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택 KBO 총재가 지난달 2021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개막을 선언하고 있다.

KBO(한국야구위원회) 직원들이 붙인 정지택 총재의 별명은 ‘주사(主事)’다. 지엄한 총재임에도 중앙행정부서의 주사(현 직급으로는 주무관)처럼 실무를 파고 들기 때문이다.

정 총재는 왜 주사가 됐을까? 공무원 시절 ‘일벌레’였기 때문이다.

정 총재는 경기고-서울대 상과대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KS 맨’이다. 1975년 행시를 패스한 이후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 과장, 재정경제원 정책심의관, 기획예산처 예산관리국장을 지냈다.

1970~80년대 행시 출신들은 ‘한강의 기적’을 일군다는 자부심에 그야말로 불철주야 일을 했다.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간부들은 거의 매일 자정 가까이 퇴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람의 생각과 습관은 평생을 간다. 그러니 ‘일 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다.

KBO 출범 40년 동안 지난해까지 14명의 총재가 재임했다. 올 1월 취임한 정 총재는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의 ‘칼 근무’를 고수하고 있다.

이전 총재들은 ‘비상근(非常勤)’으로 1주일에 2,3일 시간날 때 KBO에 들러 업무 지시를 내리거나 결재를 했다. 정 총재가 정시 출퇴근을 하고 있는 것은 공무원 시절 이후 몸에 밴 습관이다.

그리고는 철저히 업무를 챙긴다. 난생 처음 부지런한 총재를 겪게 된 임직원들은 그를 보좌하느라 힘들다. 입에서 절로 ‘주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총재가 임직원들을 닦달하는 것은 그들의 업무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KBO 임직원을 핵심 경제부처의 간부들과 비교하는 건 무리지만, 주어진 일에만 매달리는 업무 스타일은 전혀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지시를 내린다.

취임 1년이 다된 지금은 웬만큼 KBO 체질에 적응이 됐지만, 기획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임직원들이 못마땅하긴 취임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정 총재는 국가 발전의 근간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한 핵심 간부답게 한국 프로야구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에 관심이 많지만 직원들이 따라주지 못한다.

KBO가 출범 40년이 되며 직원들이 ‘반관반민(半官半民)’의 느슨한 체질에 젖어 있다. KBO는 말이 위원회지 은행연합회, 손해보험협회처럼 협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업무 처리에서 회원사(10개 구단)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총재는 리그를 대표하고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KBO 이사인 구단 대표들의 협조와 지원을 받지 못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음).

그런 탓에 직원들은 창의력이니 열정이니 IT기업 직원들이 지녀야 할 자질을 발휘할 수가 없다. 입사하자마자 주어진 일에 충실해지는 업무 스타일에 젖어들게 된다. 하버드대학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스포츠마케팅을 전공한 석,박사라도 KBO 체질에 젖으면 닥치는 일만 하는 ‘공무원 스타일’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 이론으로 말하면 ‘확대재생산’은 그림의 떡이고 ‘단순재생산’에 만족하며 한 시즌을 보내게 된다(물론 일부 직원들은 업무 개선에 힘을 쓰고 있지만).

정 총재가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집중해야 할 일이 KBO 임직원들의 ‘굳은 의식’을 깨는 것이다.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임무다. 임직원들의 ‘발상의 전환’을 기대해본다.

2021프로야구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KBO 최우수선수 기자단 투표에서 올해 16홀드 평균자책점(ERA) 4.97인 김태훈(SSG)이 1위표 1장을 받았다.

14타석 4안타가 전부인 박지훈(두산)은 신인상 투표에서 1위표 2장을 얻었다. 올시즌 단 한경기에 등판한 구준범(삼성)은 1위표 1장을 받았다.

신인상은 19경기 4승5패(ERA 3.61)의 이의리(KIA)가 44경기 4승 2패1세이브 20홀드(ERA 2.85)의 최준용(롯데)을 제치고 수상했다.

최준용은 은퇴선수회가 준 최고 신인상을 받았다. 안경현 회장은 “전체 회원의 일방적 찬성으로 신인상이 정해졌다”고 했다. 선수 출신과 기자들 평가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선발투수와 중간계투의 성적을 정확히 비교하는게 쉽지 않지만 ‘선발 4승’에게 일생에 단한번 있는 신인왕 영예를 안겨주는 것은 무리가 있다(국가대표로 출전한 올림픽은 번외 경기). 1988년 이용철(MBC)은 7승 11패의 성적으로 KBO 신인상을 탔는데 10승 미달의 투수에게 상을 줬다고 야구계 안팎에서 말이 많았다.

곧 발표될 골든글러브 수상자도 뒷말이 많을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왜냐 하면 KBO 최우수선수든, 신인상이든 골든글러브든 모두 기자들의 무기명 투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익명’의 뒤에 숨어 장난을 치는 투표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명예의 전당이나 사이영상 투표에서 투표자 이름을 밝히는 메이저리그(MLB)처럼 반드시 기명 투표로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KBO와 야구기자협회의 용단을 기대해본다.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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