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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윤여정 /사진=연합뉴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연기상을 수상한 윤여정이 시상식 후 이어진 내외신 기자간담회에서 빛나는 입담을 과시했다.

윤여정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품에 안았다.

윤여정은 시상식이 끝난 직후 현지에서 내외신 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냐' 이런 걸 물으시는데 '최고'는 싫다. 그냥 '최중' 이런 건 안되겠나. 우리 같이 살면 안되나"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미국인들도 우리와 똑같은게 자꾸 '브래드 피트를 만난 소감이 뭐냐' 묻더라. 브래드 피트가 우리 영화 제작자인데 내가 '다음에 돈 좀 더 써달라'고 이야기했더니 역시 그도 달변이라 잘 빠져 나가더라. '아주 조금 더 쓰겠다'고 했다"며 달변을 이어갔다.

윤여정은 60세가 된 후 대본을 보는 기준을 바꿨다며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환갑이 되고 바뀌었다. 사람이 좋으면, 또 제가 믿는 프로듀러가 하라고 하면 하기로 했다"며 "그 때부터 사치스럽게 살기로 결심했다. 내가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사치스러운 것 아닌가. 예전엔 (작품을 고를 때)성과가 좋겠다 이런 걸 봤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 배우 윤여정과 브래드 피트/사진=연합뉴스
'미나리'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에 대해 "'미나리'의 스크립트는 진짜 이야기였다. 대단히 잘 쓰는 기교가 있고 이런 게 아니라 진심으로 쓴 글이었다. 그게 늙은 나를 건드렸다. 정이삭 감독을 만났는데 '세상에 이런 애가 있나' 싶었다. 감독들은 다 잘난 체 하는데 부모가 희생하고 할머니가 손자를 무조건 사랑하는 이야기에 진심을 담아서 썼더라. 정이삭은 저보다 너무 어리고 심지어 내 아들보다 어린데 현장에서 너무 차분하게 컨트롤했다. 어느 누구도 모욕주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고 존중하면서 하더라. 코리안 아메리칸인 정 감독에게 어떤 희망을 봤다. 굉장히 세련된 한국인이 나왔구나 싶더라"고 말했다.

다음은 윤여정과의 일문일답.

- 수상소감을 들려달라.

▲ 제가 수상한다고 생각도 안했다. 글렌 클로즈라는 여자를 오랫동안 봐왔다. 그 사람이 8번 노미네이트 되고 안됐더라. 나는 진심으로 그 여자가 타길 바랐다. 여러분은 배우라는 직업이 잠깐 하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배우를 오래한 사람이다. 하루에 되는 스타와 배우는 다르다. 글렌 클로즈와 만나서 그 여자를 쭉 보고 있었으니 그런 게 좋았다. 제가 2000년 영국에 갔을 때 그녀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연극을 하는 걸 보고 참 대단하더라.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타기를 바랐다. 내 옆 친구들은 '선생님이 받는다'고 그러는데 그건 안 믿었다. 요행수도 안믿고 오래 살아서 배반을 많이 당해봤기 때문에 바라지도 않았다. 제 이름이 불려지는데 제가 영어도 못하지만 그것보다는 잘할 수 있는데 (수상소감이)엉망진창으로 됐다. 좀 창피하다.

- 한예리와 함께 하게 된 이유는.

  • 배우 윤여정과 한예리/사진=연합뉴스
▲ 저희는 아카데미를 와본 적이 없기에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그런데 그 사람은 팬데믹 전에 왔으니 자기네 크루랑 같이 올 수 있지만 여기는 지금 노미니된 사람이 딱 한 사람만 데리고 들어올 수 있다. 제가 아들이 둘인데 둘 중 하나만 어떻게 할수 없었고 이 영화를 하게 하고 지금까지 내가 캠페인을 하게 한 내 친구 김인아라는 프로듀서가 있다. 우리 작은 아들이 '인아 누나가 가야 한다' 그랬다. 그런데 오스카는 세상에서 굉장한 건가 보다. 다 오고 싶어 하는데 인아가 그러더라. 자기는 노바이인데 예리씨가 가야 된다고. 뒤에 굉장히 아름다운 얘기가 있다. 예리는 내 딸로 나왔고, 예리가 오는 게 좋겠다 생각을 해서 제가 예리보다 군번이 높으니 오라고 그랬다. '미나리' 만든 식구들하고 선댄스까지 보고 못봤다. 스티븐 연과 다 같이 보자고 했다. 상까지 타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타게 됐다.

