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기자회견에서 훈훈한 장면을 연출한 오르테가와 정찬성. 이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는데.. 연합뉴스 제공
[스포츠한국 윤승재 기자] 귀여운 손하트와 쑥쓰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던 좀비, 지난해 그들의 첫 만남은 ‘훈훈’ 그 자체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서로의 존재 언급만으로 전의가 불타오르는, 정말 못 죽여서 안달인 사이로 바뀌었다. 1년 사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해 10월 16일, 정찬성(33·코리안좀비MMA)과 브라이언 오르테가(29·미국)는 서울에서 처음 만났다. 12월에 열릴 UFC 부산 대회 기자회견 자리였다. 맞대결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여유에서 나온 거만함의 미소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훈훈한 미소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페이스 오프 자리, 보통 페이스 오프 자리에 나서는 선수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상대를 죽일 듯이 쏘아 보는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르테가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찾는 시늉을 하더니 깜짝 손하트로 정찬성을 당황케 했다. 이에 정찬성은 쑥쓰러운 듯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숙였지만 활짝 핀 미소는 감추지 못했다. 이어진 사진 촬영 때도 두 선수는 밝은 미소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포즈를 취했다. 기자회견 분위기는 시종일관 훈훈 그 자체였다.

깜찍한 손하트로 정찬성을 'KO'시킨 오르테가. 연합뉴스 제공
하지만 두 선수의 맞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대회를 앞두고 오르테가가 훈련 중 무릎 부상을 입으며 출전이 무산된 것. 결국 정찬성은 대회에서 오르테가가 아닌 대체 선수로 나선 프랭키 에드가(39·미국)를 상대했고, 1라운드 3분18초 만에 승리를 거두며 포효했다.

그러나 정찬성에겐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는 선수는 UFC 페더급 챔피언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32)와 다음 타이틀전에 나설 것이 확실시 됐기에 매우 중요한 경기로 평가받았지만, 맞대결이 불발되면서 타이틀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두 선수 모두에게 아쉬움으로 끝난 맞대결 무산은 두 선수의 사이도 흔들어놓았다. 정찬성의 도발성 트래시 토크가 불을 지폈다. 정찬성은 지난 2월 해외 팟캐스트 방송에 소속사(AOMG) 대표이자 통역 역할을 맡은 박재범과 함께 출연해 “오르테가가 이미 나에게서 한번 도망갔다”며 다소 센 말을 했다. 평소 트래시 토크를 잘 하지 않는다고 소문났던 정찬성이었기에, 정찬성의 이 발언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에 오르테가도 분노했다. 오르테가는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에서 경기를 하기전에도 정찬성은 SNS로 나를 도발했었다. 당시에는 한국에 만나 정찬성이 사과해 받아들였지만 이번에도 도발한 것은 못 참는다. 도망간 것과 부상을 당한건 다른 얘기”라며 분노했다. 이어정찬성의 말을 통역한 박재범에게도 “너도 나에게 얻어맞게 된다면 그때 가서 놀라지 않았으면 해”라며 엄포를 놓았다.

정찬성(우)과 소속사 대표 박재범. (정찬성 SNS 캡쳐)
그리고 이어진 3월, 두 선수의 갈등이 극에 달한 사건이 발생했다. 두 선수는 3월 8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T-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린 UFC 248에 초대돼 함께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정찬성의 소속사 대표인 박재범이 오르테가에게 뺨을 맞는 일이 벌어진 것. 정찬성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오르테가가 홀로 있던 박재범에게 다가가 손찌검을 했다.

이에 정찬성도 분노했다. 정찬성은 "박재범은 프로파이터가 아닌 뮤지션이다. (그를 때린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며 뮤지션을 때린 겁쟁이다. 나와 싸우기 위한 계획이었다면 성공했다. 네 얼굴을 피범벅으로 만들겠다"고 응수했다.

이후 오르테가는 SNS를 통해 두 차례 정찬성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첫 번째 사과문에서 “하지만 선동자인 박재범을 때린 것은 사과하고 싶지 않다"고 강하게 말하며 논란을 더 지폈다. 오르테가는 곧 해당 게시물을 지웠으나 이미 논란은 더 커졌다.

이에 정찬성은 3월말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당시 상황을 회상하면서 “첫 번째 사과문을 보고 어마어마하게 화가 났다”면서 “두 번째 사과문이 올라왔고 이번 일을 계기로 오르테가는 양아치 이미지를 얻었다”라고 분개하기도 했다.

ⓒUFC
손하트가 손찌검으로 변하면서 두 선수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지난 8월 31일, 두 선수의 맞대결 일정이 확정되면서 두 선수를 둘러싼 악연의 종지부를 찍을 기회가 찾아왔다.

UFC는 “페더급 랭킹 4위인 정찬성이 10월 18일 UFC 파이트 나이트 메인이벤트에서 같은 체급 2위 오르테가와 격돌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여기에 데이나 화이트 UFC대표가 지난 15일 미국 ESP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결 승자가 타이틀 도전권을 가져갈 것”이라고 전하면서 이 맞대결의 중요도는 더욱 높아졌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대결. 경기를 앞둔 정찬성은 “오르테가는 강한 맷집에 서브미션 스킬도 대단하다. KO패나 다운을 한 번도 당하지 않았는데, 판정까지 가는 경기가 될 것이다”라고 상대를 추어 올리면서도 “누구보다도 승리가 간절하다”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악연의 종지부, 그리고 타이틀전 도전권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선수는 누가 될까. 정찬성과 오르테가의 경기가 열릴 UFC 파이트나이트 180은 오는 18일 오전 5시부터 스포티비 나우(SPOTV NOW)에서 생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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