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kt 감독
웬만한 팬들은 다 알지만 프로야구엔 ‘좌우놀이’가 있다. 상대 선발이 좌투수로 예고되면 우타자 위주로 오더를 짜고, 좌타자가 대타로 나오면 마운드에 있는 사이드암 스로를 좌투수로 교체하는 게 좌우놀이의 키포인트다.

물론, 몇 년 전부터는 좌우놀이가 퇴색되고 있다. 상대 투수가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언더핸드 스로든 중심타자는 잘 바꾸질 않는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좌우놀이가 정말 심했다. 좌투수에 좌타자 기피는 거의 철칙으로 여겼다. 사령탑중 재일동포 출신인 김성근 감독(79)이 가장 애용했다.

1997년 여름 어느 날로 기억된다. 김 감독은 당시 쌍방울을 맡고 있었다. 쌍방울의 인천 원정 경기를 취재갔었는데,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9시반쯤 김 감독 방엘 가니 그는 룸서비스로 음식을 시켜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잠을 못잔 탓인지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오더를 짜시느라 늘 늦게 주무시고 늦게 일어나시는 탓에 생긴 수면 부족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시는 선발투수 예고제가 시행되기 1년 전이라 내일 경기의 상대팀 선발투수가 어떤 유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의 등판 간격을 따져 누가 나올지 짐작할 뿐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감독들은 상대팀 감독의 의표를 찌르기 위해 예상외의 투수를 내보내기 일쑤였다. 특히 쌍방울전을 앞두고 그랬다. 어떤 투수가 나올지 김성근 감독이 가장 예민했기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일단 좌투수가 선발로 나올 경우를 대비해 오더를 짠다.

그리고는 우투수를 예상한 오더를 다시 작성한다. “아 참, 언더핸드나 사이드 스로가 나올 수 있지?”해서 세 번째 오더를 만든다. 그리고 세 오더를 놓고 어떤 게 맞을지 되풀이해서 골똘히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새벽 두시가 되고, 3시가 된다.

김 감독의 예상이 맞을 때가 많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선발 투수에 대한 감이 전혀 없을 때는 후보 야수를 허수아비로 오더에 넣었다가 1회에 바로 빼기도 했다.

1998년 시즌부터 선발투수 예고제가 실시됨으로써 김 감독의 수고(?)는 한참 덜어졌다. ‘선발투수 감잡기’는 이젠 아득한 옛 추억으로 사라졌다.

KT 위즈는 정말 불가사의한 팀이다. 전체 등록된 투수 29명중 좌투수는 단 4명이다. 4명 모두는 B~C급이라 선발로 한명도 내보낼 수가 없다.

좌투수인 이창재는 올시즌 2승, 조현우는 5홀드, 심재민은 1패 1홀드, 하준호는 10경기에 나갔지만 성적이 없다.

KT는 좌완 선발 투수없이 8월 13일 이후 2개월 넘게 1위를 달리고 있으니 ‘신통방통’한 팀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18일 현재 2위 삼성에 1.5경기차, 우승 매직넘버 9).

KT가 예상 밖의 1위를 질주하는 것은 투수 운용의 달인인 ‘통산 152승(역대 3위)’에 빛나는 이강철(55) 감독의 절묘한 마운드 전략이다. KT에 보직을 고정한 투수는 마무리 김재윤(우투)뿐이다. 쓸 만한 좌완이 없으니 ‘좌우놀이’는 꿈도 못꾼다. 그러니 매경기 피말리는 계투책으로 134경기를 버티며 시즌 종료를 10경기 남겨두고 있다.

이 감독의 마운드 운용이 가장 빛난 건 지난 11일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로 주목을 받았던 LG전이었다. 2위 LG에 2.5경기까지 잡혔던 KT는 여기서 패할 경우 승차 1.5경기로 줄어 1위를 장담할 수 없었다. 반박자 빠른 투수교체는 이 감독의 필승 의지를 잘 드러냈다.

잘 던지던 선발 데스파이네가 4-2로 앞선 6회말 2사 1,2루의 위기에 몰리자 가차없이 주권으로 바꿨다. 주권은 한타자만 상대, 범타로 막고 내려갔다.

그리고 이 감독은 7회말부터 조현우-이대은-박시영-김재윤의 필승조를 가동, LG 타선을 무력하게 만들며 2점차 리드를 끝까지 지켰다. 많은 전문가와 기자들이 이감독의 계투 전략에 감탄한 경기였다.

여기에서 보듯 이감독은 기계적인 좌우놀이 대신 상황을 철저히 통찰한다. 어떤 순간에 어떤 투수가 자기 공을 주저없이 던지는 지 속속들이 알기 때문이다.

물론 7개월 가까이 이어지는 계투 작전은 투수들을 피로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감독의 머릿속에는 페넌트레이스 1위 결정후 약 25일간의 휴식이라는 일정이 철저히 계산돼 있다. 휴식기동안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 재충전을 한다면 한국시리즈 우승도 손안에 있다는 판단이다.

시즌 막판, 치열한 5강 다툼 못지않게 이감독의 영리하면서도 처절하다시피한 마운드 운용이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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