- 브래드 피트를 만난 소감은.

▲ 미국 사람도 우리랑 똑같다. 브래드 피트 본 게 어떠냐고 자꾸 묻더라. 그 사람은 영화에서 너무 봤으니 잘 생겼다. 브래드 피트가 우리 영화 제작자다. 제가 '다음 번 영화 만들 때 돈 좀 더 써달라' 했더니 굉장히 잘 빠져나가더라. "조금 더 쓰겠다"고 했다.(웃음) 우리 영화는 독립영화였다.

- 오랜 세월 연기를 했는데 처음 했을 때와 마음가짐이나 철학이 달라진 게 있나.

▲ 내 열등의식에서 시작된 것 같다. 제가 연극배우 출신도 아니고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니잖나. 그냥 아르바이트하다가 시작했다. 그래서 제 약점을 잘 알기 때문에 열심히 대사를 외워서 남에게 피해주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나중에는 절실해야 된다는 걸 알았다. 제가 연기를 좋아해서 해야 하고 좋아해야 되겠지만 저는 절실해서 했다. 먹고 살려고 했기 때문에 대본이 저에게는 성경 같았다. 상 탔다고 멋있게 이야기하려고 그러는 것 같다.(웃음) 그냥 많은 노력을 했다. 브로드웨이 명언이 있다. '어떻게 해야 브로드웨이로 갈 수 있나'라고 물으니 답이 '프랙티스'다. 연습은 무시할 수 없다.

  • 배우 윤여정 /사진=후크엔터테인먼트
- 수상소감도 그렇고 입담의 비결은 뭔가.

▲ 제가 오래 살지 않았나. 좋은 친구들과 수다를 잘 떤다. 그 수다에서 입담이 나오나보다.

- 지금이 최고의 순간인가.

▲ 최고의 순간은 없는 것 같다. '최고' 그런 말이 참 싫다. 저에게 영어를 잘하는 애들이 충고 하더라. 컴피티션 이런 것을 싫어한다고 하더라. '1등 된 것' 이런 말 하지 말라더라. 최고 말고 최중 그런 건 안되나. 우리 같이 살면 안될까. 최고의 순간인지 모르겠고 아카데미가 최고가 아니잖나. 동양사람들에게 벽이 너무 높았다. 아카데미 월이 트럼프 월보다 너무 높았다. 동양사람들에게 너무 높은 벽이 됐다. 최고가 될려고 그러지 말자. 최중만 될려고 살면 되잖아. 동등하게 살면 안되나.

- '미나리'를 선택할 때 대본을 다 안읽고 선택했다던데.

▲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60세가 넘어 바뀌었다. 60세 전에는 계산을 했다. 성과가 좋겠다 싶은 영화를 했다. 환갑이 넘으면서 기준 바뀌었다. 사람이 좋으면, 프로듀서가 제가 믿는 사람이면 하려고 한다. 그 때부터 사치스럽게 살기로 결심했다. (착용한 반지와 액세서리를 가리키며)이건 다 빌린 거다. 협찬 받았다. 내가 내 인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사치스러운 것 아닌가. 내 계획대로 안하고 이 대본을 가지고 온 애가 내가 믿는 애였다. 대본이 영어로 돼 있어서 골이 아팠다. 그런데 대본 읽은 세월이 오래 됐으니 안다. 진짜 이야기인가 아닌가. 너무 순수하고 너무 진지했다. 진정성, 나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로 말하기 싫다. 진짜 이야기였다. 잘 쓰는 기교가 있어서 쓴 작품이 아니고 진심으로 썼더라. 그게 늙은 나를 건드렸다. 제가 또 잘 안넘어가는데 정이삭 감독을 만났는데 '요즘 세상에 이런 애가 있나' 싶었다. 감독들은 다 잘났는데, 제가 또 잘난 척 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제가 70넘은 나이에 이코노미 비행기를 타고 오라더라. 전 못탄다. 털사 오클라호마까지 그걸 어떻게 타나. 저도 젊을 땐 다 타고 다녔다. 그래서 제 돈으로 갔다. 제게 대본을 전해준 그 친구의 진심을 믿었다. 가 늙은 여우 같으니 감독이 싫었으면 안했을 거다. 이런(수상) 것은 상상도 안했다.

