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조성연 마스터 라이터, 김성영 레이아웃 아티스트 /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영화 '루카'(감독 엔리코 카사로사)의 바다 괴물 소년 루카에게 육지는 미지의 세상이었다. 자칭 인간세상 전문가 알베르토는 그런 루카의 손을 잡고 바다 밖, 새로운 세상으로 이끈다.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아름다운 해변 마을은 그렇게 우리 모두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들처럼 '루카'의 환상적인 세계를 스크린에 구현한 한국인 애니메이터 조성연 마스터 라이터, 김성영 레이아웃 아티스트와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먼저 조성연 마스터 라이터(이하 조)는 "마스터 라이터는 조명을 담당한다. 빛으로 명암을 주고 장소와 공간, 시간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부서"라고 소개했다. 김성영 레이아웃 아티스트(이하 김)는 "레이아웃 부서는 촬영, 카메라 연출 쪽을 담당한다. 카메라는 어떤 렌즈를 쓸지, 어떤 움직임을 사용할지, 또 샷을 어떻게 연결할지 촬영 디자인을 하는 것"이라며 "영화 전체로 보면 스토리 디벨롭먼트는 4~5년 정도 걸렸다. 마지막 1년 반은 거의 프로덕션 기간이었다. 미국에선 디즈니플러스로 공개되지만 한국에서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큰 스크린에서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다"고 설렘을 드러냈다.

6월 17일 개봉한 디즈니 픽사의 신작 '루카'는 아름다운 이탈리아 해변 마을에서 두 친구 루카와 알베르토가 바다 괴물이라는 정체를 숨기고, 아슬아슬한 모험과 함께 잊지 못할 최고의 여름을 보내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단편 애니메이션 '라 루나'를 통해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며 연출력을 인정받은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녹여냈다.

예쁜 동화처럼 알록달록하고 청량한 영상미는 '루카'의 매력 중 하나다.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어린 시절 동경했던 낭만이 가득한 이탈리아 영화를 비롯해, 평소 존경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서정적인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비주얼과 애니메이팅으로 특별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또한, 2D 요소를 컴퓨터로 렌더링해 3D 세계로 가져와 컬러와 텍스처를 풍부하게 살리며, 동화책 같은 느낌과 비주얼이 돋보이도록 했다.

"'루카'를 위해 이탈리아에 가봤는데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길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밤에 아이들이 지붕 위로 이동하는 동선을 짰죠. 크게 나누면 총 3개 시퀀스를 담당했는데 오프닝이랑 밤에 아이들이 망원경으로 하늘 바라보는 장면, 레이스 파트도 한 섹션을 맡았어요. 영화 세트장 만드는 것과 똑같다고 보면 돼요. 가상의 캐릭터가 있고 카메라가 있어서 실제 촬영과 똑같은데 다만 컴퓨터 안에서 모든 게 이뤄지는 것이죠."(김)

"두 친구가 달을 보면서 얘기하는 장면, 달과 밤하늘, 구름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작업이 재밌었어요. 그것 때문에 하늘을 많이 보게 됐어요. 이탈리아 현지 타임랩스 동영상이 인터넷에 있거든요. 그걸 보면서 언제 어떻게 해가 뜨고 지는지, 여름 이 시간대에 해가 얼마나 떠있는지 하나하나 파악했어요. 단순히 예쁘게만 그린 게 아니라 사실적으로 작업한 거예요. 이탈리아에 갔을 때 골목마다 널려 있는 빨래를 인상깊게 봐서 빨래 그림자까지 신경을 많이 써서 작업했죠."(조)

영화 속 루카와 알베르토는 온통 신기한 것들로 가득한 인간 세상을 마음껏 즐긴다. 여름날의 눈부신 햇살 아래 마을 곳곳을 신나게 누비며, 처음 맛보는 젤라또의 달콤함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마을을 달리던 스쿠터에 반해버린 두 친구는 스쿠터를 타고 온 세상을 자유롭게 누비는 모험을 꿈꾸게 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젤라또, 파스타, 베스파 등의 디테일은 이탈리아 고유의 정취를 듬뿍 전한다.

"디즈니 픽사는 어떤 문화를 다룰 때 최대한 무례하지 않게 다루려고 노력해요. 전 세계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니까요. 가능하면 그 지역 출신이 감독을 한다든지, 작품의 중요한 결정권자 중 한 명은 출신지를 고려해서 정하는 편입니다."(김)

"실제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그 문화에 대해 정확히 알고 연구하시는 분들을 초대해서 자문을 구하고 작업해요. 이탈리아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젤라또, 빨래를 넣을 때도 그랬고요. 이번엔 감독님이 실제 어린 시절 본인의 친구를 회상하면서 만든 이야기라 그 때 고증을 많이 했어요. 동네 사람들이 가족처럼 알고 지내고 다정하게 인사 나누고 그런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메인 광장을 반짝반짝하게 느끼게끔 만들었죠."(조)

특히 팬데믹 시국 속에서 작업하고 개봉까지 진행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루카'는 제작진에게 남다른 기억으로 남았다. 모든 직원들이 재택근무로 작업하고 화상 채팅을 통해 협업했다. 디즈니 픽사는 재택근무 상황에 맞춘 새로운 업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등 갑작스러운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해 '루카'라는 완벽한 결과물을 이끌어냈다.

