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한국축구가 위기다. 단순히 대한축구협회의 비리, 거스 히딩크 감독 이슈를 떠나 국민들이 대표팀 경기를 즐기지 못하고 월드컵 진출에도 부정적 여론이 팽배하다.

오죽하면 월드컵 진출 후 헹가래 세리머니를 해도 박수보다 비난이 많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 물론 대한축구협회의 헛발질, 울리 슈틸리케-신태용 감독의 전술적 아쉬움 등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바로 ‘선수들’이다. 선수들이 결국 축구를 하고 골을 넣고 실점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성장해야한다. 실력을 더 쌓아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K리그가 모자라다면 더 큰 무대로 나가 부딪쳐야한다. 넓은 물에서 놀아야 클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선수들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모든 선수들의 성장도를 파악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됐던 선수라면 당대 한국 최정예 23인이라는 점에서 성장도를 가늠해볼만 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멤버들은 과연 얼마나 성장했을까.

2014 브라질 멤버의 단체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결론부터 말하면 손흥민(토트넘)을 제외하곤 당당하게 ‘성장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남은 22명 중 아무도 없다. 한국 대표팀이 아시아에서도 고전할 수밖에 없는 가장 선명한 이유다.

▶그룹 분류가 필요한 23인

일단 브라질 멤버 23인을 세 가지 분류로 나눠볼 필요가 있다. 먼저 1.최근 대표팀에서 완전히 멀어진 선수 그룹, 2.뽑히긴 했지만 출전하지 못했거나 적은 시간 교체출전에 그쳤던 선수 그룹, 3.지난 6개월간 대표팀 경기에서 2~3회 이상 선발출전 했던 여전한 베스트11 그룹으로 나눠야한다.

1번 그룹(대표팀과 멀어진 선수) : GK-이범영 DF-황석호 윤석영 MF-하대성 박종우 FW-박주영
2번 그룹(교체 혹은 간혹 뽑히는 선수) : GK-정성룡 DF-김창수 박주호 이용 곽태휘 MF-김보경 한국영 이청용 FW-김신욱
3번 그룹(여전히 베스트11급 선수) : GK-김승규 DF-홍정호 김영권 MF-구자철 기성용 FW 이근호 손흥민 지동원

분류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얼추 논란이 없게 나눴다. 분류를 한 이유는 대표팀 내에서 입지가 그 선수의 성장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고, 또한 노쇠화 등으로 자연스러운 기량하락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선수도 있기 때문이다.

▶손흥민 제외 기량 확연히 발전한 선수 있나

1번그룹은 기량발전에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박주영처럼 나이에 따른 노쇠화도 있지만 이외에 아예 국가대표에 뽑히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기량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월드컵 멤버였던 선수들이 3년 후 최소 같은 기량도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

2번그룹의 경우 소속팀에서는 모두 주전이다. 하지만 확연한 성장을 보여준 선수가 전무하다. 3번 그룹의 경우 손흥민을 제외하고 기량 성장을 보여준 선수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손흥민의 경우 지난 시즌 한국인 최다골 역사를 새로 쓸 정도로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2014년의 손흥민(왼쪽)과 현재의 손흥민. ⓒAFPBBNews = News1
냉정하게 2017년 전체적인 모습의 기성용, 구자철이 2014년의 기성용, 구자철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홍정호의 경우 잘못된 이적(분데스리가→중국 리그)과 팀내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현재는 전력외 취급을 받고 있고 훈련만 하고 있는 상태다.

▶돈은 더 벌었겠지만… 기량 성장에는 소홀

물론 돈은 더 벌었을 것이다. 2014년에는 많은 선수들이 ‘오일머니’를 벌기 위해 중동을 갔었다면 이제는 중국이라는 중동 못지않은 또 다른 시장이 생겨나 돈을 벌 수 있는 선택지가 다양해졌다.

그러다보니 예전 같으면 유럽에 도전했을 선수들이 중동이나 중국으로 가는 경우가 생겨났고 한두 명이 모여 집단이 됐다. 예전에는 조용형, 설기현과 같이 몇몇 선수였지만 이제는 ‘중동파’, ‘중국파’로 불린다.

물론 중동이나 중국에 가도 기량향상은 된다. 그곳의 뛰어난 외국인선수와 상대하다보면 실력이 느는 것. 하지만 한 에이전트는 “솔직히 유럽에 갔을 때 기량이 느는 것과 중국 혹은 중동에 가서 기량이 느는 것의 폭이 다르다. 선수들도 그정도는 알고 간다”고 증언했다. 예전에는 유럽 갔을 선수들이 중동 혹은 중국에 가면서 기량 발전의 속도는 더뎌졌고 그것이 모여 대표팀의 수준이 됐다.

또한 외부에서 보기는 왜 이적을 하지 않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선수들(박주호, 이청용, QPR시절 윤석영)도 나오면서 소속팀 주전경쟁에서 밀려 기량은 퇴화되어갔다.

▶‘좋은 월드컵 경험’ 쌓으면 뭐했나, 다음 월드컵 못 갈 처지인데

이렇게 기량발전에 소홀했던 선수들이 모이면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팀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무 2패로, 그리고 2017년 월드컵 최종예선 간신히 2위팀으로 갈수록 하향됐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종료 후 당시 홍명보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좋은 경험을 했다. 앞으로 더 도전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좋은 경험을 했다. 하지만 이 좋은 경험을 토대로 다음 월드컵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지금 상태라면 2014 브라질 월드컵 멤버 중 상당수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증명해야하는 자리에서 경험을 했다면 그 경험으로 다음 증명을 해줘야 하지만 상당수의 판단 실수, 기량 발전 소홀 등으로 좋은 경험은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홍 감독의 다름 바람이었던 ‘더 도전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말은 들어주지 못한 것이다.

이제 1년도 남지 않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멤버는 그래도 결국 2018 러시아 월드컵 멤버의 주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기량 향상에 발전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의 수준이 대표팀, 그리고 세계 수준에 어울리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퍼거슨 감독이 와도 선수가 의도대로 못 뛰면 소용없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멤버는 한국이 나간 9번의 월드컵 중 평균나이가 가장 어린(25세) 선수들로 구성됐었다. 현재만큼 다음이 가장 기대되는 멤버였다.

하지만 가장 어렸던 월드컵 멤버들은 손흥민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확연한 기량 성장을 보여주지 못한채 정체 됐고 그것이 모여 현재의 ‘월드컵에 나가도 비난 받는’ 대표팀을 만들었다. 감독의 기량이 부족했을 수 있으나 냉정하게 '선수들이 못해서' 아시아에서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월드컵에 갈 수 있는 팀이 된 것이다.

협회, 감독, 논란에 숨어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선수들은 반성 없이 대표팀에 임한다면 러시아 월드컵의 결과는 높은 희망만큼이나 처참한 결과만 나올 뿐이다.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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