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을 이겨내고, 인간승리의 주인공인 된 NC의 우완 투수 원종현(30).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만을 그와 함께 지냈지만, 나에게 원종현은 무척 특별한 후배였다.

NC의 원종현. 스포츠코리아 제공
그와의 인연은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FA 계약을 통해 LG에 새 둥지를 틀었고, 지난 2006년 LG에서 2차 2라운드 11순위로 뽑혔던 원종현 역시 LG에 몸담고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1군 선수, 그는 2군 선수였다.

이때만 하더라도 나는 원종현이라는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원종현은 당시부터 나라는 존재를 알았고 심지어 인사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많은 야구 팬들이 아시다시피, 원종현은 LG에서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 끝내 지난 2010년 방출 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원종현이 당시 방출됐던 이유는 간단했다. 구속은 빨랐지만,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야구 선수가 갑작스럽게 제구력 난조를 겪는 증후군)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 한 마디로 과도기였다.

시간이 흘러 원종현과 나는 2014시즌에 들어서야 재회할 수 있었다. 이 때부터 나와 원종현은 본격적으로 1군에서 함께 지냈다. 나도 내성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원종현 역시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오랜 시간 재활을 거쳤다는 공통점까지 더해 나와 원종현은 절친한 사이로 거듭났다.

2015시즌 스프링캠프에서 원종현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대장암 2기 판정을 받았을 때, NC선수단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NC가 2015시즌 페넌트레이스에서 3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선수들이 투병생활을 하고 있을 원종현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우리 사이는 선후배 사이가 아닌 지도자와 선수사이로 뒤바뀌었다. 2016시즌 NC 2군 보조코치를 맡았던 나는 같은 해 2월 대만 캠프에서 현역 복귀를 준비하던 원종현과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이미 현역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기에 복귀 준비를 하는 원종현의 모습은 무척 안쓰러웠다. 당시 나는 부족한 능력임에도 ‘원종현이라는 선수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무척 고민했었다.

고민 끝에 나는 원종현에게 직구형 슬라이더를 전수해주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원종현이 나의 지도를 잘 따라와 줘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는 노력 끝에 예리한 슬라이더를 장착할 수 있었다. 물론 조대현 트레이너가 그의 몸을 제대로 만들어 주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구종추가였다.

2014년에 비해 2017년의 원종현은 크게 나아졌다. 제구력은 물론 공의 움직임까지 좋아졌다. 지난 2014년에는 4.06이었던 평균자책점 역시 지난 시즌에는 3점대(3.18)로 내려갔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2군에서 원종현을 지도할 때, 나는 그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예상한 바 있다. 자기 관리도 무척 뛰어났고,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암을 극복하면서 정신력이 크게 좋아졌다.

특히 여타 강박에서 벗어나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던 점은 원종현을 더욱 강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사실상 제 2의 인생이 열린 셈이다. 성공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이 그대로 맞아 떨어져 무척 기쁘고 다행스럽다.

원종현이 정말 대단한 선수 중 한 명이라 느꼈던 때는 그가 자신의 치명적 약점을 나에게 털어놓았을 때였다. 그의 치명적 약점은 앞서 언급했듯이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이다.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이 증후군에 시달리는 선수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스트라이크를 쉽사리 못 던진다.

오랜 시간 해당 증후군으로 고생했던 원종현은 자신이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했다. 자신의 치명적 약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이 쉽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체로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야구선수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의 고백에서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약점이 노출됐을 때 변명이나 핑계를 대면서 실수와 약점을 정당화 시키는 행동에 돌입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원종현은 달랐다. 약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도망치지 않고 약점과 정면으로 맞서는 방법을 택했다. 보통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달 31일 WBC 대표팀의 괌 미니캠프를 떠나기 위해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던 원종현. 사진=이재현 기자
자기 관리가 철저했던 것도, 대장암이라는 큰 병을 극복하고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자리매김 한 일도 앞서 언급했던 강한 의지가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지난 시즌의 성공은 ‘어제 내린 눈’에 불과하다. 2017년 2월 원종현의 당면과제는 단연 WBC에서의 호투다.

대표팀의 괌 미니캠프에 합류하기도 했던 원종현은 아마도 웨이트 트레이닝과 런닝 훈련에 힘을 쏟는 한편 하프 피칭, 몸이 좋다면 불펜 피칭까지 진행했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현재 일본 오키나와 대표팀 전지훈련을 앞둔 원종현의 컨디션은 시즌 도중에 비해 50%정도일 확률이 높다. 다음달 6일로 예정된 대회까지 약 한 달 가량 준비할 기간이 남아있다. 시간을 두고 10%씩 몸을 서서히 끌어올리면서, 본선 무대에서는 90% 가량의 몸상태로 나설 전망.

일단 원종현은 불펜 투수로서 마무리가 아닌 7,8회에 중간 계투로 나설 공산이 크다. 따라서 한 경기당 15개 정도의 공을 전력 투구 할 수 있는 몸을 만들면 된다. 필승 마무리 역할을 맡을 오승환이나 임창용에 비한다면, 조금 더 유리할 전망이다.

이번 WBC에서 원종현의 관건은 구위를 얼만큼 끌어올리느냐다. 성공적인 대회를 원한다면 구속을 최소한 140km대 중반까지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듣기로는 그가 아직은 커터를 장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 그동안 잘해왔던 구종인 투심과 슬라이더로 승부를 내야 한다. 단기전인 만큼 ‘모험수’인 커터를 무리하게 구사할 필요는 없다.

야구는 물론 스포츠 선수들은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원종현의 재기는 야구팬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기도 하겠지만, 수많은 암 투병 환자들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다.

재기만으로도 정말 축하를 보낼 일이나 원종현이 국민적 관심이 쏠릴 WBC에서도 맹활약을 펼쳐 지금 보다 더 큰 감동을 국민들에게 선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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