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제작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첫사랑 영화의 상징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이 딱 10년 만에 내놓은 '서복'은 첫사랑의 알싸함과 쓴 맛을 시의적절한 유머와 물 흐르듯 흐르는 자연스러운 드라마로 만들어냈던 '건축학개론'과는 여러 지점에서 멀리 놓여 있는듯 보이지만 또 일맥상통하게 흐르른 정서 또한 존재한다.

스토리를 살펴보자면 '서복'은 과거 트라우마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던 전직 요원 기헌(공유)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고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 서복(박보검)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영화의 출발부터 뇌종양을 앓고 있는 기헌이 병마로 인해 고통을 겪는 모습이고, 줄기세포 복제를 통해 탄생해 영생을 얻은 존재인 서복 쪽도 그리 평화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빠른 세포분열을 막아주는 주사를 매일 같은 시간 맞아야 하는 그가 내지르는 신음 소리를 듣고 있자면 또 다른 한국형 SF영화 '서복'이 마블식 SF와는 달라도 한참 다를 것임을 짐작케 한다.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이용주 감독은 '건축학개론'에서 '서복'이 탄생하기까지 그를 가장 오랫동안 관통했던 가장 큰 화두에 털어 놨다. 개봉이후 다양한 관객 반응들과 영화를 향한 호불호의 평가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지만 자신과 제작진의 진심이 많은 이들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큰 듯 했다.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큰 바람은 많은 관객들이 즐겨주시는 거죠. 하지만 100명의 관객 중 95명이 좋아하는 영화는 아마 평생 못 찍을 것 같아요. 100명 중 60명이 좋아해주시는 게 늘 목표죠. '서복'은 편집 중반 모니터링 단계에서 호불호가 갈린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기대와 다르다는 반응들이 있더라고요. 왜 그런 기대가 생겼을까 생각해보니 영화에 대한 정보들이 조금씩 공개되고 복제 인간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SF에 대한 기대가 커졌나봐요. 하지만 저는 'SF장르를 해야지'여서가 아니고 서복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콘셉트도 잡고 시높시스도 쓰고 하다가 복제인간이 들어오면 적합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였어요. 설정적 측면에서 복제인간을 선택했고 그 복제인간 단어가 SF를 너무 강력히 연상시켰죠. 큰 파도를 막기에는 역부족인데 이 영화 기획의 숙명 같아요. 실망한 관객들을 보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고, 또 만족하시는 관객을 보면 너무 감사하고 일희일비했습니다."

영화의 공개 이후 복제인간 서복 역을 연기한 박보검의 순수하고 순박하기 이를데 없는 소년미부터 자신을 차지하기 위해 극악무도한 행위를 마다 않는 탐욕 가득한 존재들을 향한 흑화까지 감정의 다양한 파고를 날 것의 모습으로 표현해낸 연기력을 향한 칭찬이 대세다. 그를 하루 아침에 스타덤에 올려 놓은 '응답하라 1988'에서 연민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한편으론 강단있는 택 역을 선보였고, '구르미 그린 달빛'과 '남자친구', '청춘기록' 등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멜로 남주로 분해 여심을 흔들었던 박보검은 '서복'에서는 감정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순진무구한 서복의 모습부터 분노 게이지 100%에 달한 복제인간 서복의 모습까지 모든 것을 눈빛으로 표현하며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마저 붙여주고 싶은 충동을 일게 했다.

