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함안=이재호 기자] 설기현(41)은 불모지였던 벨기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해 잉글랜드 2부리그를 거쳐 `꿈의 무대'로 불리는 프리미어리그(EPL)까지 진출했다. 그곳에서도 분명한 족적을 남겼고 월드컵에서는 전국민이 잊지 못할 골을 넣어 ‘영웅’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선수 은퇴 후 성균관대 감독과 성남FC 전력강화실장을 거쳐 경남FC 지휘봉을 잡은지 반년이 넘었다. 지난 2월 경남 남해 전지훈련지에서 “6개월만에 짤려도 나의 축구를 하겠다”고 기자에게 당당하게 말한 그는 여전히 자신의 축구를 하기 위해 경남 함안 클럽하우스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었다.

초보감독으로 부임 전의 이상과 부임 후의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걸으려는 경남FC 설기현 감독을 함안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경험부족과 실전에서 배우고 있는 ‘초보감독’ 설기현

모든 팀들과 한번씩 상대해본 9라운드가 끝난 7월 첫째주 주말까지 경남의 순위는 10개팀 7위. 2승5무2패 승점 11점의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승강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4위와는 승점 4점차밖에 나지 않고 한경기만 이겨도 곧바로 5위까지 오를 수 있기에 실망은 금물이다.

“솔직히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죠. 팀과 제가 생각하는 목표치에 도달하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죠. 한 라운드를 돌면서 저 역시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실전을 통한 배움이 이런거구나’싶을정도로 한 경기 할 때마다 초보인 저는 많이 배워요.”

“처음에 하려고 했던 나의 축구와 전술이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하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실전에서는 여러 변수가 있더라고요. 어쩔 수 없고 저 역시 경험부족을 통감하며 빠르게 습득해가고 있죠”라고 말하는 설기현 감독의 얼굴에서는 실망보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그래도 빨리 느끼고 배웠다고 생각해요. 아직 할 경기가 더 많이 남았으니까요. 확실한건 선수로 뛸때와 감독을 한다는건 하늘과 땅 차이일 정도로 다르다는 거예요.”

ⓒAFPBBNews = News1
▶‘집에서 경기장 집합’ 설기현식 축구, 신선한 바람

설기현 감독은 한국 지도자들이 전통적으로 추구하던 팀 규율을 바꿔 축구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홈경기가 있는 날에는 각자 집에서 알아서 경기장을 오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클럽하우스에 모여서 다같이 선수단 버스를 타고 이동하지만 경남은 다르다.

“저희 선수들 대부분이 창원에 사는데 굳이 1시간 걸리는 함안클럽하우스를 왔다가 다시 창원경기장으로 갈 필요가 없잖아요. 오히려 원정선수들의 숙소는 경기장과 10분거리인데 홈팀 이점을 살려야죠. 제가 유럽에서 뛸 때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 응원을 받고 경기장을 가면 집을 나서면서 ‘오늘은 가족을 위해 꼭 한골 넣어야지’라고 생각하기도 했거든요.”

이렇게 설 감독이 선수들에게 믿음을 주자 선수들도 설 감독에게 믿음으로 보답한다. 집이 오히려 불편하거나 사정이 있는 선수들은 알아서 경기장 근처 숙소를 잡고 숙박하면서 컨디션 관리를 한다. 설 감독은 “그런 모습이 바로 진정한 ‘프로’이다”라며 칭찬했다.

또한 설 감독은 최신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선수 컨디션과 몸관리의 전문가인 피지컬 코치도 신뢰한다.

“예전 축구는 감으로만 선수들의 컨디션을 예상했지만 요즘엔 과학장비와 최신 기계를 통해 알 수 있어요. 그걸 활용해야죠. 사람의 ‘감’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믿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에 전 닫혀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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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식하고 힘들게 운동해서… 영리하고 효율적 축구 알려주고파”

이처럼 열린 태도는 설기현 감독의 선수시절 경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설 감독은 “제가 선수시절 때 잘 모르고 조언해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무조건 열심하는게 최고라고 생각해서 정말 ‘무식하게’ 훈련만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더 영리하게 운동할걸’하는 후회가 있어요. 그래서인지 감독이 된 지금은 선수들에게 오히려 강한 훈련보다는 영리하고 효율적인 운동을 추구하게 되더라고요”라며 프로선수에 효율을 강조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어차피 할 선수는 하고 안하는 선수는 아무리 시켜도 안한다”고 말하는 설 감독은 “제가 대단한 선수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경험은 했다고 자부하는데 그게 지도자를 할 때 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솔직히 요즘 애들이 저보다 더 공은 잘 차는 것 같고요”라며 웃었다.

설 감독은 당장의 결과보다 내용을 추구하는 축구를 원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감독관을 이렇게 밝혔다.

“한 라운드를 돌았지만 아직 ‘감독하길 잘했다’싶을 정도로 짜릿한 순간은 없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결과는 남들에게 중요하지 저한테는 중요하지 않아요. 승리하면 ‘비난은 모면하겠구나’는 생각이 다예요. 예를 들어 5월 27일 있었던 수원FC전을 1-3으로 졌어요. 하지만 실수로 실점했을뿐 정말 제가 원하는대로 선수들이 축구를 해줘서 창원으로 내려오면서 오히려 기분이 좋더라고요. 졌어도 선수들에게 ‘잘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설기현 감독은 눈앞의 1승 보다는 `좋은 팀'이 우선이라고 강조하다. 단단하게 내실을 다진 팀은 당장 한두번 경기에서 져도 거뜬히 일어선다는 생각이다.

“경남FC의 목표는 K리그1 승격이죠. 승격을 하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에 경기를 이기는 것보다 좋은 팀이 되는게 우선이예요. 좋은 팀이 돼서 지면 그건 한두번일 뿐, 승격이라는 목표를 이룰 팀이라는건 변함이 없어요. 감독 부임 초기때와 지금은 분명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선수시절 객관적 전력이 약해도 강팀을 잡아냈던 그런 팀을 감독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분명 경남은 시즌 종료때 순위표 상단에 있을겁니다.”

ⓒ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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