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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설경구/사진제공=메가박스 플러스엠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설경구하면 여전히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 속 명대사 "나 돌아갈래"를 떠올리거나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특별한 별명을 안겨준 '불한당'(변성현 감독/2017)이 생각나는 관객들이 분명 있을 거다.

대표작으로 따지자면 두 편의 1000만 영화인 '실미도'(강우석 감독/2003), '해운대'(윤제균/2009)부터 '오아시스'(이창동 감독/2002), '강철중:공공의적'(강우석 감독/2008), '감시자들'(조의석·김병서 감독/2013), '소원'(이준익 감독/2013), '생일'(이종언 감독/2019) 등 최소한으로 줄여서 꼽아도 손이 아플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영화들이 존재한다.

아무리 연기력이 좋아도 쉽게 오르기 힘든 국민배우 반열에 오른 설경구 같은 배우들에게 수많은 대표작들은 자랑스러운 훈장 같은 것이지만, 반면 관객들에게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가지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는 때론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매 작품마다 인장을 강하게 새기는 그이기에 전작의 아우라는 관객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다.

하지만 '자산어보'의 정약전을 연기한 그는 '설경구의 작품을 볼만큼 봤다'거나 '설경구의 연기력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관객에게 이전과는 결이 전혀 다른 새로운 경지의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깨의 힘을 쭉 뺐다'거나 '제 몸에 꼭 맞는 맞춤옷 같은 연기'라는 상투적 표현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실존 인물 정약전과 혼연일체된 연기라고 해야 그나마 가까울까.

예수를 믿고 사학을 연구한 이유로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된 정약전이 그 곳에서 젊은 어부 창대와 어류도감인 자산어보를 함께 써나간 이야기를 그린 '자산어보'. 설경구는 연기 인생 처음으로 도전한 사극 '자산어보'에서 임금도 필요 없고 양반과 상놈의 차이도 필요 없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급진적인 가치관을 책으로 옮기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어류 연구에 십여년이 넘는 시간을 바친 정약전의 삶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로 펼쳐낸다. 바닷일을 하는 천한 신분의 창대를 제자로 때론 스승으로 받아 들이며 신분을 뛰어넘는 진정한 벗이 되어 어류 도감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통해 실사구시의 삶을 실천해갔던 정약전의 모습을 통해 이준익 감독과 설경구가 2021년의 관객에게 던지는 새로운 화두를 음미해 보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 설경구 30여년 배우 인생에서 첫 사극 도전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 사극 제안을 받을 때마다 '조금 있다가 할게요' 하다가 마침 '자산어보'가 첫 출연이 됐다. 제가 이준익 감독님께 '사극 대본 주세요'한 게 아닌데 대본 준비하시는 것 있으면 달라고 했다가 마침 사극이 됐다. 아마 현대극이라도 했을 거다. 나이 들어서 사극에 출연하니 좋은 것 같다. 때마침 흑백 배경이 눈에 익고 딱 들어맞는다. 막상 촬영할 때는 시간이 흐를수록 흑백이라는 사실을 못느끼고 찍었다. 우리 영화는 흑백이 주는 맛이 있지 않나. 컬러로 찍고 싶은 생각은 들더라. 총천연색의 요즘 같은 컬러 말고 그 시대에 맞는 컬러 색감이 있을 것 같았다.

- 창대 역에 변요한을 직접 추천했다던데.

▲ 변요한과는 그리 친분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감시자들'에 같이 출연했을 때 눈빛이 참 좋았다. 그 ㄸㅒ 특별히 호흡을 맞추지는 않았는데 감독님이 창대를 찾으시는데 저도 모르게 변요한 씨 생각이 났다. 낯가림도 심하고 좋고 싫은게 분명하고 저와 다른 듯 같은 점도 있는 것 같은 친구다. 촬영하면서도 '저 아이가 창대구나' 싶었다.