"모니터에선 괜찮아보여도 큰 스크린에서 클로즈업샷이 너무 거대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 걸 조율해야 하는데 재택근무를 하다보니 새로운 시스템이 생겼어요. VR 헤드셋을 쓰고 가상의 극장 안에서 제가 만든 클립을 보면서 그런 부분을 확인하는 거예요. 재택근무 여파로 생긴 시스템인데 앞으로도 종종 사용하게 될 것 같아요. 생산성 측면에서 마이너스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집에서 일하니까 인터넷 연결 안정성 문제 같은 게 가끔 생기곤 했죠. 또 오전엔 6살짜리 둘째 아이 숙제를 도와줘야 했고,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겨서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그래도 '루카'는 여러모로 애착이 가는 작품이에요. 저도 이민자 입장으로 살면서 이곳에 맞췄던 시선을 깨고 나 자신을 드러낼 때 오히려 이 사회에서 받아주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걸 공감해준 영화라 좋았어요. 한국 관객분들은 여행 못가서 답답한 분들이 많으실테니 큰 스크린에서 이탈리아의 풍광을 즐기시길 바라는 마음이에요."(김)

"저희는 모니터를 각자 회사에서 가져와서 집에서 작업했는데 모니터 색깔이 정확해야 한다는 게 가장 신경써야할 부분이었어요. 다행히 집에도 자동으로 교정되는 시스템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팀원들이랑은 화상 채팅 프로그램으로 활발히 소통했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고요. 이탈리아의 문화, 지역, 장소를 표현하느라 굉장히 많은 레퍼런스를 봤는데 팬데믹이 끝나서 얼른 놀러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게는 막연하게 외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 작품이에요. 누구나 루카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조)

이제 디즈니 픽사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찾는 건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가던 두 사람이 꿈의 직장인 디즈니 픽사까지 진출한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스튜디오를 노리고 왔어요. 한국에서 이쪽 분야를 공부하다가 졸업 후 5년 정도 게임업계에서 근무했고요, 유학을 온 뒤 꾸준히 공부하면서 준비한 케이스죠. 디즈니 픽사 안에서 제가 한국인이라는 걸 특별히 느낀 적은 없어요. 한 부서에 정말 다양한 국적의 팀원들이 섞여 있고 출신을 따지는 분위기도 아니거든요. 대신 얼마 전에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님을 초빙해서 상영회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직원들이 극장 옆 계단까지 앉을 정도로 몰려왔었어요. 요즘엔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올라갔다는 게 느껴지고 그런 부분에 대한 자부심도 많이 생겼죠."(김)

"저는 유학와서 처음 3D 애니메이션을 접했는데 그때만해도 한국에선 잘 모르는 분야였거든요. 너무 신기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했고 졸업작품으로 픽사에 지원해서 취직하게 됐어요. 픽사엔 이미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직원들이 많기 때문에 저도 특별히 외국인이라는 걸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작업하고 있어요."(조)

이처럼 수많은 글로벌 인재들이 활약하는 디즈니 픽사는 '꿈의 직장'이자 '꿈의 공장'이다. 팍팍한 세상이지만 이들처럼 끊임없이 따뜻한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삶의 희망을 품는다. 과거의 수많은 디즈니 픽사 명작들이 그랬듯, '루카' 역시 전 세계 수많은 관객들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줄 것이다. '루카'를 만든 두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은 "누군가에게 영감과 감동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남다른 열정을 드러냈다.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라서 내가 창작한 파트가 누군가에게 꿈을 심어줬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 가장 보람이 커요. 최근에 가수 이적 님 인터뷰를 보면 '소울'의 낙엽 떨어지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너무 좋았어요. 심혈을 기울여 찍은 장면인데 누군가에게 영감을 줬다는 게 정말 보람이죠. 앞으로도 글로벌 스튜디오에서 더욱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게 목표입니다."(김)

"제 아이가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루카'가 딱 그런 작품이라 좋았어요. 아이 친구들이 '너희 엄마가 이걸 만들었어?' 할 때 정말 뿌듯했고요.(웃음) 앞으로도 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요, 지금도 많은 한국인 아티스트와 감독님들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간 디즈니 픽사에서 정말 한국적인 작품을 만드는 날도 오지 않을까 희망하고 있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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