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유튜브 캡처
사진=유튜브 캡처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레전드프로듀서이자 일명 ‘CTI 사운드로 정평 높은 CTI 레코드 수장 크리드 테일러(Creed Taylor)가 지난 822(현지시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93세로 타계했다.

뉴욕타임스,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다운비트 등 여러 해외 매체는 크리드 테일러가 82일 뇌졸중을 일으킨 이래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타계했다고 전했다.

여러 차례의 그래미 수상으로도 유명한 크리드 테일러는 1950년대에 재즈 프로듀서로 경력을 시작했다.

크리드 테일러는 1929513일 미국 버지니아 린치버그에서 태어나 해리 제임스에게 영감을 받아 고등학교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다.

듀크 유니버시티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해병대 복무에 이어 54년에 심리학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전공을 버리고 뉴욕으로 갔다.

베들레헴레코드에 취업한 그는 여러 뮤지션 음반 제작에 관여하며 실력을 쌓았다. 허비 만(Herbie Mann)도 그가 작업한 뮤지션 중 하나였다. 56ABC-파라마운트로 이직, 재즈 뮤지션들과 다양하게 교류해 갔으며 60년엔 존 콜트레인을 비롯한 여러 명 재즈맨들로 잘 알려진 재즈씬의 명문 레이블 임펄스를 설립했다. 이후 버브(Verve)로 이직해 64년 스탄 게츠 명반을 탄생시켜 보사노바재즈 대중화에 일익을 담당했다.

60년대 말엽엔 재즈퓨전 전문 레이블 CTI를 설립해 당대 최고의 재즈퓨전 레코딩 음질 수준을 보여주기도 했다. 선명하고 알차게 퍼지는 CTI 사운드는 밥 제임스, 앨런 홀스워스, 조지 벤슨,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론 카터, 프레디 허바드, 데오다토 등등 당대 뮤지션들의 명반에서 잘 나타나 있다.

크리드 테일러는 리듬을 강조하며 보다 대중적인 접근을 선호했다. “대중음악으로 시작한 재즈가 더 많은 청중과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CTI 레이블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후 음악씬이 변하며 재정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결국 유통 문제로 인해 78년에 파산 신청했다.

크리드 테일러는 조지 벤슨의 음악권리를 놓고도 워너뮤직(워너브라더즈)과 오랫동안 법적 분쟁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크리드 테일러는 생애 두 차례 결혼했다. 1956년 메리언 웬즈와 결혼해 30여 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후 84년 이혼 후 88년에 해리엇 슈미트와 재혼했다.

크리드 테일러는 첫 결혼에서 세 아들, 두 번째 결혼에선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뮤지션이자 프로듀서 레오 시드런은 크리드 테일러와의 2015년 팟캐스트 인터뷰를 소개하며 “1970년대의 사운드는 여러 면에서 CTI에 의해 정의된다고 평했다.

음악 역사학자 애슐리 칸은 적어도 CTI 앨범을 구입했을 때 모든 수준에서 최고 품질이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고 썼다.

세계 최고의 권위지 뉴욕타임스는 그간 어떠한 명 뮤지션의 사망 보도보다 많은 분량으로 크리드 테일러를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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