-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실존 인물 정약전을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 정약전은 정약용에 비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극 중 내용만 봐도 약전은 약용보다 위험한 인물이라며 유배지를 바꾸지 않나. 그 시대에서 볼 때 약전은 사상과 생각이 위험한 인물이었을 거다. 정약용은 수많은 책들을 쓰면서 성리학 안에서 임금의 품 안에서 좋은 관료가 되어 백성을 위해야 한다고 썼다면, 약전은 '자산어보' 같은 책을 쓸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홍어 장수의 표류기를 다룬 '표해시말'을 굳이 기록에 남겨서 썼다. 실제 있었던 사실을 쓰고, 자신의 사상을 담지 않아도 되는 책을 냈다. 양반도 상놈도 필요없고 거기에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생각 가질 수 잇다는게 그 시대에는 위험했겠지만 그 말을 뱉을 수 있다는게 참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든다. 약전이 자신의 사상을 책으로 썼다면 아마 동생인 약용을 비롯해 주위 인물 모두가 위험하지 않았을까. 극 도중 자신의 의지를 이야기할 때 눈빛이나 이런 것들을강하게 하다가도 또 민초들을 대할 때는 매우 편안한 인물이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못남기는 한계가 있었을 거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직접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물에 대해 명료한 내용을 다룬 내용을 쓰지 않았을까.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도 수평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졌기에 신분의 차이를 떠나 흑산도 주민들과도 잘 섞이고 지냈을 거다.

- 첫 사극이기에 외형적 표현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 같다.

▲ 이준익 감독님이 그리는 약전과 다른 모습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있었다. 처음 수염을 붙이고 갓을 쓰고 도포를 입었을 때 양반 같지 않고 상놈 같으면 낭패 아니겠나.(웃음) 이 감독님은 배우들에게 장점을 과대 포장해서 말씀하시는 경향이 있는데 저에게 연기에 대한 큰 용기와 자신감을 주셨다. 평소 제 지론이 연기는 자신감이라는 생각인데 감독님이 자신감을 북돋워 주셨다.

- 실제 흑산도는 촬영 자체가 어려워서 전라도의 도초도와 비금도에서 촬영을 했다고 들었다. 인상적인 섬에서의 촬영 에피소드는.

▲ 한옥 펜션에서 머물렀는데 두 번의 큰 태풍을 맞았다. 집이 다 흔들릴 정도더라. 황토로 된 방바닥이 다 깨져서 아수라장이 됐다. 온통 정전이 되고 섬이어서 한전에서 복구를 당일에 못들어오더라. 다들 걱정어린 얼굴로 있다가 그 와중에 이정은씨가 라면을 끓여줘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섬의 맑은 하늘과 수많은 별들은 선물이었고, 아 영화에도 나오지만 평소 제가 삭힌 홍어를 못먹는데 바로 잡은 홍어를 먹어 본 경험도 좋았다. 삭히지 않은 바로 잡은 홍어를 처음 먹어봤는데 정말 입 안에서 살살 녹듯 맛있더라.

- 극 중 이정은이 연기한 가거댁과의 로맨스는 특별한 멜로 라인이 없는 듯 한데도 큰 재미를 주는 장면으로 탄생했다.

▲ 정은 씨는 정말 최고의 로맨스 대상이었다. 어떤 대화를 나누며 그 장면을 찍은 건 아니고 감독님이 어떤 큰 블락킹만 그어 주셨고 우리는 장난 식으로 접근했는데 상대 배우가 편하니(설경구와 이정은은 한양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지간으로 학교 때부터 연극에서 호흡을 이룬 사이다) 편함에서 오는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더라. 별로 안친하거나 쑥스러워 하거나 했으면 그런 장면이 안나왔을 거다. (알콩달콩한) 장면을 더 찍기도 했는데 감독님이 시간의 압박으로 줄이신 것 같다. 조금 아쉽다.(웃음)

- 창대 역 변요한은 워낙 연기 잘 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자산어보'에서 설경구를 상대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것이 느껴진다.

▲ 후배 배우들과 연기할 때 '내가 선배다'하고 대하지는 않는다. 만나면 무조건 형으로 부르라 한다. '불한당'의 임시완도 처음엔 불편해 하다가 지금도 '형'하고 부른다. 서로 그렇게 대해야 간극 없이 가까워 진다. 선배로서 저도 요한에게 가까이 가려 했고 변요한 또한 그랬다. 서로 동료로서 친구로서 지냈다. 극 중 창대의 낚시하는 모습이 꽤 강렬하지 않나. 돗돔을 잡아서 100kg에 달하는 돗돔을 등에 지고 오는 모습을 변요한이 우직하게 잘 표현했다. 욕망도 있고 출세에 대한 지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한 눈을 가진 인물이다. 자신의 처지를 딛고 일어서서 양반이 되지만 또 과감히 버리고 돌아올 수 있는 용기도 지녔다. 당시 양반들이 민초를 짓밟고 허위허식해야만 하는 자리였는데 과감히 되돌아 올 수 있는 창대는 얼마나 멋진가. 엔딩에서 창대가 스승 정약전의 유언 같은 편지를 읽고 아내가 '흑산이네'라고 말하자 '흑산이 아니고 자산이여'라고 말하는 대사가 찡하게 다가왔다.

