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어있는 잠실야구장 관중석과 자리를 채우고 있는 현수막.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공연의 3대 요소는 희곡, 배우, 관객이다. 희곡 대신 무대를 꼽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세 가지 요소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공연은 완성이 된다.

스포츠는 엔터테인먼트 공연이다. 희곡을 야구라고 한다면 무대는 야구장, 배우는 선수와 코칭스태프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관객이다. 콘텐츠의 종류에 따라 제작자나 배우, 장소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관객은 변하지 않는다. 관객과 사용자가 없는 콘텐츠의 존재 가치는 없다. 특히 스포츠는 인간 신체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기에 직접 보는 것이 우선이다.

이전까지는 경기장에 가야만 '진짜' 야구를 볼 수 있었다. 미국 NFL의 한 구단의 경우, 경기장이 매진이 되지 않으면 중계 자체를 해주지도 않았다. 그만큼 현장을 중요시했던 것이 스포츠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경기장에 안 가도, 혹 중계를 못 본다고 해도 전국 어디서든, 심지어 해외에서도 KBO리그를 보고 싶을 때 각종 미디어를 통해 언제든 접속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에 창궐하면서 산업 구조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대면이 아닌 비접촉,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온라인 접속을 통한 경험을 서비스하는 산업이 더욱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KBO리그가 그 선두에 있다. 지난 5월 5일, 대만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대신 무관중 경기를 원칙으로 삼았다. 흔히 공연의 '상식'으로 여겨지는 3대 요소 중 하나가 빠졌다. 관중 하나 없는 리그 개막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쏟아지는 가운데, 무관중으로 진행하고 있는 KBO리그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

치어리더 없이 홀로 텅 빈 경기장에서 응원을 하고 있는 키움 응원단장. 스포츠코리아 제공
KBO리그가 무관중 경기에 대처하는 자세

무관중 경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건에 연루가 되거나 팬들의 과격한 행동에 의한 구단 징계의 일환, 혹은 선수단의 안전을 위해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펜데믹(감염병 대유행) 사례는 처음이다. KBO리그 역시 지난 1982년 원년 이후 처음으로 무관중 경기로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현장은 이전에 비해 확실히 조용해졌다. 시끌벅적 분위기는 사라졌고 경기장에는 선수들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다.

삼진을 당하고 돌아서는 선수의 오기가 담긴 포효가 구장의 공기를 꽉 채우는 일도 많다. 덕아웃에 있던 선수가 판정에 아쉬움을 느끼고 무심결에 내뱉은 한 마디가 그대로 주심의 귀에 들어가면서 경고를 받는 일도 있었다.

선수나 감독 모두 무관중 경기는 낯설기만 하다. 2년째 한국서 뛰고 있는 두산 외인 페르난데스는 "팬들 없이 경기를 해서 이상하다. 작년 처음으로 타석에 들어섰을 때, 팬들의 소름 돋는 응원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응원이 없어서 정말 아쉽다. KBO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응원이 나오는 리그다. 빨리 상황이 좋아져서 팬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기장이 비어 있다보니 선수들은 의욕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에 각 구단은 무관중 경기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내고자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kt는 통신사답게 비대면 라이브 응원전을 펼치기 위해 1루 응원단상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 접속한 300명의 팬들의 음성과 응원 메시지, 그리고 응원가를 틀어서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내보내고 있다.

NC는 팬들의 얼굴이 합성된 입간판을 제작해서 관중석에 배치를 시켰고, SK는 '무관중'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 무 모양의 캐릭터를 관중석에 앉혀서 진짜 '무관중'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LG는 팬들의 응원 문구가 적힌 커다란 플래카드를 만들어 잠실 외야의 빈자리를 채우기도 했다.

각 구단 응원단은 관중은 없지만 예년과 마찬가지로 선수 등장 음악을 틀고 팬들의 육성 응원 목소리를 음원에 섞어서 응원가를 부르는 등 무관중 경기의 침묵을 깨뜨리고 있다.

응원석을 떠나 외야에서 선수들에 힘을 실어주는 응원을 하고 있는 LG 응원단. 스포츠코리아 제공
무관중 개막이 가져다준 의외의 선물, 전 세계로 뻗어가는 KBO리그

무관중 경기지만 전 세계 두 번째로 개막한 KBO리그다. 관중이 없으니 자연스레 중계로 시선이 모였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ESPN를 통해 KBO리그가 진출하게 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MLB트레이드루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야구팬의 80%가 KBO리그 중계 시청에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청률 조사회사 TNMS의 미디어 데이터에 따르면 5월 5일에 열린 KBO리그 개막전 5경기 시청자는 216만 명에 달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경기는 SBS에서 중계한 두산과 LG의 잠실 라이벌 전이었다. 무려 67만 명이 이 경기를 중계로 봤다.

이어 MBC가 중계한 KIA와 키움의 경기가 51만 명, KBS2가 중계한 SK와 한화 경기는 49만 명, MBC스포츠와 KBSN스포츠가 함께 중계한 kt와 롯데 경기는 32만 명, SBS스포츠가 중계한 삼성과 NC 경기는 17만 명이 지켜보기도 했다. 시청률로 따지면 1.47%다. 작년 어린이날 시청률이 0.68%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시청자 수가 늘어났다.

주목할 부분은 인터넷과 모바일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개막 5경기를 지켜본 평균 누적 시청자 수가 무려 149만 3483명으로 나왔다. 작년 개막전 34만 3291명, 그리고 작년 어린이날 16만 4434명에 비해 무려 9배가 증가한 수치다. 우천으로 경기가 늦게 시작한 롯데와 kt의 경기는 무려 208만 8662명이 관전하기도 했다. 미국 현지의 접속량 역시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6년부터 3년 연속 800만 관중 돌파에서 성공했던 KBO리그는 수준 이하의 경기력으로 작년 728만 6008명에 그치며 하락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ESPN을 통해 미 전역에 중계가 되면서 외인뿐 아니라 한국 선수들 역시 빅리그 진출을 위해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불문율인 일명 `빠던(배트 플립)'이 큰 관심을 끌고 있으며 NC 다이노스는 NC의 약자가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를 연상케 한다며 해당 지역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NC는 이미 관련된 마케팅 계획에 들어갔다.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 경기를 치르고 있지만 KBO리그는 지금의 위기를 전 세계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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