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팝뮤직을 넘나들며 노래 부르는 이탈리아의 시각장애인 크로스오버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56)와의 인터뷰가 최근 미 웨스트할리우드에 있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본부에서 있었다.

인터뷰는 보첼리가 최근 내놓을 영화음악 모음집 ‘시네마’(Cinema) 출반을 기념해 마련됐다. 음반에는 ‘마리아’(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라라의 노래’(닥터 지바고), ‘문 리버’(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모두 15곡이 수록됐다. 그는 이 음반을 위해 9월18일 할리웃의 돌비극장에서 노래를 불렀다.

잿빛이 섞인 머리와 큰 키에 색깔 있는 안경을 쓴 보첼리는 카리스마가 있었는데 유머와 위트를 섞어 약간 서툰 영어로 질문에 길고 자세하게 대답했다. 가끔 영어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은 통역의 힘을 빌렸다. 보첼리는 이탈리안답게 여자 얘기가 나오면 신이 나서 활기차게 대답했다.

-왜 당신은 제니퍼 로렌스와 셀린 디온 같은 팝가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가. “나는 음성을 사랑한다. 그것이 내 첫 번째 정열이다. 내가 가수가 된 것도 음악보다는 음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훌륭한 음성들과 무대를 함께 하는 것을 영광이요 기쁨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당신 같은 출중한 음성과 다른 가수들의 음성에 차이가 없다는 것인가. “차이는 음성의 질에 달려 있다. 음성의 질이 대단치 않은 가수들보다는 그것이 훌륭한 가수들과 노래를 부르는 것이 물론 더 낫다. 왜냐하면 그에 의해 내가 고무되기 때문이다.”

-크로스오버 가수로서 당신은 클래식 뮤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팝뮤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가. “난 크로스오버 가수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으로는 그들은 클래식과 팝뮤직 사이에 새 스타일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난 다르다. 나는 오페라를 부를 때는 오페라 언어로 최선을 다하고 팝을 부를 때는 내가 테너라는 것을 잊는다. 그렇지 않으면 우스꽝스런 노래가 나온다. 카루소와 질리와 델모나코 그리고 파바로티 등 많은 유명 가수들도 다 가요를 훌륭하게 불렀다. 그러니 왜 나라고 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팝을 불러 오페라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극장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효과도 있다.”

-영화음악은 어떻게 선정했으며 왜 할리우드에서 노래했는가. “LA가 영화와 영화음악의 본거지이기 때문이다. 선정은 영화음악의 걸작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로 했다. 나는 어렸을 때 시나트라가 부르는 ‘문 리버’와 ‘올드 맨 리버’ 그리고 마리오 란자가 부르는 ‘비 마이 러브’ 등을 자주 들었다. 이 노래들은 모두가 걸작이다.”

-목소리의 힘이란 어떤 것인가. “예술은 인간이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서로 대화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목소리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특별한 언어가 있다. 가수의 노래를 듣고 청중의 누군가가 눈물을 흘린다면 바로 그것이 목소리의 힘이다.”

-당신은 여러 나라 언어로 노래하는데 어떻게 다른 언어에 적응하는가. “듣는 귀가 좋으면 어렵지 않다. 각 언어는 각기 소리가 달라 좋고 또 아름답다. 영어는 매우 음악적이다. 그러나 그것의 문법은 질색이다.”

-여자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여자들이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그들이 갖춘 여성적인 면이다. 여자로서의 욕망과 기쁨을 말한다. 남자가 갖고 있는 것을 여자는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둘은 늘 이끌리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여자가 보다 여성적일 경우 더 좋아한다. 그 밖에도 음성과 피부 등 좋아할 점이 많다.”

-여성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주 어려운 질문인데 다음과 같은 일화로 답을 대신하겠다. ‘여자들에 관해 내가 이해한 모든 것’이라는 책을 쓴 천재가 있다. 300쪽 짜리인데 열어 보니 전부 백지라는 것이다. 기찬 아이디어다.”

-당신이 지금 가진 것 외에 더 갖고 싶은 것이 있는가. “특별히 기대하는 것이 없다. 이미 내 현실이 내 꿈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바란다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난 행운아로 매일 하늘에 감사한다.”

-집에선 어떻게 지내는가. “하루가 매일 다르다. 칸트처럼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았으면 좋겠다. 난 거의 매일 다른 도시에 살면서 침대와 식당과 음식을 바꾸어가며 산다. 여자만 안 바꾸는데 그것을 바꾼다면 재미있을 것이다.”(인터뷰에는 그의 부인 베로니카도 참석 옆에서 지켜봤다)

-당신이 예전에 돈 호세로 나온 ‘카르멘’ 음반지휘는 한국의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했는데 그와 친한가. “난 그를 잘 안다. 우린 아주 중요한 두 번의 녹음을 했는데 하나는 ‘신성한 아리아’(Sacred Arias)다. 아마 내 클래식 음반 중에 가장 많이 팔렸을 것이다. 그 때 내 음반회사는 누가 그런 것을 듣겠느냐면서 취입을 원치 않았었다. 그런데 500만장이 팔렸다. ‘카르멘’은 파리에서 녹음했다.”

-언제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을 알았는가. “어렸을 때 기숙사학교에 다닐 때다. 그 때 연말 쇼가 열렸는데 누군가 나보고 노래를 부르라고 앞으로 밀어냈다. 그런데 청중이란 것이 온통 내 또래의 아이들이어서 장내는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오 솔레 미오’를 불렀는데 아이들이 계속해 떠들어 첫 부분은 아마 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노래의 첫 고음을 부르자 장내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었다.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환호를 보냈다. 그것이 내가 내 안에 무언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첫 경우다. 그 후 나의 선생님이 내게 ‘네 음성은 네 특기가 아니라 신의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 후 나는 지금까지도 그 말을 내 신념으로 삼고 있다. 지금은 옛날보다 더 그 말이 내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목소리를 어떻게 돌보며 그것을 잃어 본 적이 있는가. “특별히 돌보지는 않는다. 술 안 마시고 담배 안 피우고 많이 안 먹는다. 난 아마 단 한 번도 대마초를 피워본 적이 없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목소리는 불행하게도 여러 번 잃어버린 적이 있다. 테크닉이 안 좋았을 때다. 그 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랬다. 그리고 한 번은 이탈리아가 축구경기 챔피언이 됐을 때 밤새워 소리를 질러 콘서트 스케줄을 재조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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