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서 새진리회 맞선 변호사 민혜진 연기

액션 연기 위해 고강도 훈련 받기도

넷플릭스 첫 도전, 얻은 것 많아

배우 김현주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넷플릭스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관성에서 벗어난 도전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데뷔 24년째 톱배우의 자리를 지켜온 김현주(45)도 그랬다. 이미 수많은 드라마의 인기를 이끌면서 쌓은 독보적 이미지가 있었고 흥행이 보장된 작품에서 안전한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플랫폼부터 캐릭터까지 모든 게 낯선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감독 연상호)을 택했다. 김현주는 "넷플릭스 안에서 어느 정도 인기일까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를 받았다. 꼭 글로벌 1위라서가 아니라 선택하길 잘했다. 새로웠고 배우로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요즘은 주변에서 굿즈 있으면 달라고 하더라"며 환하게 웃었다.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6부작 시리즈다.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지난 19일 공개 이후 하루만에 정상을 차지했고 28일 기준 TV쇼 부문 1위를 지키고 있다. 김현주는 새진리회에 맞서는 정의로운 변호사 민혜진을 연기했다. 민혜진은 새진리회와 그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집단인 화살촉의 선동을 막고 고지를 받은 사람들을 돕는 인물로, 정진수(유아인)를 향한 의문을 추적하던 중 화살촉의 습격을 받고 자취를 감춘다.

"원작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어요. 웹툰이 워낙 팬덤이 있어서 배우들과의 싱크로율에 관심도가 높았잖아요. 최대한 원작에 기반을 두고 연기했죠. 특히 1~3회, 4~6회의 민혜진에게 완전 반전에 가까운 변화가 있기 때문에 다른 인물처럼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뒤에 바뀔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하고 민혜진 캐릭터에 여지를 두려고 했어요."

김현주는 민혜진을 통해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무너져가는 세상 속 갈등과 희망을 그려냈다. 특히 그간 보여준 적 없는 고강도 액션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시크한 숏컷, 날선 눈빛엔 카리스마가 담겨 있었고 삼단봉과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에선 묘한 통쾌함이 있었다. 김현주는 대부분의 액션을 직접 소화하기 위해 촬영 전부터 액션스쿨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극 중 4년의 시간이 흐른 설정이지만 갑자기 액션배우처럼 나타나는 것도 현실적으로 맞지 않아서 액션 스타일에 대해 액션 팀이 많은 고민을 했어요. 실제로 촬영은 많이 어렵지 않았어요. 구르기, 걷기, 뛰기 같은 기초 액션들은 액션스쿨에서 걸음마 배우듯 하나하나 배웠고요. 제가 운동을 꾸준히 해서 체력이 괜찮은 편이라 합을 맞춰도 크게 숨차진 않아서 '운동한 효과가 있구나' 했어요. 근데 이상과 현실의 차이 때문에 살짝 '현타'가 왔었어요. 촬영할 땐 스스로 '이번 컷 되게 파워풀하고 절도 있었네?' 했는데 막상 모니터링 해보니 제가 굉장히 느리더라고요.(웃음) 더 열심히 했었죠."

'지옥'의 원작은 영화 '부산행', '반도'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과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함께 한 동명의 웹툰이다. 연상호 감독은 원작 각본에 이어 시리즈의 연출과 공동 각본을 맡아 완벽한 실사화를 이끌었다. 제작진의 독보적인 세계관은 김현주, 유아인, 박정민 등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생생하게 구현됐다. 김현주는 연 감독과 두 배우들을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연 감독님은 즐거움이죠. 처음 작품을 제안받았을 땐 '왜 나를 택하셨을까?' 하고 놀랐는데 촬영하고보니 액션은 하나의 도구였을 뿐이고 단지 액션만 보고 캐스팅하신 건 아닌 것 같아요. 특히 현장에서는 위트있게 분위기도 풀어주시고 편안한 분이셨어요. 유아인씨, 박정민씨는 너무 예쁘고 좋아요. 저보다 어리거나 후배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끔 두 배우가 굉장한 힘을 보여줬어요. 어쩌면 저보다 커보이기도 했고요. 각자 고유의 색깔과 신념이 확고해서 흡입력이 컸고 같이 호흡할 때 제가 어느 순간 시청자처럼 보게 되더라고요. 앞으로도 다른 작품에서 또 만나고 싶어요."

그간 김현주의 주요 활동 무대는 안방극장이었다. 1997년 '내가 사는 이유'로 데뷔한 이후 '햇빛 속으로', '덕이', '토지', '반짝 반짝 빛나는', '가족끼리 왜 이래', '애인있어요', '판타스틱', '우리가 만난 기적', '왓쳐', '언더커버' 등 다수의 흥행 드라마를 이끌었고 KBS, MBC, SBS 공중파 3사의 최우수 연기상을 모두 휩쓸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지옥'은 도전이었다. 장르, 캐릭터,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김현주는 '지옥'으로 얻은 게 많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처음인데 전 세계에서 본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웠어요. 해외 시청자들은 저에 대한 프레임이나 고정적인 이미지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뭘 하든 어색하지 않고 편하게 받아들일 것 같았어요. 연기할 때 저도 모르게 그동안 해왔던 것, 시청자들이 내게 바라는 것에 스스로 프레임을 씌워왔던 것 같은데 '지옥'은 그걸 떨칠 수 있는 계기였어요. 고정적인 프레임을 깨야 한다는 게 하나의 과제처럼 무겁게 느껴진 시간이 길었거든요. 배우라면 어떤 것이든 깨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갈증도 있었고요. '지옥'을 통해서 심리적으로 안정됐고 용기도 생겼어요. 아직 만족한다고 하기엔 이르지만 그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늘 '하던 것이나 잘하자' 했는데 '그만 둘 게 아니면 해보자'로 바뀌었어요. 계속 새롭게 도전하는 배우로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팬데믹 장기화 속 OTT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많은 배우들의 해외 진출은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OTT의 성장은 계속되고 있고 배우들에겐 더 넓은 무대를 향한 발판이 돼주고 있다. 김현주의 차기작 또한 넷플릭스의 영화 '정이'(가제)다. '정이'는 기후변화로 더 이상 지구에서 살기 힘들어진 인류가 만든 피난처 쉘터에서 내전이 일어난 22세기, 승리의 열쇠가 될 전설의 용병 정이의 뇌복제 로봇을 성공시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영화로 김현주와 강수연, 류경수가 출연한다. 김현주는 또 한 번 연 감독과 손 잡고 글로벌 시장을 두드린다.

"'정이'는 또 새로운 시도죠. 이번에도 처음 시도하는 캐릭터인데 오래 고민하지 않고 결정했어요. '지옥'에서 연 감독님이 보여주신 믿음 덕분이죠. 지금 재밌게 촬영하고 있어요. 해외 진출이요? 일단 한국에서 좋은 배우가 돼야죠. 원래 큰 목표를 두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지금 최선을 다하고 그게 쌓이면 미래가 된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그래도 꿈이라면 좋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 '왓쳐' 찍을 때 한석규 선배님이 존재만으로 힘이었거든요. 선배님을 보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선배인가?' 되묻곤 했어요. 저도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그런 배우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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