- 오랜 시간 많은 작품에서 연기했다. 그 중 '미나리'가 해외에서 사랑받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 그건 대본을 잘 썼다. 여기서는 스크립트라고 하더라. 제가 잘 한 건 아니고 대본을 잘 쓴거다. 인터뷰하다가 알았다. 할머니와 부모가 희생하고 그러는 건 국제적으로 유니버셜한 이야기잖나. 그게 사람들을 움직였을 거다. 부모는 희생하고 할머니는 손자를 무조건 사랑하지않나. 그 소재는 아이작이 굉장히 진심으로 썼으니까 통했을 거다. 내가 평론가도 아닌데 평론가에게 물어보라. 배우는 자기 역할을 받으면 그걸 어떻게 내가 하는가를 열심히 연구하고 그런다. 영화가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그런 것은 모른다. 알면 사업을 했지.

- (수상이후)앞으로 계획이 있나.

▲ 앞으로 계획없다. 살던대로 살 거다. 오스카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게 아니잖나. 옛날부터 결심한게 있다. 대사를 옛날부터 외워서 늙으니 굉장히 힘들다. 민폐가 되지 않을때까지 이 일을 하다가 죽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했다.

- 시상식에서 소감 중 정이삭 감독과 김기영 감독을 언급한 이유는.

▲ 영화는 곧 감독이다. 감독이 굉장히 중요하다. 60세가 넘어서 알았다. 감독이 하는 역할은 정말 많다. 영화라는게 종합예술이잖나. 머리가 이렇게 좋은 사람부터 바닥까지 다 아울러야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건 대단한 능력이고 힘이다. 봉준호 같은 사람들 대단한 거다. 김기영 감독님을 만난 건 21세인가 그랬다. 제가 그분께 감사한 걸 60이 돼서 알았다. 그래서 죄송하다. 그 때는 너무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에게 너무 힘든 감독이었고 싫었다. 지금 와서 너무 죄송하고 후회하는 일이다. 늘 그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이나에게 늙었는데 왜 철이 없냐고 한다. 늙었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김기영 감독님은 어릴 때 만났고 정이삭은 늙어서 만났다. 정이삭 감독은 나보다 너무 어린 앤데, 우리 아들보다 어린 앤데 현장에서 정말 차분하다. 사실 현장에서는 다들 미친다. 수십명을 컨트롤할려면 돌게 된다. 그런데 정이삭은 차분하게 콘트롤 했다. 누구를 모욕주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고 존중하면서 한다. 내게 친구들이 많은데 어떤 감독하고 일하고 흉을 안보는 감독은 정이삭이 처음이라더라.

제가 희망을 봤다. 그는 코리안 아메리칸이잖나. 한국 사람의 종자로 미국 교육을 받아서 굉장히 세련된 한국인이 나온거다. 너무 희망적이었다. 정말 너무 좋았다. 그 세련됨을 봤다. 그라고 화가 안나겠나. 그걸 다 컨트롤하는데 43세다. 제가 존경한다고 그랬다. 아이삭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제가 스물 한살 때 김기영 감독께 감사를 못했는데 이제 정이삭 감이 다 받는 것 같다. 이제 감사를 아는 나이가 됐다. 내가 75세다. 그래도 철이 안난다.