- '더 이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게 없겠지'라는 의문을 매번 여지 없이 깨뜨린다. 사극 도전에 이어 차기작은 김용화 감독의 우주SF장르인 '더 문'이다. 새 장르에서 새 인물을 매번 창조해내는 비결은 뭔가.

▲ 정약전처럼 호기심이 아닐까. 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한 호기심, 그게 저를 앞으로 이끌어준다. 호기심이 저를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중복된 이미지는 가급적 피하려고 해왔다.

- 줄넘기로 자기 관리를 한다는 내용이 꽤 널리 알려졌다.

▲ 매일 2시간 정도씩 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려던 건 아닌데 영화 '공공의 적' 1편 때 90kg까지 찐 상태였는데 '오아시스'가 차기작이었다. 종두의 시나리오상 설명이 앙상한 갈비뼈를 가진 인물이었는데 그 지문 한 줄 때문에 살을 ㅃㅒ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때마침 그 때 한 겨울이어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별로 없었다. 마음이 급하니 숙소에서 새벽마다 줄넘기를 했는데 그렇게 매일 하다보니 지금까지 왔다. 그 ㄸㅒ는 지금처럼 많이 하지는 않았고 '살인자의 기억법'때부터 확 늘렸다. 매일 저 스스로와의 약속이다. 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편해진다.

- 류승룡, 정진영, 최원영 등 카메오들이 쟁쟁했다. 캐스팅 후기가 궁금한데.

▲ 감독님의 처음 계획은 잘 안 알려진 배우들을 쓰신다는 거였따. 작은 제작비의 영화이기에 부담도 있었다. 그런데 저는 '다른 의견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정약전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인물이 아니고 교과서에 한두 줄 나오는 인물인데 친숙한 배우가 나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이 들더라. 감독님 입장에서는 섬 촬영을 하러 하루, 이틀 와야 하는데 그 바쁜 사람들을 부르고 개런티도 못주는 것이 미안하신 것 같더라. '나는 미안해서 못해'라고 하시더라. 제가 '일단 시나리오를 배우들에게 줘봐라'고 말씀드렸고 정말 다들 이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답이 돌아왔다. 그 중에서도 정약용을 연기한 류승룡씨는 그야말로 창대나 가거댁 만큼이나 중요한 캐릭터였따. 정말 친숙한 인물이 나와줬으면 했는데 때 마침 류승룡씨가 '극한직업'으로 대박이 났을 때였다. 감독님께 '승룡에게 책 한 번 줘보세요' 권했고 감독님이 '한대'라고 바로 말씀하시더라. 정말 류 배우가 화룡점정이었다.

- 이준익 감독과 '소원'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이다. 이 감독님 현장만의 특징은 뭔가.

▲ 이준익 감독님이야 말씀을 너무 잘 하시고 장점은 방금 말씀하신 걸 금방 까먹는 다는 점이다.(웃음) 어떤 상황을 딱 맞는 대화로 풀어내신다. 항상 변하지 않고 똑같으신데 모든 배우를 똑같이 대하신다. 단점은 묻어두고 장점만 추켜 세워주시고, 또 모든 스태프 한 명에 다 관심이 있다. 소년 같지만 단호할 때는 단호하시다. 일할 때는 정색을 하시지. 현장이 항상 즐겁고 현장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번에 류승룡은 다른 촬영을 마치고 잠도 못자고 이동 중 쪽잠을 자면서 우리 현장에 왔다. 그러면서 '이준익 감독님 현장은 참 행복하다'고 말했고, 최원영 배우 또한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찍으며 '자산어보' 현장이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더라. 제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었고 나중에 최원영 배우와 통화하며 확인도 했다. 이 모습이 이준익 감독 현장의 특징이다.

- '자산어보'가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로 남기를 바라나.

▲ '자산어보'는 다들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은 소재와 주제에서 출발했지만 큰 울림과 여운을 준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다. 쉽고 즐거운 영화이고 희망이 있는 영화다. 저 스스로에게는 촬영 현장이 지금도 생각난다. 현장과 숙소와 동네의 골목들까지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관객들께도 뇌리에 뚜렷하게 남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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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21/04/18 17: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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