 낯설다. 하지만 지난 7일 프로축구연맹이 발표한 4월 K리그 선수랭킹에서 득점 1위 일류첸코를 2000점차로 누르고 압도적 1위에 오를 정도로 그 기세가 엄청나다. 주민규의 바닥부터 시작한 축구인생과 만 31세의 나이에도 매년 성장을 꿈꾸며 개인훈련을 멈추지 않는 그의 스토리를 알고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제주 유나이티드 제공
▶드래프트도 못 뽑힌 ‘번외지명’ 선수

대신고를 거쳐 한양대를 졸업한 주민규는 2013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자신감에 차있었다. 스스로 ‘대학 No.1 미드필더’라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 심지어 드래프트장에 입고갈 양복도 살까 고민했다고 한다. ‘드래프트도 안뽑히면 축구 그만둬야하는거 아냐?’라고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로 자신있었다. 심지어 언질도 준 구단도 있었다.

하지만 드래프트장에서 주민규의 이름은 전혀 호명조차 되지 않았다. “그날 전 일이 있어 드래프트장은 못 갔는데 부모님은 가셨어요. 지금도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부모님께 죄송해요”라며 씁쓸하게 웃는 주민규.

주민규는 학창시절 ‘일부러’ 수비형 미드필더를 했다. 코치들이 모두 ‘K리그에서 공격수는 어차피 외국인 선수가 다한다. 프로가려면 미드필더를 해야한다’고 하는 말만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드래프트도 뽑히지 못했고 번외지명으로 지금은 사라진 K리그2의 고양Hi에 입단한다.

“솔직히 고양에서 처음엔 ‘남 탓’을 많이 했어요. 나보다 못한 애들이 왜 좋은 팀에서 뛰는지, ‘난 잘하는데 왜 몰라주지’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고양에 있던 선배들을 통해 배우고 깨달음을 얻었어요. 결론은 ‘내가 잘 못하고, 나부터 바꿔야 한다’였죠. 잘하는 선수들은 다 이유가 있어요.”

고양Hi시절의 주민규(상단)와 서울 이랜드 시절의 모습. ⓒ프로축구연맹
▶선수들이 뽑는 ‘훈련왕’… 포지션 변경 후 인생이 달라지다

깨달음을 얻은 주민규는 노력했다. “정말 엄청 (훈련)했다”고 말하는 주민규의 목소리엔 노력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서울 이랜드에서 함께 선수 생활을 한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를 지낸 김재성 현 인천 UTD 코치는 “동계훈련 때 아침에 나와 훈련하는 사람은 저랑 (주)민규밖에 없었어요. 그때 민규는 전혀 유명하지 않았는데 매일 같이 나와 혼자 훈련하는걸 보고 ‘쟤는 성공하겠다’싶었죠. 실제로 이랜드 출신 중에 가장 잘하잖아요”라고 말한다.

그렇게 고양에서 2년을 보낸 주민규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당시 시민구단이지만 K리그1으로 승격한 대전과 막 창단한 K리그2의 서울 이랜드가 동시에 입단 제의가 해온 것. 대전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랜드는 공격수로 영입하고 싶다고 했다.

제의를 거절하기 위해 이랜드 마틴 레니 감독을 만난 주민규에게 레니 감독은 “거절해도 된다. 하지만 축구 선배로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공격수로 재능이 있다. 꼭 공격수로 바꿔야 한다. 미드필더로 뛰면 그냥 그런 선수지만 공격수로 잠재력이 터지면 어떤 선수가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고.

레니 감독의 이 말은 주민규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그 말에 이끌려 이랜드를 택한 주민규는 바로 공격수로 포지션 변경을 하고 2015년 이랜드에서 23골로 대폭발한다.

2016년에도 14골을 넣은 후 2017년 상무로 입대해 K리그1에서도 17골로 득점 4위까지 오를 정도로 주민규의 공격수 포지션 변경은 대성공이었다.

학창시절 내내 미드필더만 맡다 프로에서, 그것도 프로 3년차에 공격수로 변신해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주민규의 치열한 개인 훈련이 있었에 가능했다.

“골키퍼들에게 많이 물어봐요. 제가 찬 슈팅이 막히면 왜 이게 안 들어간 건지, 이 각도에서는 어떻게 때리면 골이 들어가는지 물어보죠. 골키퍼들에게 부탁해서 제 슈팅을 막아봐달라고도 하죠. 골키퍼들마다 성향이 달라요. 그 성향에 맞춰 슈팅하는 법을 배웠죠. 다행히 그동안 거쳐온 팀들에서 김영광, 김승규, 조수혁 등 좋은 골키퍼들이 많아 배움이 더 빨랐죠.”

지금 뛰는 제주에서는 지난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정조국 코치에게 많이 배운다면서 환하게 웃는다.

“원포인트 레슨을 많이 해주세요. 워낙 뛰어난 공격수였지만 지난시즌까지는 동료지만 경쟁자이기도 해서 많이 못 물어봤거든요. 지금은 정말 하나하나 다 물어보고 코치님은 절 항상 생각하게 만들어 주세요. 경기상황에서도 못 넣은게 있으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도와주시죠.”

주민규에게 공격수로 포지션 변경을 권한 마틴 레니 전 이랜드 감독(상단)과 자신 이후 5년만에 토종 득점왕을 키우려는 정조국 제주 코치. ⓒ프로축구연맹
▶5년만에 토종 득점왕-선수랭킹 1위 도전

13라운드까지 5골로 득점 2위를 달리고 있는 주민규에겐 최근 목표가 생겼다. 바로 5년만의 K리그 토종 득점왕.

“정조국 코치님께서 ‘내가 2016년 득점왕을 한 이후로 5년이나 토종 득점왕이 없다. 지금의 너라면 가능하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진지하게 4년간 외국인 선수들이 가져갔던 득점왕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들어요.”

주민규는 최근 프로축구연맹이 선수 랭킹(다이나믹 포인트)을 새롭게 신설하면서 초대 선수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K리그1 4월 전체 선수랭킹 1위에도 오른 그는 “유럽에서 하는 선수랭킹 방식을 가져와 한다는 것에 좋은 취지인 것 같고 선수들도 신경을 쓴다. 이제 시즌의 3분의 1밖에 지나지 않았다. 시즌 후 전체 랭킹에서 1위에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승격하자마자 제주가 상위권에 오르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거기에 제가 일조하고 있다는 점에 행복합니다. 주위 분들이 ‘정말 전성기가 온거냐’라고 말하시는데 아직은 아니에요. 하지만 훗날 뒤돌아봤을 때 ‘2021년이 전성기 시즌’이라는 말을 듣게 노력하려고요. 23골, 17골을 넣은 시즌도 있는데 제 한계를 뛰어넘어 득점왕과 선수랭킹 1위에 도전해보겠습니다.”

K리그1 4월 선수랭킹(다이나믹 포인트) 1위에 오른 주민규. ⓒ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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