- 브래드 피트와 무대 뒤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 한국에서 여러 사람이 좋아한다고 한국에 한 번 오라고 했다. 우리 영화가 브래드 피트가 제작했다. 제가 '돈을 좀 더 줘라. 너무 힘들었다' 했더니 그도 대단한 배우 아닌가. 인터뷰를 많이 하면 사람이 성장한다. 그랬더니 조금 더 주겠다고 하더라. 한국에 팬이 많다. 꼭 오라고 했더니 꼭 오겠다고 했다. 약속한다더라. 제가 미국 사람들 말을 잘 안믿는다. 그 사람들 단어가 너무 화려하잖나. 내 퍼포먼스를 너무 존경하고 어떻다고 그러던데 늙어서 남의 말에 잘 안넘어간다.

- 미국에 사는 한국 이민자들이 특히 이 영화에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엔딩에서 너무 갑자기 끝나는 느낌이 있다.

▲ 사실 선댄스에서 보고 놀랐다. 스크립트 상에서는 원래 그렇지 않았다. 한국 사람 정서에 맞게 할머니는 돌아가신다. 한참 뒤에 죽는다. 손자들이 나중에 양로원에 와서 화투를 함께 쳐주려고 하지만 그걸 못한다. 그러면서 미나리에 대한 나레이션이 나온다. 우리는 그 엔딩을 좋아했다. 그런데 아이작이 엔딩을 바꿨다. 나는 원래 막 주장을 하는 사람이다. 야, 그건 아니다. 원래대로 하라고 했다. 아이작은 참 현명하다. 한국에서는 '니가 이기네, 내가 이기네' 하겠지만 그는 '선생님, 틴에이저 배우들을 구해야 하는데 또 오디션을 해서 아이들을 다시 구해야 한다'며 말하더라. 그리고 대본은 안보여주더라. 스티븐 연하고는 많이 말했나보다. 그런데 선댄스에서 처음 보고 그 엔딩이 너무 좋았다. 왜냐하면 인종차별 영화를 우리는 많이 봤잖나. 이탈리안으로서 성공하는 얘기 아일리시맨도 봤지 않나.

스티븐이 맨날 이야기하지 않나. '한국 사람은 머리가 있지, 우리가 그걸 쓰는 거야. 미국 애들은 머리가 없지' 하잖나. 그러다 물 찾는 사람을 안믿다가 나중에 그걸 믿어서 같이 예리랑 같이 가서 그걸 찾지 않나. 나는 그게 유니피케이션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나누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나의 좋은 점과 다른 사람의 좋은점도 받아 들이지 않나. 아이삭이 예일 대학 나온 애라 머리가 좋더라. 저는 그 엔딩을 보고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는 자극적이고 그렇지 않나. 심심해서 걱정하고 MSG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어쨌든 본전은 건졌다고 하더라.

제가 미국에서 좀 살아봤다. 걔네들이 모든 걸 우리를 디스크리미네이션(차별)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오그라든다. 그 장면도 좋다. 친구가 와이 유어 페이스 소 플랫 그러잖나. 대체로 감독들이 거기서 비튼다. 그런데 그걸 안 비틀고 아이들의 마음은 그냥 '얘하고 나하고 다르네' 할 수 있다고 본다. 아이작의 그 점이 좋았다.

- '미나리'에 대한 국민적 성원이 크다. 이에 대한 소감은.

▲ 제가 상을 타서 너무 감사드린다. 축구 선수 심정을 알겠더라. 영화 찍으며 아무 계획 한 게 없다.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다. 사람들이 너무 응원을 하니 제가 실핏줄이 다 터졌다. 너무 힘들었다. 성원을 주시는데 나는 못받으면 어떻게 하나 싶더라. 노미네이트 된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상을 받을 생각도 없었다. 2002년 월드컵할 때 그 발 하나로 온 국민이 난리칠 때 (축구선수들이) 너무 안됐더라. 김연아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는 처음 받는 스트레스였다. (그런 것이)즐겁지는 않았다. 외국 인터뷰만 한다는 오해가 있는데 제가 한 건 캠페이닝이었다. 송강호 배우는 코피가 다 났더라더라. 저는 이번에 줌으로 하루 7~8시간씩 영어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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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21/04/26 18:44:36   수정시간 : 2021/04/26 19: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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