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당신의 이야기'서 당차고 풋풋한 청춘 연기

배려심 깊은 강하늘과 호흡 편하기도

아날로그 감성무비, 잊고 지낸 감정 끌어낼 것

배우 천우희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주)키다리이엔티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클래식은 영원하다. 그게 사랑에 대한 화법이라면 더욱 그렇다. 금세 인연을 맺고 또 금방 끊어내는 데 익숙한 요즘이지만, 그 사이에도 낭만은 있다. 28일 개봉한 '비와 당신의 이야기'(감독 조진모)는 바쁜 현대사회에서 누군가 놓치고 말았을 사랑의 설렘과 기다림의 낭만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배우 천우희(34)는 "곱씹을수록 좋은 이야기"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우연히 전달된 편지 한 통으로 서로의 삶에 위로가 되어준 영호(강하늘)와 소희(천우희), '비 오는 12월 31일에 만나자'는 가능성이 낮은 약속을 한 그들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천우희는 팍팍한 현실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소희를 연기했다.

"소희는 당돌하지만 날카롭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제 막 20대에 진입한 청춘이라 풋풋함이 잘 보였으면 했어요.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이런 스무살 특유의 열정이나 씩씩함을 담고 싶었죠.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 가장 결이 비슷한 캐릭터라 어렵진 않았어요. 저도 제 의견을 명확히 얘기하지만 또 예민한 타입은 아니거든요. 다른 점이라면 저는 좀 더 행동파에요. 편지를 받았다면 저는 직접 가거나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

뚜렷한 목표 없이 삼수 생활을 시작한 영호는 문득 어린 시절 친구였던 소연에게 편지를 보내고, 아픈 언니 대신 영호의 편지를 받은 소희는 답장을 쓰기 시작한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편지는 두 사람의 희미했던 하루를 선명하게 밝혀준다. 주고받는 편지가 많아질수록 영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도 쌓여간다.

"소희에게 영호는 단비 같은 존재였을 거예요. 반복되고 지치는 일상에서 한번씩 소나기처럼 내려주는 활력이요. 실제로 만난 강하늘 씨는 굉장히 리액션이 좋은 친구였어요. 영화 속에서는 대부분 편지로만 소통하니까 현장에서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 홍보하면서 보니까 워낙 성격이 좋고 마음이 열려있는 스타일이라 같이 있으면 참 편했죠."

처한 현실도, 타고난 성격도 완전히 다른 소희와 영호는 우연히 영호가 보낸 편지 한 통으로 일상의 변화를 맞는다. 무료하게 굴러가던 하루는 순식간에 설렘으로 가득찬다. 정성스레 편지를 써 우체통에 넣고, 답장을 기다리는 순간까지. 느리지만 진심을 담은 이들의 소통은 모두의 추억을 되짚게 하는 힘이 있다.

"직접 만나지 않고 편지만 주고받는 게 오히려 감정 연기에 도움이 됐어요. 최대한 상대방을 상상하면서 '이 사람이 내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떤 감정일까', '어떤 글을 써줄까' 무한대로 상상할 수 있어서 더 좋았거든요. 영화에 나온 편지요? 강하늘 씨는 직접 쓰셨고, 저도 처음엔 썼어요. 손글씨 인터넷 강의도 신청하고 만년필을 써보기도 했죠. 열심히 연습하고 감독님께 글씨를 보여드렸는데 썩 괜찮지 않으셨나봐요. 다른 전문가 분의 도움을 받게 됐어요.(웃음)"

편지를 통해 용기를 얻고 점차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고 성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기분 좋은 설렘을 선사한다. 천우희 역시 촬영 내내 자신의 20대가 떠올랐다고 했다.

"제 20대는 정말 평범하고 심심했어요. 오히려 연기를 시작한 이후로 정체성도 찾고 제 자신에 대해 알게 됐고요, 20대 초반엔 모든 게 막연하고 특별히 재밌는 일도 없이 보낸 것 같아요. 그래도 손편지를 써본 기억은 있어요. 초등학생 때 교환일기 같은 걸 썼어요. '글씨 안에 숨은 메시지를 맞혀봐!' 이런 것도 하고, 소희처럼 글자를 뒤집어써본 적도 분명 있을 거예요."

2003년과 2011년을 배경으로 한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정겨운 아날로그 감성을 소환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만남보다 단절이 익숙해진 상황 속에서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인스턴트 같은 인간관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는 큰 위로와 힐링을 안겨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정말 좋아해요. 예전 감성의 영화는 언제봐도 좋아요. '비와 당신의 이야기'도 그런 면에서 통할 것이라 생각해요. 그 시절의 감성을 경험해본 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 같고,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과거를 궁금해하고 흥미롭게 생각하잖아요. 사실 요즘의 우리는 빠르고 직접적인 표현이나 연락에 익숙하죠. 디지털 방식 때문에 콤팩트하게 느껴지지만 세세하게 결을 찢어보면 그 안에도 기다림이 있고 설렘이 있잖아요. 빠르게 지나쳐버리는 감성을 섬세하게 짚어주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는 천우희에겐 배우로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 기회이기도 하다. 2004년 영화 '신부수업'으로 데뷔한 그는 주로 선 굵은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하는 배우였다. '써니'(2011)의 불량소녀 상미, '한공주'(2014)의 깊은 상처를 안은 한공주, '곡성'(2016)의 미스터리한 무명, '우상'(2019)의 비밀을 간직한 련화 등 매번 과감한 캐릭터로 도전을 거듭했고, 이젠 한국 영화계에 없어서는 안 될 배우로 우뚝 섰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는 맑고 풋풋한 청춘의 표상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한계 없는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했다.

"무거운 역할들을 할 때도 만족했었어요. 일상 생활에서는 쓰지 않는 감정, 표현들을 꺼내는 게 좋았었죠. 근데 늘 주변 지인들은 실제 모습에 가까운 캐릭터를 해보라고 했었어요.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소희는 감정선이 일상적인 편이라 제 안의 모습을 많이 꺼내썼어요. 이번엔 딱 제 청춘을 담은 영화이기도 해서 좋아요. 언제든 마음 편히 꺼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개봉 첫날부터 단숨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관객 기근 속에서도 오롯의 영화 자체의 힘으로 꾸준히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영화의 흥행을 이끈 천우희는 당분간 바쁜 행보를 이어간다. 다양한 작품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고, 배우 신하균과 호흡을 맞춘 스릴러 '앵커'(감독 정지연)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제가 소희 나이일 때는 별다른 꿈이나 목표가 없었어요. 스스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특별히 뭘 잘한다고 여기지도 않았고요. 오히려 연기를 시작하고 목표가 생긴 케이스죠. 그동안 찾지 못했을 뿐이지 목표 지점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원하는 작품이 적재적소에 오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건강 관리 열심히 해서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할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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