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갱영화 ‘블랙 매스’(Black Mass)의 주인공 조니 뎁(52)과의 인터뷰가 지난달 토론토국제영화제 기간 토론토의 한 호텔에서 있었다. 그는 ’블랙 매스’에서 1970년대 보스턴 남부를 장악했던 ‘윈터 힐 갱’의 잔인하고 사악한 두목 지미 ‘와이티’ 벌저로 나와 뛰어난 연기를 펼쳤다. .

스텟슨모자를 쓴 채 인터뷰에 나온 조니는 나이보다 젊어 보였는데 조용한 음성으로 천천히 진지하게 질문에 답했다. 그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가끔 위트 있게 농담도 하면서 인터뷰를 즐기는 듯했다.

-무엇 때문에 이 역에 이끌렸는가.

“지미라는 인간과 그의 삶의 다양한 면 때문이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는 민감한 사람이었으나 사업 면에서는 폭력적이었다. 사업을 제대로 해나가기 위해선 냉정해야 했다. 그의 이런 양면성을 표현하는 것은 마치 줄타기를 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젊었을 때 역시 갱영화인 ‘도니 브래스코’에 나왔는데 그 후 배우로서 어떻게 변화했는가.

“내가 늙었다는 말이구나. 1997년에 만든 그 영화의 역은 내게 완벽한 것이었다. 그 영화와 이 영화가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은 두 영화에서 모두 갱스터들이나 FBI요원들이 한 통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내게 지미의 역이 주어졌다면 난 해내지 못 했을 것이다. 젊은 나로선 아직 그의 분노를 제대로 조절해 묘사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미 역이 이제 주어진 것은 제 때에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미 역을 하면서 그의 인간성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이라도 미쳤는가.

“어느 역을 맡건 그것이 끝나고 나면 한 동안 나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난 연기할 때만 역에 몰입하지 세트를 떠나서까지 역을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보기엔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렇지만 그런 나로서도 역이 끝나고 나면 약간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지미는 자기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아들에게 매우 다정한 사람으로 특히 아들에 대한 그의 부드러운 면을 연기할 때의 느낌은 어땠는가.

“무슨 역을 하든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은 스스로의 진실이다. 역에 자신의 실제 경험의 여러 가지 진실을 보태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난 비록 지미와 같은 강렬한 경험을 겪지는 않았으나 옛날에 촬영 도중 7세난 딸 아이 릴리-로즈가 아파 병원에 3주간 입원했을 때 촬영을 중단하고 딸 옆에 있었다. 그런 경험이 이 영화 속의 아들에 대한 감정 표시에 도움이 됐다. 모든 역은 어느 정도 자신의 진실에 근거를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갱스터 영화이자 의리와 우정의 영화이기도 하다. 지미가 영화를 위해 면회를 요청한 당신을 거절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난 그를 만나 마주 보고 앉아 그의 매너리즘과 음성에 대해 공부하려고 했다. 그의 범죄 사실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미는 내 요청을 거절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에 대해 쓴 책들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라고 그의 변호사가 내게 알려 줬다. 지미는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죄까지 뒤집어 쓴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가 지미에게 한 가장 비열한 짓은 그가 밀고자라고 선전을 한 것이다. 갱 세계에선 밀고자가 피해 숨을 안전한 곳이 없고 또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있어 의리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내게 있어 모든 것이다. 내가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 또 좋았을 때나 나빴을 때 꾸준히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에 대한 의리는 나의 모든 것이다. 내겐 그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범죄와 살인마저도 저지를 수 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내가 돌 봐줘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이라도 있는지.”

-당신의 딸 릴리-로즈(16)가 배우와 모델로 일하면서 당신보다 더 유명해진 것 같은데 소감이 어떤가.

“겁나는 일이다. 이렇게 일찍 배우가 될 줄은 몰랐는데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쩌겠는가. 난 딸이 배우가 되기를 원치도 또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딸이 그 것을 아주 즐기고 또 매우 정열적이다. 요즘 칼 라거펠드의 모델로 선택됐다. 소녀에서 보다 성숙한 여자에로의 변화의 과정이란 주시하지 않으면 간과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내가 막는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난 그 아이가 자랑스럽다. 아주 총명한데 두려움 없이 무엇이든지 내게 말해 우리 관계도 아주 좋다. 아이가 조언이 필요하면 난 늘 곁에서 해 준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해 줄 일은 그들의 곁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딸 아이가 화장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일상에서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 작은 것들은 무엇인가. “내 딸 아이와 함께 놀고 신문을 보고 편안히 앉아 로렌스 크라우스와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책을 읽는 것처럼 단순한 일들이다. 할리우드라는 세상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이다.”

-당신 어머니로부터 어떤 교욱을 받았는가.

“내 어머니는 동부 켄터키주의 깡촌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생명력은 강했다. 내가 어려서 처음으로 학교에,가는 날 어머니는 내게 누가 널 건드리면 그 아이를 벽돌로 묵사발을 만들어 버리라고 충고했는데 그대로 했더니 효과가 있었다. 그 뒤로 난 어머니의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는데 그 말은 결코 이유 없이 누구로부터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말라는 것이다.” 박흥진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겸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회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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