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병신(丙申)년이 가고 2017년 정유(丁酉)년이 밝았다. 다들 설 연휴를 잘 보내고 계시리라 믿는다.

명절이 익숙한 독자들과는 달리, 나는 지난 1996년 프로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로 무려 21년 만에 설 연휴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게 됐다. 이전과는 달라진 명절 분위기가 한 편으로는 어색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무척 기쁘기도 하다.

지난해 추석연휴를 맞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를 찾은 관중들이 윷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야구팬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야구선수는 물론 야구인들의 명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명절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지만 이를 반납한 채 야구를 해왔던 것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먼저 설을 살펴보자. 올해부터 KBO는 프로야구선수협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각 구단의 스프링캠프 개시일을 1월 15일에서 2월 1일로 늦췄다. 따라서 적어도 올 시즌을 뛰는 선수들은 27일부터 시작된 설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설 연휴를 고국에서 즐길 수 있는 선수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언제나 1월 중순이면 스프링캠프 준비를 위해 출국했기에 매번 타국에서 설날을 맞았다. 이런 탓에 설이 아닌 신정을 명절처럼 챙겼다.

구단별로 설 연휴를 맞는 풍경은 조금씩 달랐다.

두산은 별도의 행사를 진행하지 않은 채, 비교적 차분하게 설날을 보냈다. 대신 특별히 준비한 명절 음식을 선수들에게 제공했다.

비록 타지였지만 떡국을 비롯한 명절 음식들을 접할 수 있었다. LG에서는 다소 시끌벅적한 설을 맞이했다. 대형 윷놀이를 비롯해 각종 전통놀이 대결을 통한 간단한 내기를 진행한 것. 승부근성이 강한 선수들이 한 데 모여 있는 만큼 야구 경기만큼이나 치열한 대결이 펼쳐지고는 했다.

NC는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지역 인근의 야구장에서 선수단 전원이 김경문 감독을 향해 세배를 했었다. 김 감독은 선수단을 향해 덕담을 건넨 후, 제법 두둑한 세뱃돈을 내줘 선수들의 환호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김경문 감독은 통이 컸다.

추석은 시즌 중에 맞이했기에 가족들과 함께 연휴를 보낸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오히려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가 달린 시기인 만큼 무척 예민한 시기다.

경기 전인 오전, 집 혹은 고향에 들러 차례를 지낼 여건이 조성돼도 선수들은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이를 마다한다. 연휴 동안 원정 일정을 치러야 하는 선수들을 지켜보면 안쓰럽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추석 연휴가 가져다주는 넉넉함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때는 설과 달리 구단이 선수단을 위한 별도의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물론 연휴기간 야구장을 찾는 팬들을 위해 선수단이 참여하는 이벤트는 열렸다.

다만 추석 연휴가 야구팀에게는 곤혹스러울 때도 있다. 귀성·귀경 전쟁과 연관이 깊다.

선수단은 구단 버스를 이용해 주로 원정을 다닌다. 추석 연휴기간 원정 일정이라도 잡혀있다면, 구단은 울상을 짓는다. 차량정체가 극심한 때에는 도로에서 비교적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 좁은 좌석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몸이 굳는 경우도 있다. 이는 컨디션 저하로 이어질 소지가 있어 좋을 리 만무하다.

연휴기간 원정 경기가 부산에서 치러지면 차라리 낫다. 나는 주로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팀에서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에 추석 연휴 기간 부산 원정이 계획된 때에는 비행기에 올랐던 기억이 난다.

지난 2014년 설을 괌에서 맞은 삼성 선수단은 제기차기 대회를 열었다. 이승엽이 나서 제기를 차고 있는 모습. 스포츠코리아 제공
이처럼 설과 추석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야구인들이 명절을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동일하다. 정리해보면 야구인들에게 명절은 그리움이다.

특히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이 상대적으로 많이 느껴지는 명절은 바로 설이다. 아무래도 타지에서 머물다 보니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배가 되는 것.

그렇게 보면 ‘한국을 벗어나면 다 애국자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설은 그 어느 때 보다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날이다. 시즌 중에 맞이하는 추석은 정신없이 지나가기에 그나마 버틸 만 하다.

야구인들이 명절에 온전히 그리움만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결혼 이후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아내에게 큰 신세를 지는 시기가 바로 명절이기 때문. 아무래도 아내 홀로 남편이 없는 시댁에 가야하는 상황이 잦다. 내색은 안 하지만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나는 그간 야구를 한다는 핑계로 처가 식구들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해 명절이 아닌 경조사 때 처가 식구들을 마주하면 다소 어색해했다.

그럴 때면 아내와 장인·장모님, 처가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 뿐이다. 프로야구팀을 떠난 지금부터라도 자주 찾아뵙고 그간의 미안함을 만회하고자한다.

2016년은 그 어느 해 보다 다사다난했다. 야구계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어수선했던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하지만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2017년 새 해에는 선·후배 야구인들과 독자 여러분 모두 원하는 바를 이루고, 건승하시길 기원한다.

박명환 야구학교 코치.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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