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낫아웃' 포스터.
야구계 입시 비리를 깊이 있게 다룬 독립영화 ‘낫아웃’(지난 3일 개봉),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뤘지만 흥행엔 별 영향이 없다. 13일까지 11일 동안 전국 관중 1만명도 동원하지 못했으니 말이다(8,445명). 이른바 ‘야구 영화’여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탓이다. 하지만 야구 관계자들은 꼭 보기를 권한다. 야구 발전의 발목을 잡는 대학입시 비리 문제를 과감하게 건드렸기 때문이다.

영화는 열아홉 고교야구 입시생 광호(정재광)의 눈으로 부조리한 세상과 불안한 청춘들을 그려냈다. 광호는 꿈에 그리던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짜릿한 결승타를 쳤다. 그러나 정작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프로팀 연습생도 좌절되고 결국 특기자로 대학 진학하려 했으나 감독이 요구하는 ‘거액’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동네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홀아비 아들이 꾀할 수 있는 건 위험하고 불법적인 ‘한탕’뿐. 가짜 휘발유 판매에 가담해 큰돈을 노렸으나 이마저도 경찰에 발각돼 미수에 그친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 영화에서 야구를 주제로 한 영화는 최동원-선동열의 대결을 재미있게 다룬 ‘퍼펙트 게임’등 몇 있었지만 야구계 비리를 다룬 건 ‘낫아웃’이 처음이다.

이 영화를 만든 이정곤 감독은 어떻게 야구계의 그늘진 현장을 잘 알게 됐을까. 워낙 야구 광팬인 그는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늦깎이 졸업하고 첫 장편영화를 준비하면서 경계선에 선 청춘 이야기에 야구를 접목하기로 마음먹었단다. 모티브가 된 건 2014년 서울고의 황금사자기 우승 주역인 톱타자 홍승우 선수였다고.

“영화 내용 비슷하게 프로 지명과 대학 진학에 실패했는데 홍승우 씨는 내부고발자가 되는 바람에 야구계에선 사실상 매장당하고, 결국 공부로 3수해서 서울대에 진학, 동아리 야구를 계속했다. 드래프트 탈락 소식을 주말 친선경기 중에 확인하는 장면도 그의 실제 경험에서 땄다.” 그밖에도 여러 야구계 사람들을 만나 대학-고교 간에 관행이 된 특기자 원서 할당 등 구조적 문제를 생생하게 엮었다고.

특히 감독 몰래 특기자로 응시한 광호의 실기시험 ‘펑고’(야수의 수비 훈련) 장면이 압권이다. 처음엔 이를 악물고 공을 잡던 광호는 그를 떨어뜨리기 위해 무리하게 날리는 플라이에 허덕이다 마침내 바닥에 나뒹굴고 만다. 짙은 어둠과 함께 좌절하기까지 카메라가 집요하게 따라갈 때 관객 역시 자신의 일처럼 체감한다.

“실제로도 실기시험 때 정해진 결과로 몰고 가는 일이 허다하다더라. 공에만 집중하던 광호가 ‘나 불합격 하겠구나’라고 감을 채는 과정을 촬영감독과 배우가 긴밀하게 뽑아냈다.”(중앙일보 강혜란 기자의 이정곤감독 인터뷰 일부 인용)

영화를 보고나서 필자는 야구계의 아픈 곳을 찌른 ‘용감한 영화’를 봤다는 뿌듯함보다 씁쓸함이 앞섰다. 왜냐 하면 이정곤감독의 아우성은 ‘찻잔속의 태풍’, 아니 ‘찻잔속의 자그마한 소용돌이’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교육부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입시관련 담당자, 또 야구팀이 있는 대학교의 총장과 스포츠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두루 보며 문제점 파악과 개선책에 지혜를 모아야 함에도 “저런 영화가 있었구나...”하며 금새 뜻있는 고발이 묻혀질 게 안타깝다.

지난 1월 대한야구소프트볼 협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야구계 비리와 각종 문제점들을 외면하고 있는 이종훈 회장 및 집행부가 대책 마련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이 세상에 불공정한 사례들이 엄청나게 많긴 하지만 야구인들은 대학 입시 비리만이라도 개선돼 실력있는 흙수저들이 좌절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제목의 ‘낫아웃’은 타자가 삼진아웃을 당했을 때 포수가 공을 놓치면 1루로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야구 규칙. 좌절한 청춘들에게 ‘끝난 것 같지만 기회는 있다’는 의미를 담음).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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