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서 따뜻하고 강한 모니카 열연

보편적인 메시지 덕에 해외서도 호평 받아

삶의 전환점 된 '미나리' 통해 용기 얻기도

배우 한예리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판씨네마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해외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며 2021년 영화계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미나리’(감독 정이삭)가 3월 3일 개봉했다. 영화 속에서 따뜻하고 강인한 모니카를 연기한 배우 한예리(37)는 “누구나 공감할 뿌리에 관한 이야기”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은 영화다. 앞서 ‘문유랑가보’(2007)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후보에 올라 영화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정이삭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여기에 ‘문라이트’(2016), ‘노예 12년’(2013) 등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을 탄생시킨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 플랜 B와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등 수차례 오스카 레이스를 성공적으로 이끈 북미 배급사 A24가 힘을 보탰다. 한예리는 희망을 지켜내는 엄마 모니카를 연기했다.

“처음 번역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감독님의 유년시절 추억과 우리 부모님의 부모님, 혹은 더 이전 세대의 모습이 담긴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안에서 모니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민하다보니 80년대 저희 엄마나 이모들의 얼굴이 제 안에 많이 남아있더라고요. 그 기억을 최대한 활용해서 모니카에게 녹여냈어요.”

모니카는 농장에 모든 것을 바친 제이콥(스티븐 연)의 아내이자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엄마다. 고달픈 시대, 척박한 환경 속에서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고 가정을 일군 여인들의 애환을 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모니카는 한국 정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미국에서도 조금 폐쇄적으로 생활하죠. 그래서 감독님께서 한국에서 나고 자란 배우가 연기하길 원하셨대요. 당시 시대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70~80년대 자료를 막 찾아보진 않았어요. 다만 감독님 가족들의 사진을 보면서 의상이나 분위기를 참고했어요. 말투는 문어체랄까, 제가 기억하는 부모님의 말투를 썼어요. 지금은 아내가 남편을 ‘자기야’라고도 부르지만 그땐 아이 이름 따서 ‘누구 아빠’ 이런 식으로 불렀던 것 같아서요. 감독님께도 ‘한국인 부부는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는 식으로 디테일한 상황을 만들어나갔죠.”

영화에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정이삭 감독은 1978년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나 영화의 배경인 미국 남부 아칸소 시골 마을의 작은 농장에서 자랐다. 이민 1세대로 가족을 위해 농장을 시작한 아버지와 직장에 다닌 어머니를 대신해 한국에서 오신 할머니는 정 감독에게 특별한 추억을 남겼다. 그때 할머니가 가져온 미나리 씨앗은 아칸소 땅에 뿌리를 내렸고, 유독 다른 채소보다 잘 자라는 미나리의 강렬한 기억은 정 감독이 이번 영화를 만든 바탕이 됐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렸어요. 자신들의 꿈을 다 이루기도 전에요. 부부가 자아를 찾는 과정과 아이들의 성장과정이 부딪히면서 부모와 아이가 성장통을 같이 겪게 된 것이죠. 부부도 아직 어린데 많은 걸 책임져야 하니까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 시대의 어머니, 아버지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어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기르려고 노력하는 두 사람이 대단해보였고 그런 희생 덕분에 아이들은 틀림없이 잘 자라겠구나 싶기도 했어요.”

인종과 세대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메시지 덕분일까. ‘미나리’는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기점으로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까지 휩쓸며 전 세계 75관왕을 기록해 오스카 유력 후보작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예리 역시 버라이어티(Variety)에서 오스카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 BEST5에 선정되면서 오스카 입성 가능성을 높였고, 직접 부른 OST ‘레인 송’(RAIN SONG)은 제93회 오스카 예비 후보의 주제가상 부분에 1차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미국은 많은 이민자들의 땅이에요. 그들이 미나리처럼 뿌리를 내렸고 다음 세대에게 단단한 삶의 자세를 물려줬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것 같아요. 꼭 이민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릴 보편적인 경험들이 담겼고요, 영화 속에선 어느 누구도 나쁘게 보이지 않아요. 각자 살아가는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이죠. 실제로 외신 기자님들도 ‘우리 할머니 같다’, ‘내 어린 시절 같았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하셨어요. 결국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해외에서도 통했다고 생각해요.”

‘미나리’의 흥행에 힘입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로 떠오른 만큼 한예리의 본격적인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전망도 나온다. 앞서 ‘그림자’(2007)로 데뷔한 뒤 ‘코리아’(2012), ‘해무’(2014), ‘최악의 하루’(2016), ‘더 테이블’(2016), ‘챔피언’(2018) 등에서 독보적인 매력을 선보였던 만큼 더 큰 무대에서 빛날 그의 활약에 기대가 쏠린다. 한예리는 “그런 욕심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서 쑥스럽다”며 웃어보였다.

“처음부터 할리우드 진출을 목표로 ‘이 영화를 발판 삼아야지!’ 하는 계획은 하나도 없었어요. 물론 그게 나쁜 게 아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즐거워서 찍은 건데 이렇게 엄청난 일들이 벌어져서 아직도 얼떨떨해요. 개인적으로 ‘미나리’가 전환점이 될 것 같긴 해요. 어디서도 받아보지 못한 타인의 애정을 받았고 용기를 얻었거든요.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미나리’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한테 보답하고 싶어서라도 앞으로 더 잘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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