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넷플릭스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어느 날 갑자기 소중한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있다. 범죄 조직의 에이스 태구(엄태구)다. 무자비한 복수 후 상대 조직의 타깃이 된 태구는 제주의 은신처에 잠시 몸을 숨긴다. 태구가 그곳에서 재연(전여빈)과 만나 숨을 고르는 사이, 조직에선 그가 벌인 일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일어난다. 사실 태구가 복수를 시작한 순간부터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태구와 재연은 각자 꿈꾸던 낙원으로 갈 수 있을까.

'낙원의 밤'은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영화로 제7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다. 앞서 '신세계'(2012), '마녀'(2018)로 감각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박훈정 감독이 이번엔 삶의 낭떠러지 끝에 선 두 남녀의 격류를 누아르에 담았다.

먼저 '낙원의 밤'은 비주얼 면에서 탁월한 영화다. 적당히 음울하면서도 낭만적인 화면의 빛깔이 '낙원의 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처절한 상황과 대비되는 제주도의 파란 하늘, 탁 트인 풍광은 도리어 인물들에게 어두운 색채를 덧입혀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스타일리시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스토리도 감각적이다. 비극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누아르로서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여타 장르물과는 조금 다른 지점을 파고든다. 다짜고짜 폭력적인 장면으로 강하게 밀어붙이거나 조직의 암투만 그리기보다 중심인물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인물들은 더 섬세하고 위태롭게 느껴진다. 카메라는 태구의 시선, 재연의 시선, 또 마 이사(차승원)의 시선을 번갈아가며 이들의 운명을 바라보게 한다. 눈에 보이는 관계를 뛰어넘는 감성적인 면모는 이 영화의 매력이다.

캐릭터들의 감정 농도도 짙은 편이다. 이들을 연기한 배우 엄태구와 전여빈은 탄탄한 연기로 훌륭한 호흡을 보여준다. '밀정', '택시운전사' 등에서 시선을 압도했던 엄태구는 건조한 눈빛 뒤 인간적인 면모를 품은 태구 역으로 주연배우로서의 무게감을 자랑한다. 과묵하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보여도 의외로 따뜻한 태구의 성격은 엄태구에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이질감이 없다.

특히 돋보이는 건 배우 전여빈이다. 전여빈이 연기한 재연은 매사 냉소적이고 삶에 미련조차 없어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 누구보다 주체적으로 움직이면서 누아르 속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이야기의 핵심을 뒤흔든다. 전여빈은 시원시원한 총기액션부터 재연의 복잡한 감정선을 눈빛에 담아내며 장르에 충분히 스며들었다. 전작 '죄 많은 소녀'에 이어 다시 한번 크게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태구를 추격하는 북성파의 2인자 마 이사를 연기한 배우 차승원 역시 독특하고 묘한 카리스마로 쉽게 잊기 어려운 인상을 남긴다.

'낙원의 밤'은 4월 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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