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열린 제88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생존과 복수의 드라마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 이하 레버넌트)로 5번째 도전 끝에 마침내 남우주연상을 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41)와의 인터뷰가 미국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잔 수염을 기른 준수하게 생긴 디카프리오는 농담을 섞어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지적이요 진지한 면을 잃지 않았는데 극히 개인적인 여자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노코멘트”라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디카프리오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와의 오랜 인연을 인식해서인지 곧 불쾌한 표정을 지우고 홍조를 띠면서 물음에 자상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영화에서 죽다 살아나다시피 하면서 말로 못할 고생을 하는데 그 경험에 대해 말해 달라.

“난 살면서 여러 번 극단적인 경우에 빠져 봤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혹독한 경험을 하진 못했다. 영화의 인물들인 모피사냥꾼들은 그 당시 혹한을 비롯한 온갖 악조건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난 그들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의지와 투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라면 과연 그런 조건 하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하고 물어도 봤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신에게 큰 영향을 준 영화들은 무엇인가.

“젊었을 때 본 영화 중에서 나를 변화시킨 것은 ‘택시 운전사’다. 난 주인공 트래비스 빅클의 고독과 정신상태에 완전히 휘말려 들었었다. 이 영화는 내게 있어 가장 위대한 독립영화 중의 하나다. ‘레버넌트’로 말하자면 유사한 서부영화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연상되나 이 실존적 영화는 그 어느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여태껏 경험할 수 없었던 독특한 여정이었다.”

-200년 전에 일어난 주인공의 생존투쟁이 오늘 날에도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가.

“영화의 핵심인 주인공의 생존투쟁과 함께 영화가 얘기하고자 한 또 다른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개인 영리를 위한 자연자원 착취다. 그 때 사람들이 모피를 수집하기 위해 야생동물들을 살해하고 원주민들을 살고 있는 땅에서 몰아낸 일은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나는 기후변화에 관한 기록영화를 만들면서 세계 도처를 다녔는데 요즘에도 소위 선진국 인간들은 기름과 광물 등을 채취하기 위해 자연을 파손하고 또 원주민들을 살고 있는 땅에서 몰아내고 있다. 한 가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레한드로(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원주민들을 묘사할 때 그들을 천편일률적으로 다룬 과거의 할리우드 영화들과는 달리 원주민들 간의 특성과 다양성과 다른 점 등을 가급적 충실히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위해 어떻게 예행연습을 했는가.

“대규모 서사극의 틀 안에 인간의 내밀한 얘기가 있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몇 달간 연습을 했다. 하루하루가 마치 연극을 위한 리허설과도 같았다. 내 생애 이런 영화 만들기는 처음으로 매일 같이 하루가 끝날 때쯤 1시간 반 가량 마치 마법처럼 태양이 빛을 발할 때 촬영을 해야 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스위스 시계처럼 정확해야 했다.”

-성공한 배우로서 하고 싶은 일을 이루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뭔가를 더 바란다는 것은 구역질 나는 일이다. 나는 지극히 운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를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이 기온 변화에 대한 각성을 해주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가 지구의 기온을 변화시키고 있는 행위는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자연과 신과 함께 하는 영혼의 여정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혹시 영화를 찍으면서 영적인 경험이라도 했는가.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자연 속에서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 영화 만든다는 일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너무 힘들어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기 위해선 영적인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알레한드로와 나의 실존적 여행이나 마찬가지다.”

-조지 클루니도 결혼 안 한다고 말했다가 결혼했는데 당신도 그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그런 문제에 대해 얘기를 했다간 터무니없게 과대 포장돼 보도가 되는 바람에 말을 하지 않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난 환경보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결코 함께 있을 수가 없다.”

-당신은 늘 “나는 행운아”다 라고 말하는데 영화 말고 개인적으로 어떻게 행운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나의 아버지가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무엇을 하든지 흥미 있는 인생을 살려고 시도할 것이며 또 네가 어떤 직업을 가지든지 간에 매일 아침에 일어나 바지를 입을 때 행복하다고 느껴야 한다고. 내가 100% 이를 이룬 것은 아니나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그리고 이런 말이 마치 커다란 환상처럼 들릴지 모르나 나는 배우로서나 개인적으로 매일 같이 하루가 끝날 때마다 내 주위에 훌륭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긴다.”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나의 어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더 가차 없이 솔직하다는 점에서 잘 익은 포도주라고 하겠다. 어머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솔직한데 독일계여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솔직하려면 용감해야 한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에누리 없이 솔직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난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얘기한 뒤에 그 말의 진의가 무엇이지를 여러 번 해명해야 할 경우가 있었다. 정말 멋있고 흥미진진하지만 때로는 어머니의 솔직함을 말려야 할 필요가 있다. 난 어머니가 내게 그렇게 가차 없이 솔직할 때면 그냥 웃어넘긴다. 우리 집 사람들은 다 솔직한데 그것은 우리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당신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있기에 편안하게 느끼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여행을 많이 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의 하나가 아마존 정글이다. 문명에서 떨어진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의 정수가 그대로 드러난 곳이다. 마치 내가 어릴 때 꿈꾸던 주라기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경험을 했다. 다른 하나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다. 난 그렇게 마법적인 곳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아름다운 사원들을 구경하면서 며칠이고 모든 것을 잊고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영화가 너무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난 그동안 여러 편의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영화에 나와 그것에 무뎌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의 폭력은 그 시대에 정확하게 맞춰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폭력과 함께 아름다움도 잘 다루고 있다. 따라서 나는 폭력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생각하지 않고 사실대로 충실히 연기하려고 했다. 이 영화는 자연의 야만성과 아름다움을 잘 융화시킨 작품이다. 가장 어려웠던 일은 혹한으로 너무 추워 때론 카메라가 얼어붙어 작동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였으나 난 내가 어떤 영화에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고통을 견뎌냈다.”

-영화에서 당신은 거의 말을 안 하다시피 하는데 그 것에 대해 말해 달라.

“그 점이 내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난 알레한드로에게 대사를 더 빼 달라고 졸랐다. 주인공의 인물과 성격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대사가 가급적 적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인공의 느낌을 그의 눈에서 읽을 수 있는데 과거 말을 많이 하는 영화에 여러 편 나온 나로선 매우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말 대신 주인공의 본능에 의존하려고 했다. 그래서 내 연기는 즉흥적인 것이 많다.” 박흥진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겸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회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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