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KBO 총재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전 KBO 총재는 대표적인 ‘동반성장 전도사’다.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최고의 가치는 동반성장이라는 신념을 가진 정 전 총재는 2010년 설립된 동반성장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정부에서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의 동반성장위원회를 확실히 도와주지 않아 성과를 못내며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그리고는 2012년 순수 민간 연구소인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들어 지금까지 이사장을 맡아 오고 있다.

정 전 총재는 동반성장이 단기적으로는 저성장과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또 동반성장은 어느 한쪽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승자 독식의 경쟁’을 배제하고 참여자 모두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는 협력적 경쟁을 추구한다고 믿는다(최근 저서 ‘한국경제-동반성장-자본주의 정신’).

이런 신념을 가진 정 전 총재가 KBO 총재를 맡으면서 동반성장의 개념을 리그에 도입키로 마음을 먹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7개월여의 페넌트레이스를 거치며 10개팀 중 단 한팀만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프로야구에서 동반성장이란 맞지 않는 개념일 수 있다.

그렇지만 정 전 총재는 중계권료 인상, 통합 마케팅, 리그의 질적인 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10개팀의 동반성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취임사 등에서 밝혔다. KBO 이사회에서 구단 사장들에게 상세히 설명, 연구 과제로 던졌지만 각 구단의 반응이 일절 없어 ‘메아리없는 외침’이 되고 말았지만.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불꽃튀는 승부를 펼치는 프로야구에서 동반성장이 필요한 부분이 적지 않다. 먼저 각팀들이 고른 성장을 할 경우 팀간 격차가 줄어들어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5강 싸움을 벌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관중 증대의 요인이 돼 입장 수입은 크게 늘어난다. 야구 관련 상품도 덩달아 잘 팔려 별다른 마케팅 전략이 필요없게 된다. ‘승리가 최고의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고른 성장, 즉 동반성장은 1위와 꼴찌팀의 승차가 많지 않아 포스트시즌 티켓 싸움이 불을 뿜는 경우를 말한다. 8팀 체제의 2004년에는 1위~8위의 시즌 종료후 경기차가 22게임에 불과해 마지막날까지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어떤 팀도 긴장을 풀수가 없었다. 매경기 박진감이 넘쳐 1위 현대의 승률은 평년 3위팀 수준인 0.586(75승5무 53패)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는 SK(현 SSG)와 한화가 일찌감치 최하위권으로 처져 코로나19 사태가 아닌 정상 운영이었다면 12년전 수준인 연관중 600만명대로 뚝 떨어질뻔했다(1위 NC~10위 한화 38.5 경기차).

올해는 시즌 초반부터 불꽃 순위경쟁이 벌어져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으면 만원사례가 예상외로 많이 이뤄졌을 것이다. 특히 1위 싸움은 더 치열해 자고나면 성적이 바뀔 정도다. 지난 18일 삼성이 단독선두로 오른 뒤 19일엔 LG, 20일엔 KT, 22~23일엔 SSG가 앞서고 있다.

특히 24일 현재 1~7위간의 승차가 2.5경기에 불과해 3연전 결과에 따라 1위와 7위의 순위가 역전될수 있다. 이처럼 짜릿한 승부는 1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다.

또 팀간 동반성장을 이루려면 감독 선임을 잘해야 하고, 구단 사장도 야구 문외한을 임명하면 안된다. 하지만 프로야구단을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에서는 야구단 운영을 경시, 비(非)전문가인 그룹 임원을 구단 사장으로 발령내 야구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감독 선임도 마찬가지다. 준비가 덜된 코치와 계약, 취임 첫해 최하위권으로 떨어져 홈팬들의 원성을 사는 일이 더러 있다. 메이저리그처럼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감독감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

동반성장의 필수 요인에는 적절한 트레이드도 있다. 2000년 이전만 해도 각팀 감독들은 실업야구시절의 나쁜 습성이 남아 소극적인 트레이드로 주전급 후보를 썩히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프로선수 출신들이 대거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활발한 트레이드로 각팀 전력 보강의 좋은 수단이 되고 있다.

최근 사례는, LG와 두산이 16년만에 선수를 맞바꾸며 서로 ‘Win-Win’하고 있다. 양석환은 두산 유니폼을 입고 오재일이 떠난 빈자리를 잘 메우고 있으며 함덕주는 시즌 초반 LG의 필승조로 한몫 단단히 했다.

팀이 크게 이기고 있을때 볼카운트 3-0(노 스트라이크 스리볼)에서 타격하지 말것, 노히터 게임을 깨기 위해 번트 대지 말기 등 메이저리그 불문율도 동반성장을 돕는 작은 요인이다. 상대팀을 자극해서는 원만한 성장을 이룰수 없는 탓이다. KBO 리그도 감독자회의에서 불문율에 대한 암묵적인 승인을 하는게 바람직해 보인다.

정운찬 전 총재는 야구판을 떠났지만 그의 지론인 동반성장은 프로야구의 발전에 작은 나침반이 되고 있다.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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