"박보검 배우는 애초 그 눈빛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전에 너무 무구하고 착하고 러블리한 역할들을 많이 해서 그렇죠. 제가 배우에게서 뭘 뽑아낼 수 있겠어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걸 서로 이야기하면서 만들어 갈 뿐이에요. 박보검 배우가 자기 캐릭터와 경계를 넓히는 것에 대한 의지가 강했어요. 처음엔 제가 뭘 도와줘야 할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박보검에게 공감하고 감탄한 것은 정말 눈빛이 좋은 배우에요. 눈빛이 기가 막히죠.박보검 씨가 너무 이미지가 맞았기에 서복 역에 캐스팅했는데 확정됐을 때 정말 제가 쾌재를 불렀죠. 처음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깜짝 놀랐어요. 너무 좋은 눈빛이어서 감탄하며 찍었죠. 이모개 촬영감독과 첫 테스트 촬영을 진행하는데 보검 씨가 순진무구한 눈빛부터 그 반대의 눈빛까지 너무 잘 표현해줬어요. 둘이서 '됐다' 했죠. 박보검은 현장에서의 태도나 집중력, 예의바른 행동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 배우였어요."

이용주 감독은 시나리오를 구체화하기 전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영화를 정의했다. "죄인 민기헌이 서복을 통해 구원받는 이야기"라고.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큰 병을 앓고 있다 믿고 있고 자신의 운명에 대해 두려움에 휩싸인 민기헌이 서복이라는 초월적 존재를 만나고 그와 동행을 통해 분노와 두려움의 존재를 깨닫고 구원을 받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민기헌의 1인칭 시점으로 펼쳐지는 영화이기에 공유의 존재감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공유 씨와 캐릭터와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할 때 톰 크루즈와 더스틴 호프만의 '레인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더스틴 호프만은 자폐를 가지고 있고 대화가 힘든 사람인데 톰 크루즈가 그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뭉클하죠. 기헌이 서복을 향해 다가가는 감정이 그와 비슷할 거라 봤어요. 우리 영화 자체가 민기헌이 초월자 서복을 향한 시선을 그린 거죠. '건축학개론'을 끝냈을 무렵 공유에 대해 감독으로서 관심이 갔어요. 연기하는 이미지의 폭이나 작품 선택 행보에 관심이 갔죠. 돌아서 들으니 공유 씨도 '건축학개론'을 잘 봤다고 하더라고요. 제 차기작에 관심을 가졌다는 소식도 바람결에 흘려 들었어요. '서복'을 쓸 때 자연스럽게 생각이 났고 만나서 함께 해보니 제 기대가 맞았다는 걸 알았죠. 공유는 배우로서도 인간적으로도 훌륭했어요. 주인공으로서 현장에서 보여준 모습도 멋있었죠. 스태프들이 입을 모아 멋있다며 칭찬을 했어요. 인간으로서의 문턱도 열려 있는 사람이고 정말 잘 맞는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촬영이 끝나고 오래 지난 후에도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일 정도로 친해졌어요. 여러가지로 고마웠고 참 좋은 배우죠."

'건축학개론'과 '서복' 사이의 엄청난 간극에 대해서는 감독 자신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건축학개론'이후 멜로 장르 영화의 제안만 수도 없이 받았지만 전부 거절하고 '서복'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곁들여졌다.

"개봉은 '불신지옥'과 '건축학개론' 그리고 '서복'순이지만, 시나리오는 30대 때 '건축학개론'을 쓰고 나서 40대가 가까워져서야 '불신지옥'을 썼어요. 제가 예전에 건축 쪽 일을 했고 건축이 저의 첫사랑과 다름 없었기에 멜로 장르에 잘 맞았죠. '불신지옥'을 쓸 당시 개인적 일이 많았어요. 사담이지만 극 중 납골당 신을 촬영한 장소는 제 친한 친구가 실제 안치된 장소에요. 서복이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이 시작된 경윤의 납골당을 찾아가는 장면을 이 곳에서 촬영했습니다. 그 장면을 위한 헌팅을 많이 했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아는 장소로 가자고 했죠. 30대 초반에 사고로 세상을 먼저 뜬 친구인데 저에게는 납뜩이 같은 존재에요. 나이를 먹으니 내 마지막은 뭘까 생각하게 되고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주위 친구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도 접하게 되고 20~30대 때 전혀 관심 없는 영역이었는데 점점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게 삶과 죽음이라는 '서복'의 테마에 관심이 갔어요. '불신지옥'을 첫 작품으로 내놨지만 흥행에 참패했었고 옛날에 써둔 '건축학개론'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내놨더니 흥행이 됐죠. 차기작에서는 '불신지옥'의 확장판을 해보고 싶었어요. 멜로 제안이 너무 많이 들어왔지만 관심이 안갔어요. 그 때 당시 제게는 '서복'의 감정이 중요했죠."

