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통계학적으로 야구에 접근해 숫자에서 선수의 가치와 현상을 이해하는 야구 이론인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에는 수많은 기록과 지표가 있다.

그중에서도 포수부터 투수까지 모든 포지션의 선수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선수 이상의 승수)은 '세이버매트릭스의 정수'로 평가받을 정도로 중요한 기록이다.

이 지표의 의미는 WAR이 1이면 WAR이 0인 선수보다 팀에 1승을 더해준다는 것이다. WAR 1을 더하기 위해서는 FA시장에서 700만달러(80억원) 수준의 투자를 해야만 한다. 즉 WAR -1일 경우 팀에 700만달러 어치 해를 끼치는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대체선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대체선수는 메이저리그 내 평균적인 선수가 아닌 마이너리그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 선수의 중간지대 선수를 말한다. 즉, 쿼트러플(AAAA)급 선수가 바로 WAR 0이 기준으로 삼는 대체선수다.

김현수(왼쪽)와 리카드. ⓒAFPBBNews = News1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조이 리카드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지난 두달간 거품 위에 올라가 있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의 WAR때문. 2일까지 리카드의 WAR은 무려 -0.9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는 180명. 그중 리카드는 178등의 WAR이다. 뒤에서 3등(180등 꼴찌 에릭 아이바 -1.7)이다.

리카드는 1일 발표된 올스타 투표 중간 집계에서 아메리칸리그 외야수 중 투표수 14위를 차지했다. 리카드는 딴손잡이(좌투우타), 신인 백인, 룰5드래프트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으로 시즌 초 주목을 받았지만 꾸준히 그의 두 달간의 활약을 지켜본 세이버매트릭스는 메이저리그 수준 미달의 선수로밖에 보지 않는 것이다.

대체선수 레벨의 선수보다도 떨어진 평가를 받은 이유는 놀랍게도 수비 때문이었다. 리카드는 빠른 발이 있어 수비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수비 WAR에서 무려 -10.6을 기록해 수비 WAR 전체 뒤에서 2등(179등)을 차지했다. 단지 발이 빠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가 수비를 잘한다고 여겼지만 기록은 최악이었다.

결국 리카드는 쓰면 쓸수록 '팀의 승리를 1승 깎아먹는 해가 되는 선수'인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지난 시즌을 싱글A에서 시작했던 선수였던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벤치만 지키던 한때. ⓒAFPBBNews = News1
이런 상황에서 김현수에게 기회가 왔다. 지난달 26일부터 볼티모어는 김현수에게 선발을 맡기기 시작했다. 팀의 최근 8경기에서 김현수는 7경기 선발로 나섰다. 이 기간 동안 그는 3할8푼5리의 고타율과 빅리그 첫 홈런까지 신고하며 눈부신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5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 중 김현수는 출루율 1위(0.469), 타율 3위(0.382)다. 리카드가 WAR -0.9인데 반해 김현수는 +0.8이다. 리카드 대신 김현수를 쓰면 팀은 1.7승을 더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다. 기록이 누적될수록 유리한 WAR 구조에서 고작 19경기만 나서고 만들어낸 WAR 0.8은 실로 놀랍다. 김현수는 팀내 공동 WAR 3위일 정도다..

김현수는 버텼다.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라는 팀의 협박과 다름없는 권유에도 메이저리그 자리를 지켰다. 개막전 자신에게 야유를 퍼붓던 관중들의 말조차 외면한채 김현수는 끝내 팀내 가장 가치 있는 타자로 거듭나고 있다. 두달간의 활약이 거품이었던 리카드의 거품이 빠질 때를 기다렸다가 끝내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은 김현수의 인내심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제야 환히 웃는 김현수.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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