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이션 기타 열풍에 일조한 글렌 캠벨. [사진=오베이션 공식 웹사이트]
▶ 美 유명 항공 엔지니어 설계…55년 역사
▶ 새로운 형태의 어쿠스틱 기타
▶ 항공/우주공학 응용, 혁신적 제조기술 선봬
▶ 존 맥러플린, 래리 코리엘, 알 디 메올라
▶ 잉베이 맘스틴, 알렉스 라이프슨, 폴 사이먼
▶ 글렌 캠벨, 신디 로퍼까지 애용
▶ 펜더 기타에 매각됐다 DW가 인수
▶ 이번엔 ‘GEWA 뮤직’에 매각
▶ 몇 년에 한 번씩 매각/인수 반복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197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오베이션 기타(Ovation Guitars)의 인기는 대단했다. 유명 기타리스트는 물론 대중적인 가수에 이르기까지 오베이션을 사용하지 않은 뮤지션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존 맥러플린, 래리 코리엘, 알 디 메올라와 같은 재즈기타 마스터들은 물론 지미 페이지와 잉베이 맘스틴, 스티브 모즈, 알렉스 라이프슨(러쉬), 스티브 루카서(토토) 등등 쟁쟁한 기타리스트들도 애용했다. 뿐만 아니라 글렌 캠벨, 닐 다이아몬드, 폴 사이먼, 케니 로긴스, 낸시 윌슨(하트), 멜리사 에더릿지, 밥 시거, 신디 로퍼 등등 다수 팝스타에 이르기까지 전 장르의 음악인이 사용하며 단순히 악기를 떠나 한 시대의 유행처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오베이션기타가 음악계에서 주목받은 건 70~80년대에 글렌 캠벨을 비롯한 톱스타를 아티스트로 내세우며 적극적인 홍보마케팅에도 그 이유가 있었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오베이션이 지닌 다양한 특장점 때문이다.

오베이션 기타는 1965년 항공우주 엔지니어이자 발명가, 사업가, 독지가(자선가), 그리고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인 찰스 카만(Charles Kaman, 1919~2011)에 의해 출발했다. 찰스 카만은 헬리콥터에서 항공 엔지니어링 전반에 이르는 미국내 정상급 전문가였다. 그가 1945년에 설립한 군수/항공제조기업 ‘카만 에어크래프트’는 51년 가스 터빈으로 구동되는 세계 최초의 헬리콥터를 개발했다. 또한 미국 공군과 해군은 물론 유럽 및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각지의 해·공군부대에 항공 기기들을 납품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사진=오베이션 공식 웹사이트
수조 원대의 거대 기업을 이끄는 와중에도 그는 박애주의자로서 각종 자선 활동에 앞장섰으며 부인과 함께 ‘Fidelco’ 안내견 재단을 설립해 독일 셰퍼드 품종을 개발하기도 했다.

회사 운영과 연구/실험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동안에도 기타 수집과 연주를 취미로 하던 그는 좀 더 가볍고 착용감 좋은, 그러면서도 사운드 전반은 더욱 깔끔하고 섬세하게 빠지는 기타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렇게 해서 카만은 헬리콥터 제작 기술 전반을 기타 제작에 응용했는데 그것이 오베이션 기타다.

찰스 카만은 기존의 기타보다 무게를 대폭 줄이고 기타의 바디(몸체)는 매우 얇게 설계했다. 그는 악기의 뒷판과 측면 부위를 헬리콥터 제작해 사용되는 합성수지로 대체했다. 포물선형 합성수지 보울이 피드백을 줄여 더욱 증폭을 크게 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간 기타사에서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방식이었다.

어쿠스틱 기타의 형태를 취했지만 일렉트릭 기타 넥(네크)의 느낌을 살리고자 매우 얇은 넥을 개발하기도 했다. 알루미늄 채널의 강철 막대로 강화된 마호가니와 메이플 레이어로 편안한 그립감과 강도를 더했다. 또한 헬리콥터에 사용되는 재료를 사운드보드에 사용하며 두께를 더욱 얇게 한 대신 내구성/강도는 더욱 강화시켰다.

