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 위원이 영화 '크리드'서 다시 록키 역을 연기한 실베스터 스탤론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근 열린 제7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권투 드라마 ‘크리드’(Creed)로 조연상을 탄 실베스터 스탤론(69)과의 인터뷰가 지난 해 11월 영화의 무대인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다. ‘록키’ 스탤론은 나이는 먹었지만 어딘가 소년과도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했는데 떡 벌어진 체구답지 않게 질문에 얼굴을 붉혀가면서 위트와 유머를 섞어 굵은 저음으로 대답했다.

록키가 어느덧 칠순이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는데 스탤론은 매우 겸손하고 현명하게 질문에 답했다. 때로 마치 권투를 하듯이 두 손으로 제스처를 써 록키가 권투하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크리드는 ‘록키’ 시리즈 1편에서 록키와 싸운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의 성. 이 영화에서 록키는 아폴로의 아들 아도니스의 코치로 나온다.

-록키 역을 다시 맡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시리즈 제5편을 만들고 나서 실망을 해 그 실망을 극복하기 위해 딱 한 번만 더 만들겠다는 것을 내 삶의 모토로 여겨왔다. 그러나 제5편이 큰 성공을 못한 데다가 내 나이 그 때 육순이어서 제작비 조달이 쉽지가 않았다. 다행히 제6편이 만들어졌고 그래서 난 이제 더 이상 ‘록키’에 집착하지 말고 이것으로 끝내자고 마음을 먹었다. 임무를 다 했으니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클랜드로부터 시리즈 제4편이 나왔을 때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이 친구(젊은 흑인 감독 라이언 쿠글러)가 날 찾아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어두워 난 못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쿠글러가 다른 좋은 기회를 버리고 굳이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고집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내가 29세 때 ‘록키’를 만들려고 집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자꾸 망설이니까 내 아내가 나에게 비겁한 사람이라고 다그쳤다. 그때서야 난 이 영화가 록키에 관한 것이 아니라 크리드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난 크리드를 지원하는 역이란 점을 확신하고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다. 이 영화는 이 젊은이의 삶의 여정이다. 내 여정은 이미 끝난 지가 오래다. 그래서 난 쿠글러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코치 역을 얼마나 즐겼는가?

“그런 생각했다. 정신적으로는 글로브를 벗기가 힘들지만 육체는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크리드 역의 마이클 B. 조단이 맹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고 흥분이 되더라. 그는 내가 ‘록키’를 위해 준비했을 때보다 더 열심히 훈련을 했다. 연기도 진짜 경기처럼 잘 했는데 체육관에서 있은 연습게임 때 너무 열중해 진짜로 치고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단의 스파링 파트너는 진짜 권투선수로 조단이 너무 강하게 나오자 체면 구기기가 싫어서 조단에게 진짜로 대들었다. 그 장면은 그러니까 진짜 게임이다. 그런데 코치란 별로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그 역을 맡기로 한 이상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러니까 난 시리즈 첫 편에서 내 코치였던 버제스 머레데스 역을 하는 셈으로 ‘야 이것 괜찮네’라고 생각했다. 내가 크리드의 보호자요 아버지 역이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고 그래서 가능하면 사실적으로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록키의 좌우명은 한 번에 한 걸음, 한 펀치인데 당신의 좌우명은 무엇인가. “무엇이든지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말하기는 쉽지만 이 나이에 연기하고 각본 쓰고 감독한다는 것은 사실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난 이 영화를 만들기를 2년이나 미뤘다. 그러다가 ‘왜 두려워하는가’라고 생각하니 힘이 생기더라.”

-당신은 사실은 각본가요 감독이며 또 화가다. 그림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난 어려서 학교 다닐 때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 때만 해도 사람들은 난독증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가 생각나면 그에 대해 그림부터 그리고 이어 글을 썼다. ‘록키’도 그림부터 그리고 각본을 썼다. 그런데 어릴 때 시작한 그림을 평생 그릴 줄은 몰랐다. ‘두려워 말라’는 좌우명은 나의 이런 배경과도 관계가 있다..”

-지금 와서 과거를 돌아볼 때 무엇을 달리 해보고 싶은가.

“불행하게도 우린 지혜와 더불어 태어나질 않는다. 지혜란 살면서 실수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하라면 개인적 관계의 문제에 새롭게 접근하고 싶다. 여자와의 관계가 역동적이요 신나는 관계라고 생각한 것이 전쟁이 된 경험이 있다. ‘람보’는 거의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그 시리즈의 첫 편인 ‘퍼스트 블러드’는 그 때까지 액션영화엔 없었던 주인공이 대사를 시각적으로 하는 형식을 취했다. 배우로서 후회가 있다면 액션영화 말고 다른 분야에 좀 더 과감히 도전하지 못한 것이다.”

-사랑으로 인해 구원 받아본 적이 있는가. 당신의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사랑이란 당신을 천국으로 데려가기도 하나 때론 지옥으로도 데려간다. 반드시 사람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사랑한다는 것은 삶을 값어치 있게 해 주는 필요한 요소다. 아이들과의 관계란 아주 복잡한 것이어서 쉽지가 않다. 난 아이들에 대해 지나치게 통제적이 아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라기를 바란다. 난 딸만 셋인데 그들과의 전투에선 결코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백기를 들었더니 아이들이 ‘아빠 사랑해’라고 반기더라. 우리 관계는 완벽하다. 그저 내가 아이들을 제대로 키웠다는 것만 바랄 뿐이다. 내가 이 영화에 애착을 갖는 것도 아도니스가 내 아들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는지를 보고파서 이 영화의 속편을 보고 싶다. 내가 아니라 감독이 그를 어디로 데려 갈지를 보고 싶다.”

-권투선수는 이기기 위해 싸우는데 승리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승리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록키’ 첫 편에선 록키가 아무리 준비를 했어도 결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상대가 너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승리란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너무 지나친 목표를 세우다간 실패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내가 위대한 셰익스피어 배우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다. 결코 되지 않을 일을 왜 하려고 드는가. 너의 가능성 안에 있는 목표를 설립해 성취하고 자기보다 월등히 우수한 사람의 능력을 탐내지 않는 것이 내겐 승리다. 따라서 승리란 자신의 가능성에 따라 목표를 조절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록키’의 배경인 필라델피아에 돌아온 소감은 어떤가.

“계단을 오를 때마다 감정적이 되곤 한다. 내가 처음 그 계단을 올랐을 땐 12세인가 13세 때인데 그 때만 해도 그 주위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나 다시 그 곳에 돌아오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 계단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난 이 말을 이 영화에서도 했는데 왜냐하면 나의 모든 것이 그 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계단 위에서 시내를 바라다볼 때면 내가 필라델피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마법의 나라에 있는 기분이다. 거기에 서면 내 성공과 실패가 다 생각나면서 날 명상케 만든다. 내가 이 곳에서 좋아하는 다른 장소는 황폐한 거리에 있는 록키의 집이다. 그 곳을 찾아갈 때면 이 집이 나의 모든 것을 바꿔 놓은 곳이란 생각과 함께 거기서 영화를 찍은 날이 바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두 곳은 다 날 격한 감정에 싸이게 만드는 곳이다.” 박흥진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겸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회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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