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서 강인구 역 열연
황정민·박해수·조우진·유연석과 호흡… 비영어권 TV쇼 1위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하정우가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으로 2년 만에 대중 앞에 섰다.

하정우와 함께 총 네 편의 영화(‘용서받지 못한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군도’)를 함께 했던 윤종빈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맡은 ‘수리남’은 남미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무소불위의 마약 대부로 인해 누명을 쓴 한 사업가가 국정원의 비밀 임무를 수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로 총 6부작이다. ‘수리남’은 남미 수리남에 대규모 마약밀매 조직을 만들어 활약하다가 지난 2009년 체포됐던 조봉행과 그를 체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민간인 협력자 K씨가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지난 9일 전세계 180여개국에 동시에 첫 선을 보인 ‘수리남’은 공개 5일 만인 14일 넷플릭스 TV쇼 부문 전 세계 3위(플릭스패트롤)에 오르며 최근 다소 부진했던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의 흥행사를 고쳐 썼다. 22일 넷플릭스 톱10에 따르면 9월 셋째 주 비영어권 TV쇼 부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실화가 영화보다 더 허구처럼 느껴지는 '수리남' 프로젝트는 한 선배가 하정우에게 수리남의 마약계 거물 조봉행의 실화를 들려주며 첫 단추를 꿰었다.

“7년 전 쯤 학교 선배가 이 스토리를 이야기해줬어요. 제가 몸담은 제작사 퍼펙트스톰에서 윤종빈 감독에게 제안을 했죠. 처음에는 윤 감독이 고사했어요. 여러 감독님께 드려봤지만 거절당했고 표류하게 됐어요. 윤 감독이 ‘공작’을 끝낸 후 이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게 돼서 시리즈물로 만들자고 의기투합했죠.”

하정우는 박찬욱(‘아가씨’), 최동훈(‘암살’), 김용화(‘국가대표’, ‘신과 함께’1, 2), 류승완(‘베를린’), 나홍진(‘추격자’, ‘황해’), 김병우(‘더 테러 라이브’, ‘PMC’), 장준환(‘1987’), 김성훈(‘터널’, ‘피랍’), 이해준·김병서(‘백두산’) 등 국내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작품의 주연을 맡아 한국 영화계를 앞장서서 이끌어왔다. 하지만 단연 윤종빈의 페르소나로 꼽히는 이유는 함께 한 작품수가 가장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대학(하정우와 윤종빈은 중앙대학교 연극과와 영화과를 각각 졸업한 1년 선후배 사이다)을 막 졸업해 배우와 감독이라는 호칭조차도 어색했던 시기 서로 의기투합해 '용서받지 못한 자'를 내놓은 후 20여년에 가까운 시간을 영화 동지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예술 세계를 함께 일궈왔기 때문이다.

“윤종빈 감독과 함께 해서 더 좋았던 부분은 서로 신뢰와 믿음으로 작업했다는 것이죠. 어릴 때부터 영화 작업을 함께 해온 동지로서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더 신경을 써야만 했죠. 둘이 친하다고 봐주고 얼렁뚱땅 하는 것 아니냐는 선입견도 있을 수 있잖아요. 윤 감독과 작품을 할 때는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부담이 있어요. ‘군도’ 때도 그랬는데 이번엔 더 부담이 됐어요. 이번 작품은 징글징글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기에 만족도가 큽니다. 윤종빈 감독부터 배우들, 스태프들 모두 집중력이 굉장히 높았고 누구 하나 흐트러진 사람 없이 공을 들였습니다.”

하정우는 극 중 국정원과 손을 잡고 수리남 마약왕 전요환을 검거를 위해 투입되는 사업가 강인구 역을 연기했다. 어린 나이에 소년가장이 되어 어린 동생들을 건사한 강인구는 아내와 두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카센터와 단란주점을 동시에 운영하며 지내던 중 수리남에서 홍어 사업을 해보자는 친구의 제안으로 수리남 행을 택하게 된다. 결국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국정원과 손잡고 수리남 최고의 마약 대부 전요환 체포 작전에 동참하게 된다.

“강인구라는 인물은 어려웠어요. 일반 수산업자가 언더커버로 들어가 생존해내는 모습을 설득력있게 표현하는 부분이 쉽지 않았죠. 중학교 때 유도한 것을 빼면 전문 요원도 아닌 사람이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위기의 고비를 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죠. 강인구가 수리남에 들어가서 국정원의 제안을 받고 살아남는 과정에서의 명분을 찾기 위해 윤 감독과 오래 이야기를 나눴고 하나하나 찾아갔어요.”

강인구의 실제 모델인 K모씨와는 한두 차례 직접 만남도 가졌다. 하정우는 실존 인물 K씨에게 캐릭터를 차용한다거나 아이디어를 얻어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에너제틱함이 인상적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K씨를 직접 만나 뵜죠. 첫 인상은 정말 탄탄하고 짱짱하다는 느낌이었어요. 등산할 때도 산에 뛰어 올라갈 분 같았어요. 직접 뵈니 외부로 느껴지는 에너지의 위엄 자체가 달랐어요. 사실 그 분의 실제 스토리가 더 영화 같은 부분이 있죠.”