오베이션 기타의 프리앰프, 온보드 이퀄라이저 및 피에조 픽업 등은 라이브 공연장에서 특히 강력한 성능을 발휘했다. 오베이션의 다양한 시도는 기타 제작사에 한 획을 그은 새 역사로 많은 음악인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기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유명 가수는 물론 세션 기타/싱어송라이터 등에 이르기까지 오베이션의 인기는 대단했다. 90년대 당시 낙원상가에서 이러한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고 그에 따른 에피소드도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91년 마이클 솅커(쉥커)가 프로모션 투어 차 로빈 맥컬리와 함께 한국을 처음 찾았을 때의 일이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그는 종로 ‘신나라 라이브홀’에서의 공연을 위해 오베이션 기타를 구해달라고 주최 측인 EMI에 의뢰했다. EMI는 다시 내게 오베이션을 구할 수 없겠냐고 부탁해 결국 낙원상가에서 오베이션 고급 기종을 취급하던 수아미악기를 찾았다. 마이클 솅커라는 세계 정상의 기타리스트의 레벨에 맞는 상위 모델을 찾았고 마이클에게 건네줬다. 중고가 아닌 새 상품을 빌려줄 만큼 수아미 악기는 마이클 셍커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런데 리허설을 하던 쉥커는 오베이션 소리가 너무 좋다며 자기에게 팔라고 했다. 지금 수중에 돈이 이것밖에 없다며 주최 측 담당자에게 요구할 정도였다. 마이클 솅커에게 빌려준 오베이션은 당시 100만 원대의 고급 기종이었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금액은 10만 원 이하였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액수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그 금액 전후로 기억한다. 솅커가 오베이션 가격대를 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너무 갖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른다. 나는 리허설 와중에도 쉥커와 수아미를 여러 차례 오가며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결국 공연이 끝나고 오베이션 기타를 수아미 악기에 반납하는 걸로 상황은 종료됐다. 어쨌든 마이클 솅커는 이 오베이션 기타로 ‘Nightmare’를 비롯한 여러 곡을 감동적으로 연주하며 신나라 라이브홀을 찾은 한국의 팬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시간을 전해줬다. 손무현 등 당시 국내 정상급 기타리스트들도 마이클 솅커의 첫 콘서트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베이션 관련 에피소드는 많지만 추후 다시 소개하기로 한다.

그러나 음악/기타 트렌드가 바뀌며 90년대 중후반 이후 오베이션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국내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오베이션은 2008년 펜더 기타(Fender Musical Instruments Corporation)에 매각됐다. 세계적인 기타 명가 펜더에 인수된 만큼 오베이션의 새로운 중흥을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펜더는 겨우 몇 년만 오베이션을 운영하다가 처분해 버린다.

펜더로부터 오베이션을 인수한 회사는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세계적인 드럼 제조사 DW(Drum Workshop Inc)였다. DW는 2015년 펜더로부터 오베이션 기타를 인수해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악기산업계에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DW 또한 겨우 5년간 오베이션 기타를 경영하다가 2020년 12월 ‘GEWA 뮤직’에 매각했다. GEWA 뮤직은 오랫동안 DW와 디스트리뷰션 파트너로 함께 일해 왔다. GEWA는 이제 오베이션의 소유주로서 미국 및 유럽 전역 등 세계 전역에 오베이션 배포 권한을 갖게 됐다. 또한 오베이션 애호가들이 몰려 있는 유럽 시장을 겨냥한 스페셜 버전 제작에 돌입했다.

GEWA 뮤직 CEO 겸 사장 한스 피터 메스너(Hans-Peter Messner)는 보도자료(월드 프레스)를 통해 “기타 분야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전문성을 사용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념을 70~80년대의 가장 전설적인 기타 브랜드 중 하나와 연결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위와같이 펜더, DW, GEWA 뮤직 등 여러 차례 손을 타며 소유주가 바뀌는 ‘기구한’ 운명 속에서도 오베이션 기타가 브랜드로서 계속 버틸 수 있는 건 앞에서 언급한 기타로서의 각종 특장점과, 적지만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추종 층이 있기 때문이다.

펜더도 그랬고 DW도 그랬듯이 GEWA 또한 초반부터 의욕이 대단하다. 문제는 이러한 의욕과 관심이 얼마나 가느냐다. 기타 제조 역사에서 혁신을 가져온 오베이션이 이제 더 이상 ‘손타지 않고’ 안정적으로 오래오래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Long live the O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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