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2.37 vs 4.55'

앞의 숫자는 클레이튼 커쇼(28·LA다저스)의 정규시즌 265경기의 평균자책점. 뒤의 숫자는 포스트시즌 18경기의 평균자책점이다.

통계는 누적될수록 그 힘이 강해진다. 즉 커쇼의 진짜 실력은 뒤보다 앞일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18경기도 결코 적은 출전 숫자가 아님을 감안해야한다.

결코 적지 않은 포스트시즌 18경기에서 커쇼가 거둔 4승7패 평균자책점 4.55의 성적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 정규시즌을 보낸 모습에 비하면 초라하다. ‘포스트시즌 새가슴’이라고 부르기에 변명할 수 없는 성적이다.

커쇼는 23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2016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6차전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5이닝 5실점(4자책)으로 무너지며 팀의 0-5 패배의 원흉이 됐다.

ⓒAFPBBNews = News1
커쇼는 1회 첫 타자부터 2루타를 내주는등 2실점하며 무너졌고 3회를 제외하고 5회까지 매이닝 실점했다. 결국 5이닝 5실점(4자책)의 최악 투구. 다저스 수비진이 아무리 도와주지 못하고 타선이 터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경기 내용이었다.

이날 경기를 통해 커쇼는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이 4승 7패 평균자책점 4.55가 됐다. 이는 126승60패 평균자책점 2.37의 정규시즌 성적과는 확연히 다르다.

정규 시즌 : 265경기 126승 60패 ERA 2.37 WHIP 1.007 피안타율 0.205
포스트시즌 : 18경기 4승 7패 ERA 4.55 WHIP 1.16 피안타율 0.229

평균자책점을 제외하더라도 WHIP(이닝당 출루허용), 피안타율 등에서도 차이가 있다. 분명 커쇼는 정규시즌에서는 에이스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4~5선발급 투수로 추락하고 있다.

▶커쇼를 위한 변명

사실 커쇼를 위한 변명은 많이 할 수 있다. 일단 18경기밖에 안되는 성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 표본이 적으니 통계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점과 평균자책점을 제외하면 나머지 수치에서는 그 정도로 큰 차이가 있지 않다고 주장이 가능하다.

또한 커쇼는 2013시즌부터 4시즌 연속으로 디비전시리즈 1차전 등판 후 4차전 등판으로 고작 3일쉬고 등판하는 지옥일정을 연속해서 겪었다. 이는 최근 야구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혹독한 일정이다. 게다가 커쇼의 포스트시즌 경기 중 꽤 많은 숫자가 불펜투수의 방화나 완전히 어긋난 투수 교체 타이밍으로 인한 자책점 형성도 상당히 많았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 비록 부진했다할지라도 그 수준이 심각하지는 않으며 이를 상쇄하고도 한참 남을 위대한 정규시즌에서의 성적(지난 5년간 사이영상 1위 3회, 2위 1회, 3위 1회, MVP 1회)이 있다는 점은 커쇼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설은 가을로 기억된다

하지만 커쇼가 단순히 ‘잘하는’ 선수를 넘어 ‘위대한’ 선수로 가기위해서는 가을야구에서의 활약은 필수적이다. 우리가 데릭 지터를, 마리아노 리베라를, 랜디 존슨을, 앨버트 푸홀스 등을 기억할 때 단순히 그 선수들이 정규시즌에서 잘한 모습만 기억하진 않는다.

지터가 보여준 2001 ALDS에서의 '더 플립(The Flip)'의 모습, 리베라가 2이닝 세이브로 2009 월드시리즈를 안긴 모습, 존슨의 불꽃 투혼으로 2001 애리조나 창단 첫 우승을 안긴 모습, 푸홀스가 2005년 브래드 릿지를 상대로 보여준 복수의 홈런 등 가을야구에서의 임팩트가 전설을 기억하는 대중들의 생각이다.

전설로 남은 2005년 리지를 상대로 뽑아낸 푸홀스의 홈런. ⓒAFPBBNews = News1
하지만 커쇼는 올 시즌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보여준 0.2이닝 세이브 정도를 제외하곤 크게 기억에 남는 가을야구가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부진했기 때문이다.

지터가 대단한 것은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의 타율이 거의 똑같이 기록(0.310-0.308)하고 은퇴했고 리베라는 정규시즌(평균자책점 2.38)보다 포스트시즌(0.70)이 더 뛰어나게 은퇴했다. 오티즈가 가을야구에서 ‘클러치 히팅’을 해주던 모습이 없었다면 약물 복용자임에도 화려한 은퇴를 할 수 있었을까.

물론 커쇼에게 아직 시간은 많다. 내년이면 메이저리그 10년차인 커쇼에게 포스트시즌 18경기보다 더 많은 기회가 갈 가능성이 높다. 다저스의 전력은 여전히 뛰어날 것이며 커쇼는 하락세가 없을 것처럼 늘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분명 기회는 더 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포스트시즌에 늘 부진해 논란이 많았던 선수였지만 2009 포스트시즌 전체에서 타율 3할6푼5리에 출루율 5할 장타율 8할 6홈런 18타점의 맹활약에 이은 우승으로 그간의 포스트시즌 부진을 모두 털어버렸던 전력이 있다.

▶‘지킬앤 하이드’같은 커쇼, 결국 마음의 문제

분명 커쇼도 잘 알 것이다. 포스트시즌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현재 메이저리그의 상징인 자신이 역사적인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 부담감이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 다른 자신을 만들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외신에 따르면 커쇼는 평소에는 한없이 온화하지만 자신이 등판을 하는 날이면 그 누구보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라고 한다.

특히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에서도 마침 최고 라이벌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매디슨 범가너가 포스트시즌만 되면 역대급 활약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모습과 커쇼를 대조시키는 것도 커쇼 자신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도 범가너의 활약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에게 뒤져서는 안된다는 부담감까지 더 얹어지는 것이다.

가뜩이나 커쇼는 다저스의 상징 그 자체이며 디비전시리즈면 1,4차전에 등판해야할 정도로 팀에서 의존도가 심해 부담감이 있는 상황에서 외부 요인들까지 커쇼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커쇼가 포스트시즌만 되면 실력 발휘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실력은 그대로지만 마음의 문제로 인해 커쇼는 포스트시즌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음의 문제는 주위에서 풀어줄 수도 있지만 결국 커쇼 본인이 풀어야만 하는 과제다.

다저스는 이변이 없는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포스트시즌에 나갈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팀이며 커쇼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커쇼는 분명 ‘포스트시즌 새가슴’이라고 불려도 변명할 수 없는 처지다. 앞으로 기회가 많이 주어질 커쇼는 과연 ‘메이저리그 아이콘’답지 않은 이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아니면 커쇼는 포스트시즌 없이 정규시즌으로만 전설으로 불리는 불완전한 명성만 안게될까. 미래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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