‘수리남’의 가장 큰 긴장감과 재미는 강인구와 전요환의 양보도 없는 불꽃 대결에서 나온다. 연기력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하정우와 황정민이 펼치는 핑퐁호흡은 등줄기를 오싹하게 할 정도의 카타르시스를 수차례 제공한다. 하정우는 한치의 보탬이나 덜어냄 없이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으로 그저 가족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대한민국 아빠 정신과 뼛속 깊은 사업가 정신으로 뭉친 강인구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강인구 입장에서 보면 일생일대의 사건이고 엄청난 고생담이지만 1부 내레이션에서 감독님은 가벼운 무용담처럼 풀어나가길 원했던 것 같아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나레이션과 몽타주 구성으로 펼쳐나갔죠. 저 또한 처음부터 너무 장엄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긴장감 넘치는 밀도 높은 장면에서 대사의 속도를 높이려고 노력했어요. 영어 대사가 많았는데 우리말처럼 편히 대사를 말하려면 반복 학습 밖에 없었어요. 그 정도 스피드로 펼치기 위해 3개월 정도 숙달되도록 연습했죠. 강인구의 가장 큰 동력이 가장으로서의 의무감인데 그런부분은 윤종빈 감독이 결혼해서 자식을 키우고 있으니 시나리오에 잘 녹아 있었어요. 저 또한 자연스럽게 공감하며 연기했죠.”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가 함께 만든 첫영화 ‘용서받지 못한자’의 시사회 현장에 직접 찾아와줘 만났던 황정민과는 당시 ‘앞으로 세 사람이 꼭 한 번 뭉치자’고 약속을 나눴던 사이다. 세 사람이 함께 나눴던 약속은 18년 만에 ‘수리남’을 통해 현실이 됐다.

“황정민 형과 작업은 너무 편했어요. 엄청난 고수이시기에 액션신을 찍어도 부담이 없었죠. 멱살을 잡거나 머리끄댕이를 잡아도 상대 배우가 편히 연기할 공간을 열어주셨어요. 그런 부분에서 작업이 편했죠. 어린 시절부터 매니지먼트에 들어갔을 때부터 알던 형이고 처음에는 막연히 무섭고 다혈질인 형인줄 알았는데 만나서 작업해보니 누구보다 따뜻하고 든든했던 형 같은 존재였어요. 상대배우 보다는 형에 가깝죠. 윤종빈 감독과 일하는 것보다 정민 형과 일하는 게 더 편했어요.”

하정우가 극 중 가장 긴장감 넘치는 장면으로 꼽는 장면은 전요환과 강인구, 그의 수하인 변기태(조우진), 데이빗 강(유연석), 이상준(김민귀) 등이 함께 모여 누가 첸진(장첸)파에 비밀을 흘리는 첩자인지 갑론을박을 벌이는 신이다. 제작발표회 당시 대부분의 배우들이 촬영 당시 가장 긴장감과 연기의 재미를 느꼈다고 꼽은 장면이기도 하다.

“최창호를 뺀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의심하며 긴장도가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이었죠. 황정민 형 연기를 보면서 저도 에너지를 올리며 텐션을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전요환의 저택 수영장에서 촬영한 장면인데 정민이 형이 너무 스스럼없이 수영복 삼각팬티를 입고 잘 돌아다니시는 거예요. 아무리 배우여도 민망할 수 있는데 캐릭터에 빠져서 컷이후에도 스스럼없이 그 의상 그대로셨어요. 정말 놀라웠어요. 정민이 형이 전요환에 푹 빠져 있으시기에 가능했겠죠.”

중화권 스타인 장첸과는 오래 전 영화 ‘숨’(김기덕 감독)에서 한번 호흡을 이룬 경험이 있다. 16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영어 대사로 이룬 호흡에서 이질감이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앙상블을 선보이며 ‘수리남’의 품격을 높였다.

“장첸과는 ‘숨’에서 처음 만났는데 저를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중화권 최고 스타이자 월드 스타 중 한 명인데 현장에서 전혀 그런 모습이 없었어요. 그 분과는 클럽에서 현봉식이 맞는 장면에서 처음 함께 촬영했어요. 장첸 배우 첫 촬영장면이었죠. 그냥 같은 한국 배우처럼 느껴졌어요. 차이나타운 장면은 전주에 오픈 세트를 만들어서 제작했고 장첸은 모든 촬영을 그 곳에서 마쳤어요.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15일 격리를 해야 했는데 그 점 빼고는 어렵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영화 ‘야행’(김진황 감독), ‘수리남’의 국내 촬영과 도미니카 공화국에서의 2개월 촬영을 거쳐 이후 영화 ‘피랍’(김성훈 감독)의 모로코 촬영까지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촬영을 이어 오고 있지만 작품으로 대중들을 만나는 건 2년 만이다. 그동안 그의 뇌리를 가장 많이 지배했던 생각들은 무엇일까.

“배우로서 경력이 쌓이는 건 갈수록 어려움이 커지는 것 같아요. 1번 주연배우가 스토리를 이끌어야 하는 주된 역할을 지녔다면 거기서 더 새롭고 나아진 부분도 보여드려야 하는데 점점 어려워요. 영화 ‘백두산’이나 ‘신과 함께’때도 느꼈고 ‘수리남’을 하면서도 느꼈죠. 흥미로운 소재이고 흥미로운 캐릭터들과 부딪히는데 1번 주연의 고충은 있어요. 제가 튀어나올 수도 없고 두 다리를 땅에 박고 끌고 가야 하니까 극적인 새로움을 어떻게 보여드리고 가져가야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이에요. 최근 찍은 ‘피랍’도 그 고민의 연속이었죠. 작품이 공개되지 않은 시간동안 반성도 많이 하고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많이 가졌습니다. 쉼 없이 달려왔는데 그 부분에 제동이 걸렸어요. 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지고 저를 바라봤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제 자신의 좌표도 확인했고요. 아팠지만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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