삶의 유한성에서 오는 인간의 두려움이라는 주제를 정한 이용주 감독은 이후 원죄 의식을 지닌 한 인간과 초월자적 능력을 지닌 복제인간의 동행으로 스토리를 넓혀 갔다. 줄기세포 복제를 통해 탄생한 서복이 지닌 초월적 힘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다양한 상상력이 가미되긴 했지만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기 위해 다양한 조사들이 선행됐다.

"마블 영화를 보면 히어로가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획득하게 되는 과정만 딱 영화 한 편 분량이지 않나요. 관객들은 항상 인과 관계나 원인과 결과를 해석하려고 합니다. 복제 인간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면서 실제 국내에서 복제 관련 사례들에 대해 조사를 했어요. 복제를 통해 태어난 동물들은 실제 소스보다 일찍 죽습니다.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거죠. '만일 이렇게 복제를 통해 일찍 죽을 수 있는 존재가 영원히 사는 신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어요. 그런 존재가 사이드 이펙트를 가지게 된 거죠. 제가 이과 출신인데 과학이 밝혀낸 세상에 존재하는 힘은 네 가지가 존재합니다.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인데 그 중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힘은 중력과 전자기력이에요. 서복에게는 뇌파의 전기신호를 강하게 낼 수 있다고 설정했죠. 자석 주위에 철가루가 놓인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우리 영화에 원으로 구현된 형태가 많이 등장합니다. 기헌과 서복의 바닷가 여행에서 서복이 기헌에게 원형의 돌무덤을 만들어 주고 서복의 집도 동그란 원이고요. 엔딩에 서복의 공격으로 움푹 패인 땅도 원의 형태죠. 새들도 원을 그리며 날아갑니다. 서복이 초능력을 발휘했을 때 생기는 결과들인데 프리 단계서부터 이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어요. 원의 이미지가 원초적 모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복이 인간을 뛰어넘는 힘의 근원이 거기에 있다고 봤어요."

엔딩신의 촬영에만 한 달이 넘게 걸릴 정도로 이용주 감독을 비롯해 전 배우와 스태프들이 공을 들인 장면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기헌과 서복의 로드무비 형식을 지녔다면 엔딩에서는 서복을 차지하려고 이합집산을 펼치던 조직들과 서복과 기헌 팀의 일대 승부가 펼쳐진다. 영화의 모든 VFX 역량이 발휘된 장면이기도 하다.

"촬영 장소인 조선소가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어서 영화를 마쳐야 하는 날짜가 정해진 상태였어요. 그 장면이 세팅을 위해 우리 팀이 할 수 있는 극한의 지점까지 갔죠. 사실 제 한계를 넘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넘겼어요. 그 시퀀스를 찍는데 한 달이 소요됐고 나이트 장면이기에 조명도 중요했어요. 굉장히 많은 시행작오와 공력을 들인 장면입니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CG 수퍼바이저와 잠시 사이가 안좋았던 시간도 있는데 나중에는 화해를 했습니다. 한참 회의 분위기가 무거울 때 '승리호'의 흥행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더라고요. 화면의 완성도를 위해 레이어가 엄청나게 깔려야 하는 장면이기도 했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과 솔루션에 대한 기술적 부분에 대해 제가 모르는 것도 많았어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솔루션에 대한 회의만 80%였죠. 그렇게 살얼음판을 걸으며 만든 장면입니다. '서복'의 속편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지만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밝은 톤으로는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차기작은 지금보다 훨씬 짧은 간격으로 만들고 싶어요."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