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5년'(45 Years)의 주인공인 영국의 노장배우 샬롯 램플링(69)과의 인터뷰가 최근 미국 웨스트할리웃의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램플링은 결혼생활 45년 만에 자신이 남편 제프(톰 코트니)의 죽은 옛 연인 카티아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 케이트 역을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 지난 해 베를린 영화제서 주연여우상을 수상했다. 우아하게 세월을 받아들인 귀부인 티가 나는 램플링은 단정히 앉아 가끔 유머를 구사하면서 물음에 차분히 대답을 했는데 삶의 예지가 가득한 여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는 결혼 속의 비밀에 관한 얘기인데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제프의 옛 여자는 비밀은 아니다. 그저 새로 만난 케이트에게 제프가 자신의 옛 여자에 대해 상세한 얘기를 안 했을 따름이다. 그러다 시간이 갔을 뿐이다. 케이트도 제프가 여자가 있었고 그녀가 죽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여자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둘 사이의 관계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뒤늦게 그 여자의 사체가 냉동상태로 발견됐다는 편지가 날아들면서 과거의 상처가 다시 도진 것이다."

-그러나 케이트는 뒤늦게 남편이 평생을 옛 여자에 대한 정열을 간직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렇게 간단히 얘기할 영화가 아니다. 케이트는 만약 카티아가 살았더라면 남편이 그녀와 결혼했을 것인가 또 카티아와 자기 둘 중에 누가 더 남편을 사랑했을까와 같은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의문에 시달리고 있다. 이 영화는 이렇게 이성적이지 않은 것에 바탕을 둔 얘기여서 더 사무친다."

-영화의 어떤 점이 좋아 출연했는가.

"인물들의 내적 언어의 강렬성과 배우로서 정의 내릴 수 없는 마음의 상태를 연기해 보고 싶었다. 아주 연약한 얘기를 연기로 표현해 관객을 사로잡는 도전에 응하고 싶었다."

- 유럽 여배우와 할리우드 여배우의 차이가 무엇인가.

"유럽은 늘 형태보다 내용을 더 중요시해 왔다고 여긴다. 문학서적 속에 깊이 잠기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떤 예쁜 형태를 찾지 않고 책 내용의 깊이를 진실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점이 미국과 다른 것이다. 미국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변화는 성형수술로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난 늘 내 모양을 바꾸지 않고 인간으로서 영화를 통해 사람들을 나의 여정에 함께 동반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흥미 있겠는가 하고 생각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이 영화가 바로 그런 큰 도전이다."

-만약 영화 속 일이 당신에게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카티아는 제프의 큰 과거일 뿐으로 제프는 사실 케이트를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살고 싶어 한다. 영화는 케이트 개인의 여정이라고 하겠다. 왜 그녀가 그렇게 큰 혼란과 격동 속에 빠져 들게 되었는가를 묻는. 케이트는 결코 제프를 안 떠날 것이다. 영화는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실존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영화는 남편의 죽은 옛 여인의 얘기라기보다 삶의 위기에 관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다 겪는 것으로 이 영화가 본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까닭도 거기에 있다."

-당신은 멋있고 훌륭한 생애를 살았는데 돌이켜 봐 후회하는 일이라도 있는지.

"있지만 난 별로 과거를 돌아보질 않는다. 내가 과거에 한 일들은 그것이 내 최선이었기 때문에 난 결코 후회하질 않는다. 자신을 나무라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지 않은 일 중의 하나다. 이 건 내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난 내가 한 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국가로부터 작위를 받았는데 소감이 어떤가.

"의식은 치렀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왕은 못 만났다. 난 여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지정 일에 런던에 있을 수가 없어 나중에 내가 살고 있는 파리에서 주불 영국대사로부터 받았다. 작위를 받아 참 기쁘다."

-젊었을 때 본 것들 중 당신에게 가장 강한 영향을 준 영화는 무엇인가.

"배우로서는 캐서린 헵번의 영화들이다. 나도 그녀와 같은 혼과 질을 지녀 헵번이 나온 영화와 같은 것에 나오고 싶어도 이젠 더 이상 그런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그녀의 영화 중 기억에 뚜렷한 것은 '아프리카의 여왕'과 '필라델피아 이야기' 및 '베이비 키우기'다."

-남자와의 관계에서 배운 점은 무엇인가.

"이 영화처럼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누가 톰 코트니를 당신 상대로 골랐는가.

"나와 감독 앤드루 헤이다. 난 그를 전에 잘 몰랐지만 이 영화에서 함께 일하기를 학수고대 했었다. 그래서 그가 출연을 승락한 뒤에는 그가 날 사랑하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다."

-여성의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는가. "그것은 스스로가 개발해야 한다. 누구도 그것을 당신에게 줄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준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안에서 개발해 사용해야 한다. 여성의 성적인 힘은 대단히 강력한 내적 요소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취하는데 매우 유용한 것이다. 그러나 조심하지 않으면 그것에 당신이 휩쓸려 갈 수 있기 때문에 겸손하게 써야 한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 둘을 사랑은 할 수 있으나 오직 한 사람에게만 충실할 수가 있다. 그러나 충실하다는 것과 사랑은 다르다.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충실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이 영화에선 다른 영화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나이 먹은 사람들의 섹스신이 있는데 나이 먹은 배우로선 그런 연기를 하기가 거북한가.

"성적이란 것은 젊었을 때만 아름다운 것이다. 배우로서 섹스 신을 할 수는 있으나 내가 그런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난 나이 먹은 사람들을 사랑하긴 하나 어떤 것은 별로 보기가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 부엌에서 콧노래로 부른 플래터즈의 '스모크 겟츠 인 유어 아이즈'를 평소에도 좋아하는가.

"난 그 노래 사랑한다. 우리의 결혼 45주년 파티가 열리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 노래에 맞춰 나와 톰을 비롯해 모두가 춤을 추는데 영혼과 직접 연결되는 느낌을 경험했다."

-보통 때의 삶은 어떤가.

"남들과 마찬가지다. 배우라고 해서 남들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도 보통 사람들이다."

-당신이 폴 뉴먼과 공연한 '평결' 이후 모두들 당신이 할리우드의 수퍼스타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도 당신은 유럽으로 돌아갔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이 곳에선 매우 위협감을 느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돌아갔다. 매우 두려웠다. 여기가 내 세상이 아니어서 행복할 수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박흥진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겸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회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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