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LP가이드북’ 발간한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 눈에 보는 한국 대중음악사

사진=출판사 안나푸르나 제공
[스포츠한국 이정현기자]해 저무는 서울 홍익대 인근, 한 카페 문을 열자 한쪽 벽에 빼곡히 전시된 LP들이 눈에 띈다. 영화‘별들의 고향’ OST부터 시작해 신중현, 펄시스터즈, 김추자까지 한국 대중음악계를 흔들었던 아티스트들의 옛 모습이 반갑다. 마치 한국 대중음악사를 한눈에 훑어보고 있다고 할까? 열정이 없이는 만나보기 힘든 귀중한 LP에서 콜렉터의 음악 사랑이 느껴졌다.

2월 27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카페 겸 갤러리 1984에서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을 발간한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를 만났다. 강릉 KBS 어린이합창단 단원을 계기로 음악에 빠져든 그는 20년간 한 일간지에서 사진기자와 편집위원으로 일하며 대중음악과 동고동락했다. 현재는 여러 방송에서 대중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각종 신문과 잡지 등에 칼럼을 쓰며 활동 중이다.

이달 18일 초판이 발행된 최 평론가의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은 국내 최초로 LP의 역사를 다뤘다. 두툼한 책 표지는 마치 LP판을 직접 만지는 듯 오톨도톨한 느낌이다. 책장을 열면 아날로그 시대를 향한 관문이 펼쳐진다. 직접 찍은 1,300장의 레코드 사진이 모든 페이지에 컬러로 담겼다. 스캔이 아닌 하나하나 직접 사진을 찍은 것에 대해 “마치 LP판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날로그, 그 날것의 느낌이 좋습니다. 디지털이 깔끔하고 정밀하긴 하지만 인위적이잖아요. 누군가 디지털 음원을 들으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LP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마치 제 앞에서 누군가 노래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죠. 혼이 담겼다고 할까요? 음역이 풍성하여서 소름이 돋을 때도 있죠.”

평론가이자 수집가인 저자는 이번 책에 대해 “어렵게 읽는 것이 아니라 그림책처럼 편하게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LP의 속지까지 친절하고 보기 쉽다. “세달 가량 사진 찍고, 정리하느라 허리가 아팠다”라며 웃는 모습에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사진=한국아이닷컴 박인영 인턴기자 multimedia@hankooki.com
“1990년대 말, 서울 청계천에서 일본인이 400만 원에 사간 전력이 있다”는 믿기 힘든 풍문이 도는 신중현의 애드포 1964년 데뷔앨범 ‘빗속의 여인’부터 싸이 ‘강남스타일’, 조용필 ‘헬로’(HELLO)까지, 책 한 권에 한국 대중음악 역사가 담겼다. 여기에 그동안 콜렉터이자 대중문화평론가로서 쌓아온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더해졌다. 김추자의 감춰졌던 데뷔기와 신중현의 앨범 제작 뒷이야기, 196,70년대 검열이 만연하며 해적판을 몰래 들어야 했던 이야기 등 현장에 직접 부딪쳐 얻은 정보가 가득하다.

책으로 정리하며 한국 대중음악사를 되돌아 본 최 평론가는 우리 음악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요즘 아이돌이 부르는 디지털 음원이 대세라고 그것만 음악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LP를 모으고 듣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어떤 음악을 해왔고 불려 왔는지 알 수 있죠. 해외의 경우 디지털 음원 뿐만 아니라 LP나 테이프 등 아날로그 음반에 대한 보존작업이 아주 잘 돼 있어요. 이것이 역사라는 걸 알고 있는 거죠. K-POP이 유행이라지만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는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최 평론가는 최근 들어 LP 수집 붐이 일면서 레코드 시장이 부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내 중고레코드 전문점에 가보면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LP판을 사러 오는 애호가들로 가득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밴드가 찍힌 큼지막한 재킷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장식품으로 걸어두고 싶을 정도로 예술적인 디자인의 앨범도 있죠. 뭐니뭐니해도 LP의 장점은 인간의 감성에 스며드는 소리입니다. 디지털 음원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죠.”

절판된 모든 것을 수집한다 하여 ‘절판소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대중가요 LP가이드북’이 LP컬렉터 입문서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 자신했다. 이번 책에는 중고 LP의 가치가 단계별로 표시됐다. 집 한편에 방치했던 오래된 LP가 실은 몇 백만 원을 호가하는 귀중한 물건일지 모를 일이다. LP로는 절판됐지만, CD나 음원으로 다시 듣고 싶어하는 음악 애호가들을 위해 재발매 소식까지 빼곡히 채웠다.

“LP에 한번 맛 들이면 빠져 나오기 힘들어요. 무언가 아끼면 껴안고 잔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LP 껴안고 목욕도 합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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